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 두타, 명동 밀레오레, 남대문 메사. 대표적인 대형 의류매장들이다. 공통점이 있다. 덩치가 무지하게 크다는 것이다. 의류매장치고 큰 것이 아니다. 서울 시내를 통틀어서도 상당히 큰 건물들이다. 옷가게가 저렇게 클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이런 의문은 요즘 시대에는 무식한 질문에 속한다.
대형화는 자본의 논리에 의하면 ‘전문상가의 집중’에 해당된다. 이래야 장사가 잘 된다. 이를테면 공구상가가 청계천에, 가구점이 논현동에, 양복점이 소공동에 밀집해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것을 수직으로 쌓은 차이만이 있을 뿐이다. 장사만 잘 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디자인의 개발과 응용, 상품제작과 유통, 자본회전 등 모든 면에서 유리하다. 자본의 논리를 기준으로 하면 이런 건물들은 클수록 미덕이다. 현재보다 더 커지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건축의 논리로 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크기 문제는 그렇다고 치자. 이 건물들은 또 다른 고약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복도는 사람 한 명 겨우 지날 정도로 좁고, 나머지는 모두 옷가게들로 빼곡히 채워져 있으며, 창이 없다는 점이다. 이런 구성이 시루떡처럼 층층이 쌓여져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가능한 한 최대면적을 분양하거나 임대하기 위해서이다. 자선사업도 아니고 돈 벌려고 지은 건물인데 그럴 수 있다고 치자. 문제는 정도이다. 여러 관점에서 생각해보자.
건축에 ‘실율’이라는 것이 있다. ‘實率’이라고 쓸 수도 있고 ‘室率’이라고 쓸 수도 있다. 한 건물 내에서 계단, 복도, 화장실, 여백 공간 등의 공적 영역을 제외하고 남는 실제 방의 비율을 가리킨다. 실율은 전문적인 개념이 아니다. 우리 주변에서 늘 부딪히는 문제이다. 아파트에서 실제면적이 분양면적보다 줄어드는 것도 실율의 개념이다. 가게나 오피스 임대할 때 계약면적은 100평인데 실제 면적이 62평일 때 실율은 62%가 된다.
실율은 양면성을 갖는다. 건물주인 입장에서는 높을수록 공간 사용의 효율이 높아진다. 반면 사용자 입장에서는 낮을수록 공간적 여유와 쾌적도가 보장된다. 실율이 높다는 것은 좁은 복도 양편에 방만 줄줄이 늘어서는 닭장 같은 건물이라는 얘기다. 실율이 낮다는 것은 중간에 숨통이 트일만한 여백도 있고 복도나 계단도 널찍하다는 얘기다.
이런 양면성은 자본주의의 속성과도 일치한다. 회사에서 자사 빌딩을 지을 때 회장님은 실율을 높이려 할 것이고 직원들은 낮추고 싶어 할 것이다. 자본주의의 영원한 미제(未題)인 상쇄적 쌍개념이다. 실율의 변화 추이는 자본주의의 발전 단계와도 궤를 같이 한다. 한참 성장 단계에 있을 때 지어지는 건물들에서는 실율이 높게 나타난다.
실율이 낮은 것은 낭비이고 심한 경우 죄가 되기도 한다. 압축 개발기 때 청년기를 보낸 50대 이상 세대는 지금도 건물을 볼 때 공간 낭비가 있는지를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다. 후기 자본주의로 올수록 여유가 생기면서 실율이 낮아진다. 실율이 높은 것은 수전노의 문화적 소아증으로 여겨진다. 드라마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트렌디 드라마를 보면 중간 중간에 뻥 뚫린 시원한 공간을 갖는 건물이 배경으로 쓰인다.
실율은 어느 정도가 적당한가. 딱 부러지는 공식이 있는 것은 아니다. 건물 종류나 사회 분위기 등에 따른 편차가 크다. 대강 말하자면 50% 내외이면 비교적 숨 쉴 만한 쾌적한 건물이 된다. 60%를 넘어서면 답답해지기 시작한다. 이 때문에 건축법에서는 계단, 화장실, 복도 등의 최소 폭을 규정하고 있다. 설계 사무소에서는 가끔 오피스 빌딩이나 상가를 설계하면서 누가 높은 실율을 만들어내는가 내기를 하기도 한다.
법규를 지키면서 얻어낼 수 있는 한계는 대략 75% 내외가 된다. 대형 의류매장은 어떠한가. 이 한계를 넘고 있다. 각 점포들이 벽으로 막힌 방이 아니라는 이유로 복도 폭의 최소 규정을 안 받기 때문이다. 점포 앞의 상당 부분을 진열물이 차지한 것까지 고려하면 더 심각해진다. 이 정도면 지하 주차장과 전문식당가를 빼고 옷 매장만 따졌을 때 80%에 육박할 수 있다.
실율이라는 수치로 나타나는 문제점은 실제 가 보면 즉각적으로 느낄 수 있다. 이 속은 옷에 집중하는 일 이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허용이 되지 않는다. 콘텐츠가 한 가지로 단순 집중되면서 사람을 심하게 몰아붙인다. 이 속에 있는 동안은 처음부터 끝까지 바로 코앞에서 옷을 흔들어대는 것 같은 강박관념에 쫓긴다. 좀 심하게 얘기하면 옷더미에 깔린 것 같은 느낌이다. 단 1분도 다른 생각을 하거나 한숨이라도 돌릴 틈을 주지 않는다.
옷에의 단순 집중은 실내 환경도 최악으로 만들었다. 창을 모두 벽으로 막아버린 것이다. 이번에도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옷을 걸 수 있는 벽면을 가능한 한 많이 확보하기 위해서이다. 이런 논리는 고급 백화점에도 엄격하게 적용이 된다. 하물며 저가 의류매장은 말할 필요도 없다. 환기가 잘 안 된다. 새 옷들이라지만 그래도 먼지 나는 옷을 파는 곳이라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미세먼지는 1시간만 노출되어도 건강에 치명적이다. 몇 달에 한 번 하는 것 같은 검사로는 감당할 수 없는 문제라는 얘기다. 이나마도 제대로 시행되지 않지만 말이다.
햇빛도 없다. 그 대신 굉장히 밝은 인공조명이 켜져 있다. 그나마 어둡지 않게 해주었다고 고마워 할 일도 아니다. 조명의 종류와 조도는 사람에게 맞추어진 것이 아니다. 옷을 더 폼 나게 보이려는데 맞추어져 있다. 여기저기에서 지나치게 밝은 국소 조명들이 난무하고 있다. 이런 조명에 장기간 노출되면 눈, 미세신경, 호르몬 체계 등에 나쁠 수 있다. 손님이야 20~30분 돌다가 나와 버리면 그만이다. 밤새 여는 가게를 식구들이 교대로 지켜가며 그 속에서 1년 365일 일해야 되는 종사자들은 다르다.
대형 의류매장은 재래시장의 통로를 사람이 다닐 수 있는 최소한도까지 팍 줄인 다음 수직으로 층층이 쌓은 구성에 다름 아니다. 이대 앞 옷 골목을 압축해서 그대로 옮겨 놓은 구성이다. 노점상들이 같이 따라 다니면서 최소 통로는 건물 주변에서부터 시작된다. 사람에 채여 온전히 걷기가 힘들다. 버스 정류장까지 더해지면서 난리통이다. 건물에 들어갈 사람이 아니면 아예 자동차 도로로 걸어 다닌다. 상습정체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건물 입구에는 작은 무대가 만들어진다. 청소년들의 댄스공연과 경품행사 등이 수시로 벌어진다. 가능한 한 사람을 많이 끌어모으려는 구도이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내고 또 짜내서 쪽쪽 빨아내는 압축기 같다.
대형 의류매장은 동대문이나 남대문 같은 재래시장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요즘은 다른 곳에서도 이들을 닮고 싶어 안달들이다. 전개되어가는 양상이 5층을 30층으로 다시 짓는 아파트 재개발과 비슷하다. 배경에는 항상 자본의 논리가 있다. 대형 의류매장은 뻐길만하다. IMF 때 24시간 훤히 붉을 밝히며 높은 현금 회전율로 위기를 극복하는 데 일조했다. 전국의 소형 옷가게는 이곳에서 옷을 사간다. 일본, 중국, 대만, 러시아 등에서까지 사러오니 앉아서 수출을 하는 셈이다.
옷만 파는 것이 아니다. 요식업, 운수업, 원단산업 등에 미치는 효과도 크다. 넓게 보면 사양 산업이라던 의류 산업을 살려낸 역할도 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합쳐도 ‘사람을 위한 쾌적한 환경’이라는 진부한 상식을 이기지 못한다. 아파트 재개발만이 장기불황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라는 협박이 나라 전체를 점점 더 골병들게 만드는 것을 수 없이 봐왔지 않은가. 그것으로도 모자라 시장까지 가세하는 것인가.
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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