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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펠트 부국장과 이상열 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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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펠트 부국장과 이상열 공사

입력
2005.06.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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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인가, 배신자인가.’ 33년 만에 스스로 얼굴을 드러낸 '워터게이트사건'의 ‘딥스로트’(deep throatㆍ익명의 제보자) 마크 펠트 전 미 연방수사국(FBI) 부국장의 행위를 두고 미국 내에서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영웅론’을 펴는 사람들은 “펠트가 닉슨 대통령의 부패와 불법행위 등 권력남용을 저지했다”고 주장한다.

펠트의 손자인 닉 존스는 “우리가족은 할아버지가 나라를 끔찍한 부정에서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의 의무 이상의 일을 한 위대한 미국의 영웅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 닉슨 행정부에 몸담았던 인사들은 그가 배신자라며 극렬히 비난한다.

그가 당시 국가안위를 취급하는 정보부서의 최고위급 인사였는데도 직무상 취득한 기밀을 언론에 흘린 것은 명백한‘실정법 위반’일 뿐 아니라 대통령을 배신한 것으로 공직자의 직업윤리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당시 백악관 공보특보였던 척 콜슨은 “펠트는 미국의 정치가 왜곡되는 것을 은밀하게 막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지만 밖으로 나가 행정부를 흔들었다”고 일갈했다.

양측의 주장이 다 일리가 있지만 펠트의 행위는 순수한 정의감의 발로라기보단 자신의 생존을 위한 ‘검은 거래’였음은 분명해 보인다. 지금이야 많이 바뀌었지만 에드거 후버라는 ‘권모술수의 장인’(匠人)이 FBI 국장으로 장기집권하던 1924년부터 72년까지 백악관과 FBI는 적대적 관계와 유착 관계를 반복했다.

후버는 측근들에게 “내가 8명의 대통령을 모셨다기보다는 사실상 그들을 콘드롤했다”고 고백했다. 신임 대통령이 집권 초 자신을 해임하려 할 때마다 새 대통령의 ‘비리파일’이 든 봉투를 들고 백악관에 들어가 은근히 협박하는 수법으로 위기를 모면하곤 했다.

바로 이 후버를 보좌하며 자리보전의 노하우를 익힌 펠트는 닉슨이 사망한 후버 국장 후임에 자기 대신 패트릭 그레이 법무차관보를 지명하자 닉슨을 제거하는 작업에 나섰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펠트의 행위는 미국 현대사에서 “대통령도 불법행위를 할 경우 물러날 수 밖에 없다”는 귀중한 선례를 남기는데 기여했다는 점에서 동기의 불순함은 덮어 줄만하다는 게 미국의 대체적인 여론인 것 같다. 범지구적 화제가 된 펠트의 고해성사를 보면서 문득 김형욱 살해사건의 현장책임자로 지목받고 있는 이상열 전 주불공사의 침묵이 떠올랐다.

그는 `국정원 과거사위'와의 면담조사에서 "노(No)라고 했다고 기록해 달라"며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과거사위의 중간발표에 따르면 이 씨는 79년 당시 프랑스 주재 중정 거점장으로 김형욱 살해사건을 현지에서 총지휘했다. 그런데도 그는 ‘재직 중 취득한 정보는 무덤까지 가지고 간다’는 정보요원의 철칙을 이유로 과거사위의 조사에 함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 씨의 함구는 이제 더 이상 미덕이 아니다. 그가 당시 파리에서 한 행위가 국가와 민족을 위한 ‘비밀작전’이었다면 당연히 입을 닫고 있어야 한다. 정보획득 등 국익을 위해 제3국을 대상으로 수행한 과업이었다면 더더구나 그러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의 행위는 박정희 정권을 위한 비도덕적 공작의 하나였을 뿐이다.

더구나 과거의 추악한 공작행위의 진상 규명을 통해 새롭게 거듭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과거사위 활동에까지 이 씨가 협조하지 않는 것은 비양심적일뿐 아니라 비겁하기 조차 하다. 국민 특히나 김형욱씨의 유족을 위해 이 씨가 해야 할 몫은 양심고백 뿐 이다. 펠트 부국장이 그랬던 것처럼.

정치부장 윤승용 aufheb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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