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에게 뭔가 전해주기 위해 떠났죠. 하지만 1년을 지내고 보니 오히려 받은 것이 더 많아요.”
‘2005 컬쳐 제1회 IYF 세계문화체험박람회’가 열린 10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컨벤션홀의 칠레관. 땋아내린 갈래머리에 남미 전통의상을 입은 남은주(26ㆍ여)씨가 관람객에게 칠레 문화와 전통에 대해 설명했다.
9일부터 이틀간 진행된 행사는 사단법인 국제청소년연합이 주최했다. 1년 동안 세계 각국에 파견돼 문화교류와 자원봉사 활동을 마치고 돌아온 대학생과 청년 등 150명의 문화사절단이 스스로의 경험을 나누는 자리였다.
남씨는 “한국에서 잊었던 ‘가족’과 ‘사랑’을 칠레에서 찾아 왔다”고 말했다. 남씨는 초등학교 3학년 때 부모의 이혼으로 그늘 속에서 자랐다. 친구들에게 지기 싫어 돈에 집착했다.
“돈만 있으면 혼자 잘 살 수 있을 거라 여겼죠.” 구미의 한 산업체고등학교로 진학한 그는 ‘돈독’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돈에 매달렸다. 기숙사생활을 하며 연장근무도 야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게 3년 동안 5,000만원이라는 돈을 모았다. 저축상도 받았다.
대학에 진학했지만 마음은 늘 허전했다. 허기진 마음을 채우려다 보니 낭비벽이 생기기 시작했고, 가족을 상실한 그는 몹시 방황했다. 거기에다 주변의 불행도 겹쳤다. 대학 1학년 때 남자친구가 오토바이 사고로 목숨을 잃었고, 절친한 친구는 경제사정으로 자살했다. “왜 나한테만 나쁜 일이 따라다니는 걸까. 그땐 정말 죽고 싶었어요.”
가족과 사랑을 갈망하던 그에게 신앙이 다가왔다. “사랑은 받는 게 아니라 베푸는 것”이라는 설교가 그의 삶을 붙들어 주었다. “남의 사랑을 구하기보다 자신의 사랑을 주기 위해” 자원봉사를 결심했다. 지난해 3월 칠레로 떠났다. 자신보다 더 힘든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산티아고 외곽의 작은 마을이었다.
3개월 동안 스페인어에 매달렸다. 어릴 적의 억척스러움이 다시 살아난 듯 했다. 동네 아이들을 불러 어설픈 한국무용을 가르쳤다. 3명이던 학생은 30명으로 늘었다. 동네 사람들과 이웃이 됐다. 그리고 까린(27) 모녀를 만났다. 까린은 남편과 사별하고 우울증을 앓던 엄마 후아니(54)를 정성스럽게 모셨다.
까린의 효성은 남씨가 잊고 있던 가족애를 일깨웠다. 병을 앓으면서도 가정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후아니의 모습도 가슴 찡했다. 남씨는 “돈만 밝히고 나만 위해 살아온 나의 삶을 반성했다”고 회고했다. 아무리 어려워도 까린 모녀처럼 얼굴 맞대고 고민을 진지하게 나누는 것만으로도 가족은 의미가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남씨는 홀로 떠난 머나먼 타국에서 자신의 가족에 대한 사랑뿐 아니라 더 많은 가족까지 가슴에 안고 귀국했다고 자랑했다. “자기 엄마의 말동무가 되어준 나에게 까린이 ‘그라시아스(고마워요)’라고 하던 말이 아직도 귓속에 남아 있어요.” 남씨는 ‘가족’과 ‘사랑’이라는 말을 할 때마다 방긋 방긋 웃었다.
글ㆍ사진=김회경기자 herm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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