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14일 새벽 귀국했다. 초췌한 노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6년 전 그가 떠난 뒤 요동 치던 우리나라 금융시장 상황이 떠오른다. 당시 대우그룹은 18조원 규모의 채권을 고금리로 마구 발행한 뒤 덜컥 부도를 낸 상태였다. 개인 투자자들이 막무가내로 손실 보전을 요구하자, 정부는 투신사들로 하여금 원금의 95%까지 보전토록 하는 초법적 조치를 취했다.
겉으로는 ‘해피엔딩’이었다. 전 재산을 날릴 위기에 빠졌던 개인 투자자들은 모두 정부의 ‘용단’을 환영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가 아직껏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를 정부의 성급한 ‘해피엔딩’ 정책에서 찾고 있다. 잘못된 투자로 당연히 망했어야 할 투자자들을, 전 국민의 세금을 거둬 살려낸 잘못된 선례를 남겼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 공무원은 “요즘처럼 정부 재정이 투입되고 경기 진작책이 나오면 예전에는 벌써 효과가 나타났을 텐데, 대우사태를 거치면서 약발이 먹히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경제 주체들이 당연히 자신이 책임져야 할 것도 정부 탓으로 돌리는 버릇이 생기면서 정책이 먹혀 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버티면 신용불량자의 이자를 깎아주고, 우는 소리하면 사업성 없는 중소기업에도 정부가 보증을 서주는 판국이니, 시장규율이 제대로 작동할 리 없다. 경제 주체마다 유리한 입장에서 정부의 개입을 원하고 있으며, 정부 대책이 나오기 전까지는 움직이지 않는 버릇이 생긴 셈이다.
상사가 부하를 꾸짖을 때 지켜야 하는 법칙 중에 ‘뜨거운 난로의 법칙’이 있다. 손에 닿기만 하면 대통령 손이라도 데어버리는 ‘뜨거운 난로’처럼, 누군가를 혼낼 때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즉각적으로 혼내야 한다는 것이다. 시장을 상대하는 정부 개입도 마찬가지다. 정부 정책이 시장원리에서 벗어나 특정 목표를 겨냥한 행정조치로 변질될 경우, 반드시 누군가 반사 이익을 얻게 되는 ‘차별적 규제’가 될 수 밖에 없고 정책의 효과는 반감되기 마련이다.
6년 만에 돌아온 김 전 회장은 개인은 물론이고 정부 조차도 시장규율을 무시하면 막대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부동산은 물론이고 채권과 주식시장 모두 획기적인 정책보다는, ‘뜨거운 난로’처럼 일관되고 차별 없는 정책을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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