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때보다 가정에서의 책읽기 지도가 독서교육의 중요한 첫걸음이라는 걸 공감하게 되는 현실 때문에 자녀들에게 어릴 때부터 올바른 독서습관을 길러주기 위해 노력하는 부모들이 많아졌다. 때문에 유아(幼兒) 때부터 많은 책들과 접하게 되었고, 그 결과 이제 초등학교에 갓 들어간 아이들도 ‘어린 왕자’나 ‘그리스․로마 신화’ ‘걸리버 여행기’와 같은 작품들을 다 읽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재미있었다고 말한다. 과연 그 아이들은 어떤 작품을 어떻게 읽은 것일까? 그리고 무엇이 재미있었다고 말하는 것일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배경에는 늘 ‘세계명작동화(애니메이션 세계명작)’가 존재해 왔다.
명작, 왜 유아들 곁으로 오게 되는가?
어린이들이 이미 유아 때부터 세계 명작에 맛을 보게 되는 직접적인 이유는 대개 책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아직도 상당수의 부모들이 쉽게 ‘세계 명작 전집’이라는 그림책들을 집안으로 들여놓게 되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유명한 책이니까 어려서부터 가까이 하게 해주고 싶다, 그림이 들어있으니 일반 그림책과 다를 게 없다, 매번 책 읽어주기가 힘들었는데 테이프까지 함께 들어있으니 혼자서도 잘 들을 거라는 생각 등에서 이런 책들을 아이들, 특히 유아들에게 안겨주고 있는 실정이다.
이미 수많은 아이들이 이런 책을 읽으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물론 책을 많이 읽게 해주자, 또는 남들도 다 알아주는 책을 읽게 해주자는 의도는 좋다. 그런 독서 교육이 무조건 잘못됐다고,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기왕이면 보다 효율적이고 보다 흥미로운 독서 활동이 될 수 있는 기초를 다질 수 있도록 좀 더 잘 챙겨주자는 이야기이다.
그러기 위해선 이젠 어린이 대신 책을 골라주는 부모들이 책을 고를 때 어떤 점을 고려해야 하는지 먼저 알고 준비해야 할 때이다. 특히 ‘서양 명작’이라는 책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올바른 정보를 갖고 무엇이 문제인가 한 번쯤 더 고려해보자.
명작이 안고 있는 문제점
현재 서양의 명작동화는 전집류만 해도 이십 여 종이 훨씬 넘게 출판․판매되고 있다. 이 중 상당수가 애니메이션(Animation) 기법의 그림들과 함께 유아들을 위해 축약, 변형된 다이제스트(digest) 판으로 출판되어 잘 팔리고 있다.
잘 팔리고 있다는 것은 여전히 우리 부모들이 잘 구매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대개의 가정에서 이런 ‘애니메이션 세계명작동화’가 한 질씩은 읽혀지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영향으로 우리 아이들이 유아기 때 이미 ‘돈키호테’를 읽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명작들의 문제점들을 살펴보자.
첫째, 대부분 줄거리 전달에만 치중되어 있다. 다이제스트된 명작들은 거의 대부분 줄거리 전달이 전부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대부분의 명작이라는 작품들이 아직 어린아이들이 읽기엔 분량이 상당히 길기 때문에 원작을 유아들에게 적당한 길이로 축소하다 보면 당연히 원작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줄거리만 요약해서 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도 재미있다는 일화 중심으로 강조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재미를 주기 위해 애니메이션 기법의 그림을 곁들여 그림책이 주는 단지 무늬만 그림책인 느낌을 주는 경우가 많다.
책을 읽을 때 느끼는 감동은 맛있으면서도 몸에 좋은 음식을 먹는 즐거움과 같다. 처음 입안에 들어갔을 때의 맛, 꼭꼭 씹어먹을 때 점차 부셔지고 녹아드는 질감, 목구멍을 타고 삼켜지는 쾌감, 그리고 온 몸에 퍼져가는 기운 등 직접 체험해 봐야만 가질 수 있는 감동이 바로 음식이 주는 행복이다. 그런데 그런 음식을 맛보지 못하고 그저 갈아서 마신다거나 한 알의 약처럼 꿀꺽 삼킨다면 어찌 그 묘한 맛을 느낄 수 있겠는가.
책도 마찬가지이다. 책을 읽고 즐거움을 느낀다는 것은 단순히 재미있는 줄거리를 읽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먼저 그 안에 담긴 배경과 등장인물들의 대화, 행동, 성격, 심리 등이 우리의 관심을 끌 것이며, 그리고 서로 부딪치는 갈등(문제), 그 갈등이 해결되어 가는 과정, 거기에 개입된 수많은 요인들이 서로 어우러져 그 작품만이 줄 수 있는 독특한 맛을 우리에게 전해주는 것이다.
그 속에서 우리 독자들은 감동을 얻을 수도 있고, 자기 안에 담긴 고민들을 풀어낼 수도 있고, 때론 주인공과 함께 속상하기도 하고 울음을 터트리기도 하면서 작품 속에 푹 빠지게 되는 것이다. 용기도 얻고, 도전하는 마음도 갖게 되고, 인내심도 기르게 되고, 타인의 생각과 삶을 이해하기도 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탐험해 가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게 하는 것이 좋은 책이다.
부모는 적어도 명작동화를 선택할 때만이라도 이런 유익한 경험의 기회를 아이들 스스로 찾게 도와주는 안내자가 되어야 한다.
둘째, 유아들의 수준을 고려하지 않는다. 어린이들에게 읽혀지고 있는 상당수의 명작들은 어른들을 위해 창작된 소설이 원작인 경우가 많다. ‘로빈슨 크루소’ ‘걸리버 여행기’ ‘어린 왕자’ ‘삼총사’ ‘몽테크리스토 백작’ ‘레미제라블’ ‘트로이 전쟁이야기’ ‘해저 2만리’ ‘아서왕 이야기’나 세익스피어의 작품들이 바로 그런 경우이다. 이 작품들은 어휘나 문체, 구성 방식, 그리고 말이나 행동, 심리 등이 모두 어느 특정한 독자의 수준에 맞춰져 있지는 않다. 성인들은 이미 나름대로의 판단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각자 독자들이 자신들의 기호에 맞게 선택해서 읽을 뿐이다.
유아(幼兒)들에게는 그림책과 우리의 옛이야기를 읽어주자
독서를 통해 보다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길 원하는 부모들이라면 이제 막 책이라는 새로운 매개체를 만나기 시작한 유아(幼兒) 시절에는 좀더 많은 그림책을 읽어 주고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그런 활동을 통해 책이 얼마나 재미있는 것인지 자연스럽게 느끼게 하고, 책 속에 펼쳐지는 세상을 경험하면서 차츰 넓은 세상을 향해 힘차게 발을 내딛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엄마와 책과 함께 하는 시간이 즐거워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복잡한 구조를 갖고 있는 명작보다는 쉽고 재미있으면서도 유아의 발달을 고려한 다양한 주제들이 담겨져 있는 그림책을 많이 읽어 주면서 흥미를 북돋아 주자.
/정미선ㆍ한우리독서문화운동본부(www.hanuribook.or.kr) 독서지도 전문강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