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0쪽에 육박하는 이 책의 부피에 기가 눌린 사람이라면 책을 펴 들고 목차를 확인하는 순간 그 방대한 내용에 놀라고 말지도 모르겠다.
저자인 김한규(55) 서강대 사학과 교수는 지난해 중국과 고구려사 논쟁이 한창일 때 ‘요동사’라는 책을 냈다. 그 책에서 고구려사는 중국이나 한국 어디에도 온전히 귀속되지 않는 독자적인 역사라고 주장해 논란을 불렀다.
이 책은 그 논지의 확장이자, 30년 가까이 중국의 국가관과 세계관을 집요하게 파고든 이 동양사학자가 그 주제에서 이제 ‘손을 떼’는 결산 보고서이다.
저자는 3,000년 동안 서로는 중앙아시아에서 동으로는 연해주까지 거대한 현 중국의 영토 속에서 명멸한 여러 공동체의 역사를 온전히 복원해 냈다. 그 작업을 통해 전통 시대 동아시아의 국제 질서가 어떠했는가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고 시도했다. 고구려사가 한국의 역사가 아니라는 언뜻 보기에 과격한 주장도 편견 없이 역사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김 교수에 따르면 중국(일국을 지칭하는 뜻으로 이 말을 쓴 건 청말 서구 세력이 밀려들기 시작할 때부터이지만)이라는 개념 속에는 북방의 초원 유목 공동체와 요동, 서역, 티베트, 강저(현 중국 서남부), 만월(양자강 이남), 대만 등의 다양한 역사 공동체를 찾아낼 수 있다.
이들 여러 역사공동체가 원래의 중국(황하 중ㆍ하류 유역 중원에서 존속해 온 특정한 역사공동체)이나 주변의 한국, 월남, 일본 등과 함께 전통 시대의 동아시아 세계를 구성했다는 것이다.
전통 시대에 이른바 ‘중국 중심의 세계 질서’의 핵심은 ‘조공과 책봉’의 제도라고 설명한다. 그것이 한대에는 변군(邊郡) 체제로, 위진남북조 시대에는 막부(幕府), 당대에는 기미부주(羈미府州), 명대에는 기미위소(羈미衛所), 명청시대에는 토사(土司) 체제 등으로 다양하게 모습을 바꾸어 등장한다.
시대별로 운용 체제에 차이가 난 것은 동아시아 국제사회의 총체적 상황, 특히 중국의 국가와 사회 및 문화가 역사적 발전에 따라 역동적으로 변했기 때문이는 설명이다.
김 교수의 설명 가운데 아무래도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고조선과 고구려를 포함한 이른바 요동의 역사가 한반도의 역사와는 별개라고 주장하는 대목이다.
그는 서문에서 ‘전통 시대에는 요동에 중국과는 구별되는 별개의 역사 공동체가 오랜 기간 존속해 있었고, 요동 공동체가 만들어 낸 일련의 국가들이 요동을 독립적으로 통치하고 있었음은 엄연한 사실’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현재의 상태를 기준으로 과거에 엄연히 존재한 독립적 역사 공동체를 부정하고 중국의 일개 ‘변강’으로만 보는 것은 객관적 상황을 도외시하고 자기 중심적 시각으로만 세계를 보려는 협소한 애국주의적 사고 방식의 표현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어 그는 같은 논리로 국내의 고구려사에 대한 과도한 애정도 문제 삼는다. 한중간의 역사 전쟁 과정에서 한국의 학계와 언론계가 고구려사의 중국사 편입을 규탄하면서 고구려사는 오로지 한국사의 일부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자기 중심적 사고 방식의 또 다른 표현이라는 것이다.
그는 ‘역사가 사물을 형성하는 과정의 서술임을 인정한다면, 고구려 역사가 현재의 한국을 형성하는 과정의 일부였음과 마찬가지로 현재의 중국을 형성하는 과정의 일부였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할 이유는 어디에서도 발견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이 문제를 논쟁 거리로 삼아 이른바 역사 전쟁 운운하는 사람들은 고구려사가 한국사의 일부임과 동시에 중국사의 일부일 수도 있다는 너무나 당연하고 기초적인 사실로부터 고의적으로 눈을 돌렸을 뿐만 아니라, 고구려라는 국가와 한국 혹은 중국이라는 역사공동체의 개념을 구별하지도 못’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독자적인 역사의 요동공동체가 동호계, 예맥계, 숙신계의 세 종족을 중심축으로 발전해 왔다고 설명한다. 최초 통일 국가는 맥인이 중심이 된 고조선과 고구려. 이어 숙신계가 주축인 발해가 뒤를 잇고, 계속해서 동호계의 거란, 숙신계의 여진(금), 다시 동호계인 몽고(원) 등의 역사가 명멸을 거듭한다는 것.
그리고 요동 역사 공동체의 가장 큰 특징은 중국이나 한국과는 가장 달리 복수의 공동체가 병존하면서 전역을 지배하는 요동 국가가 건립되어 군소 역사 공동체를 끊임없이 융합한 것이 특징이다.
그의 논리는 명쾌하지만, 중국과 달리 고려가 고구려의 계승국임을 천명하고 영토 수복을 꿈꾸었던 것처럼 역사 계승의 강도가 다른 점을 좀더 차별을 두어 이해할 수는 없는 것인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송호정 교원대 교수의 지적대로 요동공동체가 종족별로 독자적 언어를 사용한 사실과 단일한 역사 공동체로서의 자의식의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도 이 논리의 약점이라고 할 수 있다.
김 교수의 몫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중국의 학자들이 정치적인 배경을 깔고 고구려사의 귀속을 주장하는 형편에, 아무리 학문이라는 한계를 짓더라도 이런 주장이 과연 효과적인 대응인지도 의문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