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소식이 고국에 전해져 낳아주신 부모님을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5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59회 토니상(미국 브로드웨이 연극상) 시상식장. 흑단 같은 머리칼, 살구빛 얼굴의 한국인 뮤지컬 여배우 데보라 크레익(31)씨가 수상 소감을 밝혔다.
그는 모두 6개 부분에서 후보로 올라 각본상과 남우주연상을 수상, 세상의 주목을 받은 화제의 뮤지컬 ‘제25회 풋남 카운티 스펠링 비(The 25th Annual Putnam County Spelling Bee)’에 출연했다.
탄탄한 연기로 호평을 받은 크레익씨는 사실 31년 전 포대기에 싸여 한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입양인이다. 1974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생후 6개월도 안돼 당시 2세이던 오빠와 함께 홀트아동복지재단을 통해 미국의 루터교 목사 가정에 입양됐다.
그의 한국이름은 우연정, 오빠 이름은 우관수다. 대학을 나와 96년부터 TV 시리즈에 단역으로 출연하다 99년부터는 영화배우와 오프브로드웨이 배우로 활동했고 이어 브로드웨이까지 진출했다.
갑작스러운 유명세 때문에 9일 새벽에야 연락이 닿은 그는 서툰 한국어로 자신의 한국 이름을 또박또박 말했다. “우연정. 그 이름과 제 친부모를 늘 가슴에 묻고 살았죠. 하지만 이제 찾고 싶어요.”
양부모가 잘해주기도 했지만 워낙 어릴 때 입양된 터라 크레익씨는 30여년 동안 꼬박 미국인으로 살았다. 하지만 그의 브로드웨이 데뷔작인 ‘제25회 풋남 카운티 스펠링 비’에서 한국인 여성 마시 박 역할을 맡으면서 기억저편에 잠긴 향수와 친부모에 대한 그리움이 되살아 났다.
“원작엔 아ㆍ태계 여학생으로 설정돼 있었어요. 하지만 제가 한국인으로 바꿨죠. 게다가 한국의 심각한 과외병을 상징하는 인물로 묘사한 것도 주변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성격으로 변경시켰어요.” 한국 출신이라는 사실을 늘 자랑스럽게 여겼기 때문이다.
밤늦게 고국에서 걸려온 전화에 크레익씨는 흥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만날 수 있나요? 만나고 싶어요. 제가 누굴 닮았는지, 함께 입양된 오빠말고 다른 형제도 있는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왜 우리 남매를 이 먼 나라까지 보냈는지….”
김회경기자 herm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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