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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조작’ 수렁 빠진 아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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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조작’ 수렁 빠진 아로요

입력
2005.06.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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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의 글로리아 마카파갈 아로요 대통령이 지난해 대선 결과를 조작했다는 내용의 도청테이프가 공개돼 집권 이후 최대의 위기에 처했다.

독립기념일인 12일 수도 마닐라에서는 전날에 이어 5,000여명이 아로요 대통령의 사임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아로요 대통령은 사기꾼”이라며 “더 이상 대통령직을 유지할 이유가 없다”고 대통령에서 스스로 물러날 때까지 투쟁하겠다고 다짐했다.

경찰과 군은 가장 높은 등급의 경계 경보를 내리고 시위대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있는데 특히 대통령에 반발하고 있는 일부 군부에 의한 쿠데타 설에 긴장하고 있다. 필리핀에서는 지난해 7월, 12월 두 차례를 포함해 20년 동안 12번 이상의 쿠데타 시도가 있었다.

앞서 6일 야당이 아로요 대통령의 선거 부정 개입 의혹을 제기하며 폭로한 도청테이프에는 아로요 대통령이 개표 집계 도중 선거관리위원회 간부에게 “나와 야당 후보와의 표차가 100만 표 이하로 떨어질 가능성이 있느냐”고 물었다. 이 간부는 “표차는 이미 100만 표가 안되지만 아직 집계 중이며 우리 모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대답한 것으로 돼있다.

지난해 5월 대선에서 아로요 대통령은 인기 영화배우 출신인 페르난도 포 2세 KNP(연합필리핀연대) 후보와 치열한 접전 끝에 승리했으나 선거전 동안 117명이 목숨을 잃는 폭력사태가 발생하는 등 부정선거 시비로 시끄러웠다. 포 2세는 대선 패배 후 12월에 병사했다.

이그나시오 분예 대통령궁 대변인은 “테이프는 대통령의 경제개혁 노력을 무산시키고 그를 음해하려는 세력이 악의적으로 왜곡한 것”이라고 야당측을 비난해왔다. 그러나 10일 전 법무부 관리가 자신이 도청 내용을 공개했다고 밝혀 대통령측은 또 다시 곤경에 빠졌다.

아로요 대통령은 “동요해서는 안 된다”고 국민에게 진정을 호소하고 있지만 이미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든 양상이다. 재선 이후 물가가 끊임 없이 오르고 재정 적자가 계속되는 등 경제 상황이 악화됐다. 게다가 대통령 아들과 사위가 도박 회사로부터 거액의 검은 돈을 받았다는 의혹마저 제기되면서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 이래 역대 최저 지지율로 떨어졌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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