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들이 앞 다퉈 법조인 출신들을 영입하면서 기업에서도 CLO(Chief Legal Officerㆍ최고 법률책임자) 시대가 만개하고 있다.
국내 최고 로펌 수준의 법무 조직을 갖고 있는 삼성그룹의 CLO는 대검수사기획관 출신의 이종왕 구조조정본부 법무실장(사장급)이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과 사법시험 동기(사시 17회)로 국민의 정부 시절 옷 로비 사건을 지휘했다. 퇴임 후에는 국내 최대 로펌인 김&장 법률사무소에서 일했고 대통령 탄핵 심판사건 때는 대통령측 변호인을 맡았다.
이 실장은 서울지검 특수부장 출신인 서우정 부사장과 서울지법 부장판사를 지낸 김상균 부사장 등이 포진해 있는 삼성 구조본의 법무실을 지휘하고 있다. 또 법조인 출신만 22명에 120명 안팎의 변호사가 일하고 있는 삼성그룹 전체의 법무조직을 총괄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특허전문 변호사 출신의 김광호 전무, 삼성중공업은 검사 출신의 이명규 상무보, 삼성화재는 검사 출신의 이상주 상무가 각각 CLO를 맡고 있다.
현대ㆍ기아차그룹도 최근 수원지검장 출신으로 공안통인 김재기 변호사를 CLO로 영입했다. 그는 사장급인 법무실장을 맡아 변호사 4명을 포함해 27명이 일하고 있는 현대ㆍ기아차 그룹 법무실을 이끌어 나가게 된다. LG그룹은 판사 출신인 김상헌 부사장이 그룹의 지주회사인 ㈜LG 법무팀장을 맡아 그룹과 관련된 법무 일을 총괄하고 있다. SK그룹의 CLO는 부장 검사 출신으로 지난해 영입된 김준호 SK㈜ 윤리경영실장(부사장급)이 맡고 있다. 그는 최태원 SK㈜ 회장의 고교(신일고) 및 대학(고려대) 3년 선배다.
SK텔레콤의 경우 부장판사 출신으로 3월 영입된 남영찬 윤리경영 총괄 및 법무실장(부사장급)이 CLO로 맹활약 중이다. 한화그룹도 최근 법무팀을 법무실로 확대 개편하면서 부장검사 출신인 채정석 변호사를 법무실장으로 영입, CLO자리를 맡겼다.
두산그룹도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 인수를 추진하면서 올 초 전략기획본부내에 법무실을 신설하고 부장검사 출신인 임성기 법무실장(전무급)을 영입, CLO로 앉혔다.
참여연대 등 일부 시민단체들은 “막대한 자본력을 가진 대기업이 법조인을 공략, 해당 기업 수사와 재판의 방패막이로 이용할 경우 ‘법경(法經)유착’ 의혹이 일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기업들은 법조인 출신들이 CLO를 맡는 것에 대해 “올 초부터 시행된 증권 집단소송제와 특허ㆍ통상ㆍ경영권 분쟁, 인수ㆍ합병(M&A) 등 기업을 둘러싼 법률 문제가 날로 복잡해지고 있어 이를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며 “법조인 출신 영입을 무조건 법원이나 검찰 로비용이라고 깎아 내리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얘기”라고 말했다.
황양준 기자 naige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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