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자치단체장과 간부급 공무원에게 “몰래카메라로 찍은 불륜 장면을 폭로하겠다”고 거짓말을 해 이들 가운데 ‘제 발에 저린’ 53명으로부터 1억3,000여만원을 받아 챙긴 김모(49)씨가 10일 경찰에 붙잡혔다.
논산경찰서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해 3월부터 광주의 한 여관에 머물면서 전화번호부를 보고 전국 자치단체와 공공기관, 공사 등의 기관장과 간부 등을 무작위로 골라 “여자와 여관에 들어가는 장면을 몰래카메라로 찍어 놓았다. 돈을 주지 않으면 불륜사실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했다.
경찰 조사결과 피해자 53명 중에는 경기 모 시청의 국장, 대전 모 구청 과장, 정부 외청 서기관, 경북 모 읍장, 모 공사 사업소장이 포함되는 등 전국적으로 망라됐다. 이들은 김씨가 불륜을 목격한 장소 등 구체적 근거를 대지 않았는데도 1인당 100만~500만원을 김씨가 불러주는 통장계좌에 순순히 입금한 것으로 드러났다.
더구나 50명이 넘는 피해 공무원 가운데 경찰에 신고한 사람은 단 1명도 없었다. 시ㆍ도지사나 시장, 군수 등 단체장들은 비서실에서 전화를 받아 연결되지 않았으며, 입금한 사람도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김씨는 범행에서는 경찰, 검찰, 교육공무원은 대상에서 제외했다.
경찰이 김씨가 범행에 사용한 대포폰 2대의 통화내역을 조사한 결과 총 1,068 곳에 전화를 했으며, 통화가 된 600여명 가운데 ‘몰래 카메라’란 말에 “한번만 봐달라” “어떻게 알았느냐” 등의 반응을 보인 사람을 대상으로 협박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1년 반 이상 이어진 김씨의 범행은 최근 충남 논산의 한 기관장이 협박전화를 받고 녹취한 뒤 경찰에 신고하는 바람에 꼬리가 잡혔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들은 구설수에 오를 경우 승진 등에 불이익을 받거나 정년이 임박한 상태에서 불명예스러운 일을 당하는 것이 귀찮아 그냥 돈을 줬다고 진술했다”며 “이들이 실제로 불륜을 저질렀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김씨는 경찰에서 “의외로 몰카 협박이 잘 먹혀 들었다”며 “큰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500만원 이내의 돈을 대포통장으로 입금받아 유흥비로 썼다”고 말했다.
논산=전성우 기자 swch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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