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몸이 권력이 되는 시대다. 평범한 삶들도 성형수술과 다이어트산업이 조장하는 '몸짱'신드롬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지고 '재단' 돼야 할 대상으로 전락한 몸은 소비사회 인간의 욕망을 투사하는 가장 치열한 전쟁터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15일부터 시작되는 한일교류 전시회 '신체의 꿈- Visions of the Body 2005'는 패션과 현대미술을 통해 '이상적인 신체의 획득'이라는 꿈이 어떻게 여성을 유혹하고 억압해왔는지를 보여준다.
그것은 자기복제에 능한 바이러스처럼 시대와 유행, 미의식 변화에 적절히 조응하면서 다음 순간 새로운 구속을 만들어내는 아이러니의 연속이다.
전시는 일본 쿄토(京都)국립근대미술관이 1999년 개최해 큰 반향을 일으켰던 '신체의 꿈: 패션 또는 보이지않는 코르셋'이라는 전시를 토대로 했다. 그러나 당시 전시가 패션과 미술의 시각적ㆍ조형적 유사성을 강조하는 데 중점을 둔 반면, 이번 전시는 패션과 미술작품을 매개로 '몸'을 둘러싼 다양한 사고의 지형도를 찾는 것이 목표다.
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 박파랑씨는 "현대사회에서 패션은 의상을 넘어 사회적 현상으로 군림하고 있다"면서 "현대미술가들은 신체의 이상적 아름다움을 구현하려는 패션의 욕구가 역설적으로 여성의 몸을 억압하는 방식에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그러한 현대 미술가들의 다양한 시선을 통해 신체 이미지에 대한 우리의 통념을 재검토해보는 기회가 되리라는 설명이다.
전시에는 장 폴 고티에, 비비안 웨스트우드, 크리스찬 라크루아, 톰 포드, 존 갈리아노, 알렉산더 맥퀸, 야마모토 요지, 가와쿠보 레이, 빅터&롤프 등 현대 패션의 대가들이 이상적 신체에 대한 욕망을 표현한 작품 90여점이 선보인다.
모두 교토복식문화연구재단 소장품이다. 여기에 울프강 틸만스, 신디 셔먼, 야나 스테르박, 이불, 최규, 이형규 등 사회와 신체의 관계, 또는 패션의 탐미적 패권주의에 주목하는 작가들의 작품 25점이 함께 전시된다.
전체 3부로 구성된 전시의 1부는 '프롤로그:만들어진 신체'다. 의복에 끼워 맞춰진 신체에 대한 이야기다. 17인치 개미허리를 만들기 위해 아찔하게 조인 18세기 코르셋 유물이, 패션역사의 성차별적 태도에 주목한 미술가 야나 스테르박의 89년작 '리모트 콘트롤1'과 함께 전시됐다.
2부 ‘신체와 패션의 새로운 위상'에서는 1906년 코르셋이 폐기처분된 이후 패션디자인 분야의 다채로운 조형실험을 다룬다. 가와쿠보 레이의 '콰지모토 드레스'는 어깨와 등에 거대한 쿠션을 넣어 인체를 의도적으로 비틀면서 아름다움의 전형성에 반기를 든다.
크리스찬 디오르의 수석디자이너 존 갈리아노는 목을 의도적으로 늘리는 장신구와 고딕 건축물처럼 엄격하게 재단된 투피스 드레스로 신체변이에 대한 갈망을 노출한다.
이에 대해 이형규는 투명한 헬멧모양의 설치물 '자기만족장치'를 통해 사용자의 외관을 비틀고 늘려 기이하게 왜곡시킴으로써 신체의 표준화에 저항한다. 마지막 ‘에필로그:이미지로서의 패션’은 21세기 들어 신체의 표현을 뛰어넘으려는 다양한 시도들을 보여준다.
전시장은 관객이 모델이 되어 긴 무대를 걸어나가는 듯한 효과를 내도록 설계됐다. 그건 마치 전시작품들을 보는 동시에 그 작품들에게 관객 자신이 주시 당하는 듯한 주객전도의 현장이다. 관객 스스로 자신의 몸과 몸에 대한 가치관을 재인식해보라는 속뜻이 담겼다. 전시는 7월31일까지. (02)2124-8928
이성희기자 summ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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