■ 박준철씨가 딸 세리에게 보내는 편지
세리야!
오늘 하루도 얼마나 힘든 시간이었니. 엄마 아빠 언니 동생도 모두 너의 힘들어 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아빠는 아빠의 무력함에 마음 아프단다. 힘들어 하는 너에게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힘이 될 수 있을까.
내 딸이 너무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볼 때 엄마는 때론 너의 ‘볼’이 돼 주고 싶고, 때론 너의 ‘채’가 되어 너의 힘든 짐을 덜어주고 싶다. 허나 이것은 꼭 너에게만 있는 시련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렴. 우리가 모르는 어떤 사람에게도 이런 힘든 시간은 올 수 있는 것 아니겠니? 스포츠 선수든 사업가든 또 공부하는 사람이든 모두 어렵고 힘든 시간이 있는 법이지.
우리가 처음 골프를 시작할 때도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었니. 노력과 고난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이 세상 어디 있겠니.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 되면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길까 하겠지만 누구든 다 똑같은 생각과 마음이란다.
그래도 너는 축복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렴. 세리 너의 주변 사람들이 너에게 얼마나 많은 격려와 힘과 용기를 주는지. 예전에 못 느꼈던 너의 주위를 이제는 뒤돌아보면서 그래도 너에게 사랑을 아끼지 않는 수많은 팬들에게 보답하는 길은 오늘도 내일도 앞으로도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박세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걸 알았으면 해. 네가 힘들어 할 때 같이 힘들어 하고 네가 행복해 할 때 함께 행복해 하는 그런 분들이 계시기에 오늘의 세리가 있었고 또 앞으로 발전할 세리가 있다는 것을 보여드려야지.
지금은 힘들고 어려운 순간이 있다 해도 내일을 위한 재충전의 시간이라 생각하고 너를 더욱 더 커다란 선수로 탄생시키는 기회로 믿어라. 세리야 너의 힘들어 하는 얼굴을 보면 엄마 아빠 우리 가족 뿐만 아니라 너에게 사랑을 보내는 모든 분들에게도 힘든 짐을 짊어주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단다.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아무것도 모르던 네가 오로지 골프채 하나 메고 너의 꿈을 이루겠다고 보낸 시간이 벌써 9년이구나. 참 시간은 빨리도 지나갔구나.
이제는 뒤를 한번 돌아보면서 힘들었던 시간들도 또 행복하고 가슴 벅찼던 때도 생각해보자. 우리가 지금은 옛 이야기 하면서 웃기도 하지만 그 땐 참 힘든 시련이 많았던 시간이었지. 지금 와 생각해보면 그 모든 것들이 너를 더욱 더 강하고 굳세게 만들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때 그 힘들었던 시간들이 훗날 우리가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고 좋은 추억이 되는 것처럼 지금의 시련도 우리 세리에게는 더욱 더 성숙해질 수 있는 결과를 낳기 위해 잠시 머무는 배움의 시간이라 생각하자.
그러면서 그 동안 네가 모르며 스쳐 지나갔던 것들에 대해 고마워하고 감사할 줄 아는 마음도 다시 한번 새기렴. 이것이 스포츠 선수로 뿐만 아니라 인간 박세리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인성 공부를 할 수 있는 충전의 시간이라 얘기해 주고 싶구나.
그래도 참기 어려운 힘든 순간도 말없이 묵묵히 열심히 노력하는 너의 모습을 보면서 한편 안쓰러움에 가슴 아파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란다. 하지만 지금의 이 순간들을 너무 힘들어 하지 마라. 이제는 모든 것을 스님들께서 하시는 말씀처럼 초발심으로 생각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구나.
언제나 믿음직하고 열정적인 너의 모습으로 다시 멋지게 돌아올 것이라 엄마와 아빠 가족 너를 사랑해주시는 모든 분들이 믿고 기다린다. 생각이 너무 깊으면 육체도 정신도 힘들어진다. 마음을 비우면서 노력하는 세리, 건강한 세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다오.
사랑한다 딸아. 아빠가.
■ 초라한 성적… '추락한 여왕'
‘9개 대회 출전 컷오프 4번에 기권 1번, 60대 타수는 22라운드중 단 1번, 최고 성적은 공동 27위.’
14일 현재 미국 여자프로골프협회(LPGA)투어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골프 여왕’ 박세리(CJ)의 올 시즌 중간 성적표다. ‘골프여왕’이라는 별칭이 어울릴 만한 구석을 찾아볼 수 없다.
박세리의 추락은 지난해 5월 ‘명예의 전당’ 입회 자격을 얻은 뒤부터 시작됐다. 7년새 LPGA투어에서만 메이저 대회 4승을 포함해 통산 22승째. 하지만 목표 달성은 목표 상실로 이어졌다. 미켈롭울트라오픈에 이어 열린 2개 대회에서 연속 컷오프되는 등 부진이 계속되자 박세리는 결국 9월초 한달간 휴식이라는 극약처방을 내렸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10월 복귀한 삼성월드챔피언십에서 박세리는 3라운드에서 8오버파 80타를 치는 등 출전선수 20명중 꼴찌에 머물렀다.
올 시즌 들어 추락은 더욱 빨라졌다. 9개 대회를 마친 결과, 연속 컷오프를 비롯해 절반 이상을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다. 본선 진출을 떠나 22라운드 중 60대 타수를 기록한 것은 단 1차례 뿐이었고 70대 후반을 밥 먹듯이 쳤다. 5월 프랭클린아메리칸모기지론챔피업십(1라운드 81타)과 숍라이트LPGA클래식(3라운드 85타)에선 주말골퍼 수준인 80타 이상까지 곤두박질쳐 팬들을 경악시켰다. 이에 따라 소속사인 CJ는 올 시즌 남은 경기를 포기하고 박세리에게 부활을 위한 마지막 기회를 주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
박희정기자 hjpark@hk.co.kr
■ 목표 상실… '인간 박세리' 찾아야
박세리의 ‘해법 찾기’는 가능할까. 박세리는 2000년에도 슬럼프에 빠져 무관의 여왕으로 전락했었다. 그러나 이듬해 보란 듯이 화려하게 재기, 2001년과 2002년 2년 동안 5승씩 10개 대회 우승컵을 거머쥐며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박세리가 또 다시 부진의 늪에 빠져 고전하고 있다. 이번 슬럼프는 2000년 것보다 휠씬 고약하다.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박세리가 부진한 이유는 정신적인 면 때문이라며 휴식을 권하고 있다.
박세리의 부진은 샷 결과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통산 평균 262.1야드에 달하던 드라이버샷 평균 비거리는 올 시즌 249.4야드로 짧아졌고, 페어웨이 안착률도 60.2%에서 53.4%로 추락했다. 68.3%에 달하던 아아언샷의 그린 적중률은 55.6%로 떨어지며 오버파 스코어를 줄줄이 토해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퇴보도 정신적인 면에 기인한다고 보고 있다. 98년 LPGA투어에 뛰어든 뒤 공공연히 내걸었던 최종 목표인 ‘명예의 전당’ 입회 자격을 따내면서 결국 돌진 해야 할 목표점을 잃어버리며 자신도 모르게 슬럼프에 빠져버렸다는 것.
임경빈 KBS해설위윈은 “박세리의 부진은 카리 웹을 보는 듯하다. 30승을 올리며 잘 나가던 카리 웹도 지난해 자신의 목표(명예의 전당 입회)를 달성하면서 슬럼프에 빠졌다”고 진단했다. 임 위원은 톱 스윙에서 왼팔이 다소 굽어지고 헤드가 타깃 보다 왼쪽을 보며 과거의 강한 톱 동작을 만들지 못하는 등 스윙 면에서 작은 문제점이 발견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정신적 해이라고 지적했다. 임 위원은 “기술적인 문제도 정신적인 문제에서 비롯된다”며 “아무리 스윙이 변해도 마음만 있으면 극복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재열 SBS골프해설위원도 “박세리 같은 대선수가 스윙에 문제가 있다고 이렇게 망가지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지적한 뒤 명예의 전당 입회 이후 목표상실이 부진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영원한 스승인 아버지 박준철씨도 “스윙에는 별 이상이 없다. 문제는 마음속에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해답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극약처방이지만 쉴 것을 권하고 있다. 올 시즌을 포기하더라고 쉬면서 ‘골퍼 박세리’ 아닌 ‘인간 박세리’를 찾으라는 것이다. 박세리도 그 해답을 알고 있다. 그는 지난 5월 미켈롭울트라오픈 직적 공식 인터뷰에서 “나는 지쳤다. 골프가 아닌 다른 즐거움을 찾고 싶다”고 고백했다.
박희정기자 hj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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