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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私學] <9> 걸어온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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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私學] <9> 걸어온 길

입력
2005.06.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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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의 100년 역사는 1906년 5월22일 고종황제의 계비인 엄순헌 황귀비가 하사한 용동궁터와 경비로 세워진 명신여학교(明新女學校)에서부터 시작된다. 명신이라는 교명은 ‘도(道)는 덕을 밝히고 백성을 새롭게 하며 지선에 머무르는 데 있다’는 대학(大學)의 세 강령 ‘명명덕(明明德)ㆍ신민(新民)ㆍ지지선(止至善)’ 중 ‘명명덕’의 명과 ‘신민’의 신을 따 지어졌다.

정숙한 품성과 현명한 지혜를 겸비한 인재를 양성하는 여성교육과 민족의 정통성과 자주성에 입각한 구국애족을 지향하는 민족교육의 두 축을 창립이념으로 하는 명신여학교는 1909년 숙명(淑明)으로 교명이 개칭됐다. 영친왕(英親王)의 아호인 명신재(明新齋)를 학교 이름에 사용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개교 당시 숙명은 11~25세의 양반집안 규수를 대상으로 한 귀족여학교.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미혼뿐 아니라 기혼여성에게도 입학자격이 주어졌으나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의 유교윤리로 인해 창립 당시에는 남자교사가 없었고 1908년에 이르러서야 주시경 선생을 비롯한 남자교사 4명이 부임했다.

초기에는 소수의 학생으로 출발해 1910년 1회 졸업생 4명을 배출한 숙명은 일제 강점기 항일운동사에도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3ㆍ1운동에 전교생 약 200명이 참가해 이은혜 조경민 등 많은 학생들이 체포됐으며, 1927년에는 일본인 교무주임의 사퇴를 요구하며 일본화교육 반대 항일동맹 휴학에 돌입해 1개월간 휴교 조치되기도 했다.

국내 최초의 민족 여성 사학 숙명이 100년의 역사동안 배출해낸 여성인재들은 일일이 열거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최초의 여기자 최은희와 최초의 여성변호사 이태영을 비롯해 비행사 권기옥, 춘원 이광수의 부인이자 의사였던 허영숙 등 사회의 선구적 여성들을 배출해냈다. 특히 소설가 최정희 박완서 한말숙 권지예, 무용가 최승희, 조각가 김정숙, 화가 황주리 등 많은 동문들이 문화ㆍ예술 방면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학계에선 장 상 전 이화여대 총장이 동문이며, 광고계의 문애란 웰콤 대표, 손혜원 크로스포인트 대표 등도 숙명을 빛낸 인물들이다. 방송ㆍ예능계에서도 탤런트 신애라 정선경 나현희 명세빈 송혜교와 아나운서 오유경 강수정씨 등이 숙명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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