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수행의 세계, 신을 벗고 마음을 비우고 고요함에 이르소서….”
8일 저녁 7시 남대문시장이 내려다보이는 서울 회현동의 한 오피스빌딩. 조그만 십자가가 걸려있는 10평 남짓한 작은 다다미방에 맑은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5분여 간 침묵이 방안을 채웠다. 20여명이 모였지만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고 시장에서 들려오는 소음조차 아득해졌다. 국내 첫 개신교 명상원 ‘예수도원(道園)’의 한돌맞이 모임은 이렇게 조용히 시작됐다.
예수도원은 개신교에서 잊혀진 ‘수도원적 영성’을 회복하기 위해 지난해 6월 젊은 개신교 목사, 신학생 등 10여명으로 이뤄진 씨알수도회가 중심이 돼 만든 모임이다.
한국의 개신교가 수년 전부터 영성의 회복을 화두로 내걸었지만 그 실천은 미미하기 짝이 없다. 예수도원은 ‘개신교 수도원’을 향한 작은 실험의 장이다. “수도원적 영성은 가톨릭 것만의 것이 아니고, 기독교 전체의 것입니다. 그러나 개신교는 이를 잊은 지 오래됐습니다.
특히 한국 개신교는 지나치게 외부 활동적이고 때로 공격적이어서 그 대안으로 수도원적 영성을 회복하자는 것입니다.” 예수도원을 이끌고 있는 김진 목사가 밝힌 취지다.
이 날은 설립 한 돌을 기념해 개신교 영성 회복에 남다른 관심을 가진 이현주 목사를 초청해 ‘그리스도인의 명상생활’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이 목사는 조그만 평상을 앞에 두고 예수도원의 주요 명상법인 침묵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면서 말을 시작했다. 그는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참고 표현하지 않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속에 하고 싶은 말이 없어야 참된 침묵이라 할 수 있다”면서 “그 경지까지 가지 못해도 그 경지를 그리워하고 그리고 향해 가면 될 것 같다”고 했다.
이어 명상의 고요한 상태를 일상생활에까지 연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 이 목사는 명상의 최종 경지를 유교와 불교의 언어를 빌려 표현했다. “공자는 4가지가 없다고 그의 제자들이 말했습니다.
의(意)필(必)고(固)아(我), 즉 ‘하겠다’ ‘반드시’ ‘굳음’ ‘나’ 가 없었다고 합니다. 예수도 마지막에는 무아(無我)의 경지에 올랐습니다.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란 마지막 기도가 이를 말합니다.”
예수도원 회원들은 매주 월요일 저녁 기도모임, 월 1회의 피정, 수시로 마련되는 수련프로그램을 통해 명상을 수련한다. 월요일의 기도모임은 타종-침묵-주기도문-영성노래-렉시오 디비나(거룩한 독서)-묵상 나눔-기도-타종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 요란한 음악도, 좌중을 휘어잡는 설교도 없다. 침묵과 렉시오 디비나가 핵심이다.
침묵은 마음이 허명정일(虛明靜一), 즉 비워지고 밝아지고 고요해지고 하나가 되도록 하는 것이며, 말의 침묵을 넘어서는, 생각과 몸의 침묵, 즉 존재의 침묵을 말한다고 김 목사는 설명했다. 성스러운 독서는 성서의 구절이 내게 주는 뜻이 무엇인지 하느님의 뜻을 듣는 것이라고 했다. 수시로 마련되는 수련프로그램에서는 기독교뿐만 아니라, 힌두교 이슬람교 불교 등 이웃 종교들의 명상법을 배우기도 한다.
김 목사는 “지난 1년간 외형적으로 크게 성장하지는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기도, 명상을 같이 하면서 개신교에도 명상 문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조금씩 알린 것이 성과”라면서 “궁극적으로는 노동과 기도를 함께 하는 수도원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예수도원은 수도하는 이들의 자발적 보시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남경욱기자 kwnam@ 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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