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우 해체 '엇갈린 시각'
◆ 강봉균 "대우 해체, 자초한 病死"
대우그룹 해체 당시 재경부 장관이었던 열린우리당 강봉균 정책위 수석부의장은 14일 “대우그룹 해체는 정책 당국자들의 판단에 따라 초래된 결과라기보다는 시장의 신뢰를 상실한 김우중 전 회장 스스로가 자초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강 부의장은 이날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대우그룹 해체과정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있지만 이는 당시 시대상황을 잘못 이해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정치적 판단에 의해 대우가 해체됐다는 의혹에 대해 “부실 대기업을 정부가 선별적으로 구제하는 것은 관치금융의 부활을 의미했기 때문에 당시 정부로서는 전혀 불가능한 일이었다”며 “정부가 국제적 경고를 무시하고 국내 금융기관에 대우 지원을 지시했더라도 받아들여졌을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고 반박했다.
그는 또 5대 재벌 중 대우만 퇴출된 것과 관련해서도 “김 전 회장은 당시 전경련 회장으로서 대통령을 비롯한 경제장관들과도 가장 의사소통을 잘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불이익을 당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고 선별 퇴출설을 일축했다.
그는 “법률적으로 김 전 회장은 분식회계, 사기대출, 해외재산 도피 등 혐의를 받고 있다”며 “본인 스스로의 진실고백과 사법당국의 판단이 존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국민적 관용여부는 김 전 회장의 연령과 건강상태, 그리고 기업인으로서의 사회적 공헌도 등에 따라 좌우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동국 기자 east@hk.co.kr
◆ 이한구 "대우 해체…타살이다"
한나라당 이한구 의원은 14일 “대우그룹의 해체는 외부적인 영향이 있었다”며 김대중 정부에 의한 ‘대우 타살론’에 무게를 실었다.
대우경제연구소장을 지낸 이 의원은 “김우중 전 회장이 당시 국제경제 상황과 청와대와의 관계에서 피해를 본 측면이 있다”며 “당시 (대우를 죽이기 위한) 음모설을 들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는 대우가 정권에 의해 부당하게 희생됐다는 백기승 전 대우그룹 홍보이사 등의 주장과 맥을 같이 한다.
이 의원은 그러나 음모론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선 “내가 정치인인 관계로 그걸 말하면 정쟁거리로 악용될 수 있다”며 언급을 삼갔다.
그는 대신 “김 전회장은 당시 전경련 회장이었기 때문에 타협도 하고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지 않겠느냐”며 “김 전회장이 정부가 외환위기 수습과정에서 실시한 재벌해체나 구조조정의 핵심 증인이기 때문에 많은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할 수 있도록 자유스런 분위기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의원은 이어 “김 전 회장의 해외도피 경위, 즉 어떻게 해서 국외로 나갈 수 있었는지, 누가 도와주었는지, 무슨 조건으로 나갔는지를 밝혀야 한다”고 말해 당시 정부 관계자들의 연루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는 또 검찰 수사과정에서의 사실 왜곡 가능성을 우려하며 “김 전 회장이 검찰 수사 전에 기자회견이나 국회 출석, 아니면 특별검사나 청문회 등을 통해 국민적 관심사를 먼저 밝히는 게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권혁범 기자 hbkwon@hk.co.kr
■ 김우중씨 스스로 밝힌 5년8개월 도피생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도피생활 5년8개월에 대해 드디어 말문을 열었다. 그간 자신의 행적을 둘러싸고 숱한 추측과 의혹이 난무했지만 정작 검찰을 통해 전해진 당사자의 설명은 의외로 단순했다. 그의 대답이 진실인지는 검찰 수사에서 밝혀져야 할 과제다.
민유태 대검 수사기획관은 14일 브리핑을 통해 김 전 회장이 대검 청사 도착 직후 털어놓은 몇 가지 사실을 전했다.
김 전 회장은 “유랑 기간 동안 독일 수단 프랑스 베트남 등을 돌아다녔다”고 말했다. 각 나라마다 30년 넘게 사업을 하면서 알게 된 지인들이 있어 이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머물렀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에게는 일찌감치 인터폴을 통해 5단계 수배 조치 중 최고 단계인 적색수배령이 내려졌지만 소재 파악에는 결국 도움이 되지 못했다. 임의기구인 인터폴에는 강제력이 없어 해당국이 체포의지를 보이지 않는 한 사실상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국적을 취득한 이유에 대해 그는 사업상 필요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1987년 4월부터 ‘세계경영’을 구상하며 동구권 개척을 추진했으나 당시 우리나라와 국교를 맺지 않았던 동구권에서 사업을 하기에 한국 국적으로는 제약이 많았다는 것이다. 국적 취득에는 유명 사업가라는 김 전 회장의 지위가 이점으로 작용했다.
단편적인 사실을 제외하고는 여전히 도피 기간 중 그의 구체적 행적은 베일에 가려 있다. 2000년 9월에는 프랑스 휴양도시 니스의 한 저택에 머물던 모습이 주민들에게 목격됐다.
2002년 10월에는 태국에서 김용옥씨와 인터뷰를 가졌고 2003년 1월에는 미 경제주간지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대우사태 이후 김대중 정부가 출국을 권유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최근에야 귀국을 결심한 것은 전직 대우그룹 임원들에 대한 재판이 모두 마무리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전 회장은 “그 동안 재판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귀국을 미루다 4월 대법원 선고 이후 대우사태에 최종적인 책임을 지기 위해 귀국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김용식 기자 jawohl@hk.co.kr
■ 김우중, 현재 재산은 얼마?
한때 재계 2위 자리까지 올랐던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현재 재산은 얼마일까.
2001년 그의 측근은 김 전 회장의 재산 상태에 대해 “김 회장은 3류 호텔에서 햄버거로 끼니를 때울 정도로 가진 것은 팬티 한 장 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 전회장은 귀국하면서 변호를 수임료가 비싸기로 소문난 국내 최대 로펌 김&장에 맡겼다. 재기설도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이 때문에 은닉 재산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무성하다.
그는 공식적으로는 무일푼 상태다. 1999년 7월 대우그룹 자구대책을 발표하며 전 재산을 금융권에 담보로 제공했기 때문이다.
당시 내놓은 재산은 교보생명, 대우중공업, 쌍용자동차, 대우개발 등 계열사 주식 5,142만주(당시 평가액 1조 2,553억원)와 경남 거제도 임야 12만 9,000평(452억원)이었다.
자구책이 실패로 돌아가며 김 전 회장이 살던 서울 방배동 자택도 채권단에 넘어가 2002년 4월 경매에서 48억원에 경락됐다. 숨진 큰 아들이 묻힌 안산농장도 경매로 넘어갔고, 부인 정희자씨 소유의 서울 힐튼 호텔도 오래 전에 처분됐다.
김 전 회장의 은닉 재산이 다시 주목을 받은 것은 2001년 11월 예금보험공사가 김 전 회장이 숨겨놓은 재산 1,400억원 상당을 찾았다고 발표하면서부터.
예보는 당시 부인 정씨와 두 아들 명의로 된 포천 아도니스 골프장 지분 81.4%(추정시가 172억원), 두 아들 명의의 서울 방배동 토지(당시 시가 30억원), 딸 명의의 이수화학 주식 22만5000주(당시 시가 22억원) 등을 거론했다. 그러나 법원은 올 3, 4월 아도니스 골프장과, 이수화학 주식 등은 적법한 증여 절차를 거친 것으로 김 전 회장의 소유가 아닌 부인과 자식의 재산이라고 판결했다.
그렇지만 김 전 회장 일가의 알려지지 않은 재산이 더 있을 것이란 의심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최근 한 방송사는 김 전 회장 일가가 국내에서만 1,000억원대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 막내아들은 베트남에서 골프장, 주택단지 건설사업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사업 자금원이 주목을 받고 있다.
비자금 관련 의혹도 빠질 수 없다. 핵심은 대우그룹의 영국 비밀금융조직인 BFC. 대우그룹이 해체될 당시까지 이곳을 통해 관리한 자금은 200억달러(당시 환율로 25조원)였다. 이 중 해외 금융기관에 갚아야 할 차입금 157억 달러와 해외사업투자에 들인 30억 달러를 제외한 13억달러(당시 환율 1조 5,000억원)의 행방이 묘연해, 이 돈이 비자금으로 형성됐을 것이라는 추측이 줄곧 제기돼 왔다.
고주희 기자 orwell@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