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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실에서] 이종문 회장의 돈 쓰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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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실에서] 이종문 회장의 돈 쓰는 법

입력
2005.06.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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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버리 브런디지는 1952년부터 20년간 IOC위원장으로 올림픽 운동을 주도했던 미국인이다. 올림픽 개최 능력이 있었던 때도 아닌 1960년 대에 그는 뻔질나게 한국을 드나들었다.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대통령은 미국 조야의 신뢰를 필요로 했는지 그를 환대했고, 그의 한국 나들이를 놓고 구구한 소문이 나돌았다.

그런데 브런디지 위원장이 한국을 자주 찾았던 진짜 이유는 고려청자와 조선백자 수집에 있었다. 한국인들이 아직 전통문화의 가치에 눈을 돌리지 못했을 때, 그는 한국 도자기에 심취해 있었던 것이다.

70년대 초 은퇴한 브런디지는 캘리포니아의 산타 바바라에 있는 저택에 살았는데, 하루는 집에 불이 났다. 그와 부인은 다른 귀중품을 모두 포기한 채 집안에 소장했던 도자기만 황급히 마당의 수영장을 향해 내던졌다.

더러 깨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남은 것이 500점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타계하기 전 이 도자기들을 샌프란시스코 시립박물관에 기증했다. 그러나 박물관측은 이 보물을 지하창고에 처박아 놓았다. 누구도 이 도자기의 행방에 별로 관심을 두는 것 같지 않았다.

-잠자던 한국 도자기 햇빛보게

그런데 오직 한 사람만이 이 잠자는 골동품을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었다. 실리콘 밸리의 벤처기업가 이종문 회장이었다. 그는 천신만고 끝에 기업을 성공시켜 대박을 터뜨린 후 1994년 가을 샌프란시스코 시립박물관에 한국미술품 전시실을 만들어 달라며 100만 달러를 기부했다.

기자는 당시 실리콘 밸리로 취재여행을 갔다가 이 회장과 만났다. 그가 창업한 ‘다이아몬드 멀티미디어’는 미국에서 가장 성장이 빠른 500대 벤처기업 명단에서 10위권에 올라 있었고, 내가 방문할 즈음 연 매출액이 2억 달러에 근접했다.

오랜 기자생활의 기억에서 그렇게 신나는 인터뷰는 처음이었다. 이유는 두 가지. 첫째는 돈 버는 이야기가 파란만장했고, 둘째는 돈 쓰는 이야기가 마치 청년의 꿈과 같았다.

이 회장은 1980년대 초 50대 중반 나이로 컴퓨터에 대한 특별한 지식도 없이 실리콘 밸리의 하이테크 벤처에 뛰어들었다. 처절한 실패, 배신, 좌절, 절망을 거듭한 끝에 “원숭이 열 마리 중 아홉 마리는 나무에서 떨어진다”는 실리콘 밸리의 경쟁에서 유태인 인도인 중국인 두뇌를 따돌리고 사업의 대반전을 가져왔을 때가 60대 후반이었다.

성공비결을 물었을 때 그는 “출근 시간도 제멋대로인 저 히피같이 생긴 놈들 덕택이다”며 종업원들을 가리켰다.

그는 번 돈의 사회환원에 신념이 강했고 그 방법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있었다. 그의 구상 중에 하나가 샌프란시코 시립박물관이 한국 영토 밖에서 한민족 문화를 가장 풍부하게 보여줄 수 있는 곳이 되도록 하고 싶다는 포부였다.

그는 1,600만 달러 기부 약속을 통해 샌프란시스코 시청과 의회를 움직여 아시아 박물관 건립 프로젝트에 불을 당겼고 시당국은박물관 현판에 그의 이름을 새겨 감사의 뜻을 표했다. 기자는 그 박물관 안에 들어가본 적이 없지만 브런디지가 수집해간 도자기가 전시실에서 광채를 발하고 있으리라.

이밖에도 그는 재산의 사회환원을 광범위하게 실천해왔다. 그의 기부 활동을 보면, 돈이 벌려 기부하는 것이 아니라 기부하기 위해 돈을 번다는 인상을 준다.

-전재산 사회환원 부자 모범

뉴욕의 아시아 소사이어티는 ‘2005 올해의 인물’ 수상자로 야후 창업자 제리 양 등 4명과 함께 이종문 회장을 선정했다. 그는 수상식에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 전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면서 “종업원과 사회의 도움으로 번 재산을 고스란히 자식에게 넘겨주는 것은 경영자로서 부끄럽고 치사한 행동”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미국에는 “현금 수송차가 영구차를 뒤따르는 법이 없다”는 속어가 있다. 인간은 자연에서 원소를 빨아들여 태어나 자라고, 죽으면 분해되어 자연으로 환원한다. 그러나 사회에서 번 돈을 사회로 환원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선지 부자가 마음먹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할 때 대단한 활력을 발휘한다. 이종문 회장이 그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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