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고위관계자는 10일 한미정상회담 직전에 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논의할 의제에 대해 설명하면서 “양국 정상이 북핵 문제의 평화적, 외교적 해결과 북핵 불용(不容) 원칙을 재확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한미동맹에 대해서는 “공고하고 건강하게 발전하고 있음을 재확인함으로써 동맹관계에 대한 일부의 우려를 불식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평화적 해법 외에 대북 제재 등 강경 수단이 논의되느냐는 질문에는 “그런 얘기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두 정상은 실제 회담에서 북핵 해결을 위한 외교적 노력이 소진됐을 경우의 다른 수단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의중을 타진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관계자는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개선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논의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미국이 6자회담 재개를 위해 평화적 해법에 무게를 실어줌으로써 한국측 의견을 고려해주는 모양새를 취했다면 한국은 북한의 인권 개선에 관심을 표시함으로써 이에 화답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음은 문답.
_한미정상회담 의제는.
“오벌오피스 정상회담에서는 한미동맹, 북핵 문제 등을 주로 다루고, 오찬 회담에서는 남북관계, 동북아 정세 등에 대해 폭 넓은 의견을 교환할 예정이다.”
_한미동맹 의제에 대한 전망은.
“양 정상은 한미동맹의 큰 틀에 대해 얘기할 것이다. 전략적 유연성, 작전계획 5029 등은 이미 실무ㆍ고위급에서 이미 협의가 이뤄졌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논의되지 않을 것이다.”
_북핵 문제에 대한 논의는.
“6자회담 재개와 관련 매우 중요한 국면을 맞이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의 6자회담 조속 복귀를 촉구하면서 회담 재개를 위한 외교적 노력을 경주하기 위한 논의가 이뤄질 것이다.”
_남북관계와 동북아 정세 등에 대한 논의는.
“노 대통령은 남북대화가 6자회담 복귀와 북핵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유용한 창구가 된다는 점을 설명할 것이다. 미국측이 북한 정세에 관심을 표시할 경우 노 대통령은 북한 인권 개선 문제에 대한 우리 입장을 설명하게 될 것이다.”
_노 대통령은 외교적 수단이 소진될 경우 대북 제재를 수용할 것이라는 외신 보도가 있는데.
“그와 관련한 의제나 내용을 갖고 온 게 없다. 현재는 평화적, 외교적 노력을 통한 북핵 해결 방안을 협의하는 과정에 있다. 다만 앞으로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지 않고 상황을 악화시킬 때 외교적 노력이 소진됐다고 관련국 간에 공감이 이뤄질 경우에는 우리가 그때 취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 협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
_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이 핵무기를 추가 제조하고 있다고 밝혔는데, 북한의 6자회담 복귀 가능성은.
“우리는 ‘북한이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회담에 들어오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점을 누차 강조해왔고 북한도 이를 심각하게 검토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생각한다.”
_노 대통령과 딕 체니 미국 부통령과의 면담이 성사되지 않은 이유는.
“체니 부통령이 내일 워싱턴에 없게 되므로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워싱턴=김광덕 기자 kdkim@hk.co.kr
■ 美, 양국 일치된 입장 강조
한미 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10일 미국 정부의 논평은 북한 핵 문제와 한미동맹 등 핵심 의제에 대해 양국의 공통분모를 강조하는 데 초점이 모아졌다. 국무부나 국방부 모두 양국의 일치된 입장과 맹방, 우방임을 부각하면서 이견이 공론화하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해 애썼다.
숀 매코맥 대변인은 이날 “한반도 비핵화가 6자 회담의 명시된 목표이자 우리가 달성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북 핵 문제를 둘러싼 한미간의 여러 입장 중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최대 공약수로 뽑아낸 것이다. 그는 “우리는 긴밀한 우방이자 맹방의 지도자와의 의견 교환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해 한미관계의 이상 징후설이 나도는 상황에서 미국을 찾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줬다.
이런 기조는 한미 동맹에 대한 불만의 진원지로 꼽힌 미 국방부의 이례적 논평에서도 이어졌다. 국방부는 논평을 통해 한미 동맹을 양국의 ‘사활적 이해’로 표현하면서 “양국은 더욱 포괄적, 역동적 동맹관계를 구축해가고 있다”고 밝혔다. 고위 관리들에게서 한미 관계에 대한 거친 언사가 쏟아지고 있다는 보도에 침묵으로 일관했던 국방부의 불 끄기 성격의 발표로 보인다.
미 언론도 노 대통령의 워싱턴 행을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북핵 문제에서 단일한 전선을 형성하기 위한 목적”(AP 통신), “50년 동맹에 대한 우려를 진정시키려는 노력”(블룸버그통신) 이라고 분석하면서 두 정상이 이견을 뒤로 제쳐둘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양측의 호흡 맞추기는 점점 엇나가는 양국 입장의 현주소를 역설하고 있을 수도 있다. 워싱턴에서는 미 정부 내부에 북핵 문제의 외교적 해결에 대한 인내심이 점점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는 관측이 무성하다.
한국 정부가 부인하긴 했지만, “노 대통령이 외교적 수단이 소진할 경우 보다 강경한 대북강압 조치에 찬성할 것임을 부시 대통령에게 확약할 것”이라는 워싱턴 포스트의 보도는 이런 강경 기류를 담고 있다. 최근엔 싱크 탱크를 중심으로 미국이 ‘선한 경찰’, 한국이 ‘악한 경찰’을 맡아야 북핵을 해결할 수 있다는 역할 교체론까지 거론되고 있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나 작계 5029, 동북아 균형자론 등 동맹의 새 척도로 여겨지는 사안에 대해서도 논의를 통해 이견을 최소화하고 있다는 한국 정부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미측은 한국의 ‘이견’에 대해 의심을 거두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10일 회담은 두 정상이 양국의 이견을 어설프게 꿰매는 차원이지 깊은 신뢰를 바탕으로 동맹의 제자리를 찾아가는 수준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이다.
워싱턴=김승일 특파원 ksi8101@hk.co.kr
■ 2시간동안 두차례 회담…라이스·럼스펠트등 배석
10일 낮(현지 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은 전반적으로 원만한 분위기 속에 진행됐으나 북핵 해법 등을 논의할 때는 다소간 긴장감도 감돌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이날 총 2시간 동안 두 차례 정상회담을 갖고 북핵 및 한미동맹 문제 등을 놓고 서로의 의견을 진솔하게 개진했다.
두 차례의 정상회담에는 콘돌리사 라이스 국무장관,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 스티븐 해들리 국가안보보좌관,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 등 한반도 관련 미국 고위 관계자들이 대부분 배석했다. 한국측에서는 반기문 외교부장관, 홍석현 주미대사, 권진호 국가안보보좌관, 이상희 합참의장, 조기숙 홍보수석, 윤병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정조실장 등이 참석했다.
공식 정상회담은 백악관 1층 집무실인 오벌오피스에서 50분 가량 진행됐다. 노 대통령은 이날 숙소인 블레어하우스를 출발해 백악관에 도착, 방명록에 서명한 뒤 집무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부시 대통령과 인사말을 주고 받은 뒤 회담에 임했다.
두 정상은 당초 실무진의 조율에 따라 북핵 문제의 평화적ㆍ외교적 해결 원칙에 대해서는 쉽게 합의를 이끌어냈다. 두 정상은 그러나 6자회담의 진전을 위한 실질적 방안과 북한이 6자회담에 불참할 경우 강경책을 쓰는 방안에 대해서는 조심스럽게 의중을 타진한 것으로 전해졌다.
두 정상은 이어 양국 기자단 앞에서 회담 결과를 설명한 뒤 백악관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1시간 동안 오찬을 겸한 정상회담을 가졌다. 두 정상은 이 자리에서 북한 주민들의 인권 개선 문제에 대해서도 논의한 것으로 알려져 눈길을 끌었다.
부시 대통령이 북한 정세에 대해 관심을 표시하자 노 대통령은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을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 대통령은 “남북대화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유효한 창구가 될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미국측의 지원을 당부했다. 노 대통령은 한일관계와 한중관계를 거론하면서 동북아균형자론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설명하는 기회를 가졌다.
이에 앞서 노 대통령은 9일 오후 권양숙 여사와 함께 워싱턴의 앤드루스 공군기지에 도착해 힐 국무부 차관보 등의 영접을 받았다. 특별기 착륙 직후 천둥, 번개 등을 동반한 폭우가 쏟아지는 바람에 노 대통령 내외는 수행원들이 받쳐준 우산을 쓴 채 트랩을 내려왔다. 공군기지 주변에 벼락 경보가 내려지는 바람에 수행원 일부와 기자들은 1시간 가량 이동하지 못하고 공항에 대기하기도 했다.
워싱턴=김광덕 기자 kd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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