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지쳤지만 정신까지 놓지는 않았다.
5년 8개월의 유랑을 뒤로 하고 14일 귀국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베트남 출국부터 인천공항 입국, 검찰 체포로 이어진 숨가쁜 과정에서 ‘죄인’으로서의 자세를 잊지 않으면서도 국가 경제를 떠받쳤던 옛 그룹 총수의 위엄을 잃지 않으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김 전 회장이 첫 말문을 연 것은 인천공항으로 향하던 기내에서였다. 그는 열띤 취재경쟁을 감안해 “저 때문에 다들 고생이 굉장히 많은 것 같다”고 운을 뗀 뒤 “제가 귀국하는 것은 제가 책임을 지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 동안 몸이 좋지 않아 지금도 굉장히 피곤하다”며 간단한 인터뷰를 마쳤다. 김 전 회장은 인천공항과 대검 청사 입구에서 “모든 책임은 내가 지겠다. 진심으로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검찰에서 다 밝히겠다”는 짧은 말로 자산의 과오를 담담히 인정했다.
스스로를 ‘죄인’으로 규정한 이 같은 변은, 그러나 그의 흉중을 오롯이 드러낸 것은 아니었다. 김 전 회장은 귀국 항공기에 탑승하기 직전 파란색 볼펜으로 직접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사죄의 글’을 썼다.
그는 검찰의 제지로 입국 당시 이 글을 직접 읽지는 못했다. 김 전 회장은 글을 통해 “실패한 기업인으로서 수구초심의 심정으로 돌아오게 됐다”며 자신을 한 없이 낮추면서도 “국가경제의 활로개척을 위해 몸바쳤던 지난 30여년의 세월은 이미 가슴 속 깊이 묻었다”는 말로 비리 기업인으로 몰린 데 대한 진한 섭섭함을 에둘러 나타냈다.
“예기치 못한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를 맞아 그 격랑을 헤쳐나가지 못하고 국가 경제에 부담을 드린 것은 전적으로 제 자신의 잘못”이라는 표현도 대우 사태가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비롯됐음을 강조한 대목이다.
김 전 회장은 이 글에서 ‘함께’를 ‘함깨’로, ‘전하고자’를 ‘전하저’로 잘못 적어 귀국을 앞둔 긴장된 심리상태를 엿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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