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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세이/ 노점상 할아버지의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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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세이/ 노점상 할아버지의 독서

입력
2005.06.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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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 따가운 햇볕 때문에 아스팔트의 열기가 바짓가랑이에 스멀거린다. 횡단보도를 건넜다. 한가한 휴일 오후, 시내로 나가 친구들과 맥주라도 한 잔 마셔 볼 셈이었다. 시내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으로 가고 있었다.

건물 그림자가 반쯤 드리워져 있는 보도에 2평 남짓 색 바랜 비닐을 깔아 놓고 양말, 스타킹, 덧소매, 덧버선 등을 펼쳐 놓은 노점상이 있었다. 물건들은 꽤나 오래된 것들인지 아니면 중고 물건인지 누가 봐도 별로 사고 싶지 않을 것 같다. 한쪽에는 짐 자전거가 있다. 지금은 오토바이에 밀려 민속자료실에나 있을 것 같은 자전거다.

노점 주인은 70 여 세쯤 돼 보이는 할아버지다. 햇볕에 그을린 구릿빛 얼굴과 깊은 주름살 때문에 더 늙어 보이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할아버지의 손에는 책이 들려 있다.

잡지책도 아니고 만화책도 아닌 소설책 같다. 누렇게 퇴색한 것으로 보아 꽤나 오래된 헌 책임이 분명하다. 지나가는 사람에게도 자기 물건에도 전혀 관심이 없는 듯하다. 물건 하나라도 팔려면 사람들의 표정과 눈을 보면서 호객 활동을 해야만 할 것 같은데 쳐다보지도 않는다. 사려면 사고 말라면 말라는 듯이…. 참으로 여유 있어 보인다.

독서야말로 가장 중요한 간접 경험이요 학습이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책을 읽으라고, 읽어야 한다고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재촉하며 강제로라도 읽히려고 애를 쓴다.

적어도 자식을 키워보거나 가르쳐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경험을 했을 것이다. 물건이야 팔리든지 말든지 할아버지의 손에는 소설책이 들려져 있다. ‘춘향전’인지 ‘심청전’인지 아니면 ‘임꺽정’인지 모르겠다.

책 속에 푹 빠져 버렸다. 좌판을 거두고 집에 돌아갈 때는 천 원짜리 몇 장뿐이라 하루 장사 헛장사했다고 후회할지 모른다. 가족들의 좀더 나은 생계를 위해서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할지 모른다. 열심히 팔 걸 하고 후회할지 모른다.

그러나 낡은 책을 든 검게 그을린 그 손이 귀하게 느껴지며, 눈가의 깊은 주름 안에 눈망울이 소년의 것처럼 보이는 것은 왜일까?

나는 버스 속에서 그 할아버지와 몇 마디 대화라도 나누어 볼 걸 아쉬워하면서 차창 밖으로 작아지는 그 모습이 이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았다.

이학구ㆍ전북 김제시 원평초등학교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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