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불허전(名不虛傳)’.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감동으로 모두 일어나 박수를 보냈고, 커튼 콜이 무려 네 차례나 이어졌다. 10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막을 올린 ‘오페라의 유령’은 19년간 세계 110여 개 도시에서 1억 명이 감상한 무대 예술의 진수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솔드(soldㆍ팔렸다)!….” 경매인의 힘찬 목소리와 함께 조명이 서서히 밝아오면서 ‘오페라의 유령’은 모습을 드러냈다. 1911년 파리 오페라 하우스 무대. 휠체어에 앉은 70세 노인 라울은 경매로 구입한 원숭이 모양 뮤직박스의 앙증맞은 음악을 들으며 과거에 대한 상념에 빠져들었고, 동시에 덮여진 천이 벗겨지면서 샹들리에가 천장으로 비상하는 모습을 바라보던 관객들은 괴기스러우면서도 애틋한 한 남자의 사랑 이야기에 젖어 들었다.
프리마 돈나 칼롯타에 이어 크리스틴이 받아 부르는 첫 곡 ‘씽크 오브 미’(Think of Me)가 울려나올 때부터 관객들은 숨을 죽였다. ‘더 뮤직 오브 더 나이트’(The Music of The Night)와 ‘올 아이 애스크 오브 유’(All I Ask of You) 등을 거치면서 노래는 파도처럼 큰 물결로 관객들의 가슴을 휘감았다.
거울 속과 천장, 발코니 등에서 마술을 부리듯 나타났다가 사라지던 팬텀이 마스크만 남기고 자취를 감추는 마지막 장면은 관객들의 가슴에 쉬 가시지 않을 여운으로 남았다.
오페라 하우스, 분장실, 지하 미궁, 묘지 등으로 쉴 틈 없이 바뀌는 세트는 2001년 국내 팀의 무대를 통해 24만 명의 국내 관객들이 이미 경험한 것이지만 여전히 압도적이었다.
특히 팬텀이 쪽배의 노를 저으며 크리스틴과 함께 ‘더 팬텀 오브 디 오페라’(The Phantom of The Opera)를 부르는 장면은 스펙터클을 넘어 관객들을 환상의 세계로 인도했다. ‘마스커레이드’(Masquerade) 노래에 맞춰 37명의 배우가 꾸미는 가면무도회는 하나의 웅장한 오페라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정체불명의 사나이 팬텀 역을 맡은 브래드 리틀의 연기는 눈이 부실 정도였다. 96년부터 1,800회 넘도록 팬텀으로 무대에 오른 그는 고음과 저음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노련한 노래 솜씨로 무대와 객석을 완벽하게 장악해 나갔다.
관객들은 그의 섬세한 몸짓과 가슴 속에서 샘 솟는 듯한 음정 하나하나에 짧은 탄성을 내뱉거나 긴 한숨을 지으면서 그의 마력 속으로 빠져들었다. 떠나가는 크리스틴을 바라보며 팬텀이 떨리는 목소리로 삼키듯 “아이 러브 유”라는 대사를 읊조리는 장면은 뭇 여성들의 눈물을 떨구었다.
크리스틴을 연기한 마니 랍의 연기와 노래도 수준급이었다. 한국 무대가 아직 익숙치 않은 탓인지, 초반에 음정이 안 맞는, 불안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이내 안정을 되찾고 빼어난 미성으로 감미로운 노래들을 들려주었다.
라울 역의 재로드 칼랜드는 귀족 역할에 걸 맞는 차분한 목소리를 선사했고, 폴린 드 플레시스는 신경질적인 칼롯타역을, 마커스 데산도는 거만하면서도 우스꽝스러운 피앙지 역을 제대로 소화해냈다.
‘옥에 티’는 무대가 아닌 객석에 있었다. 적지않은 관객들이 ‘몰지각’하게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 공연에의 몰입을 방해했다. 이미 20만장의 표 중 10만 여장이 팔려나간 이번 공연은 9월1일까지 계속된다. (02)501-7888.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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