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가장 재미있게 보던 TV 프로그램은 김 일 선수의 레슬링과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였다. 레슬링은 남성다운 승부의 세계를 유감없이 표현하는 스포츠이고 미스코리아는 가장 여성스러운 경쟁이 돋보이는 예술이다. 시간이 가면서 레슬링은 더욱 격렬한 이종 격투기로 바뀌었다. 사람들이 더 격렬한, 더 확실한 승부를 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스코리아는 안티(반대) 세력을 만들어냈다. 여성을 상품화한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현대 사회의 상품은 경쟁력을 상징하는데 여성의 아름다움에는 경쟁력이 있다. 그런데 그 경쟁력을 마치 하위 개념으로 생각하게 됐다.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는 그래서 몰래 치르는 행사가 되고 말았다
안티 입장에서는 가치 없는 일이 됐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서울 지역 예선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뒤 아름다움에 대한 열망은 지구상에 여성이 존재하는 한 사라지지 않을 것이란 확신을 얻었다.
따라서 세계 각국에서는 자기네 나라를 대표하는 미인을 선발하는 대회를 중단하거나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미인대회는 시대에 따라 변화하면서 새로운 미인상을 만들어낼 것이다.
5월 31일 서울 예선이 있었다. 나처럼 휠체어 탄 장애인을 미스코리아 심사위원으로 위촉한 것은 처음이었다. 참가자 22명은 나를 의식한 탓인지 서로 봉사 경험을 털어놓았고 미스코리아가 된 후 국제적인 봉사 활동을 하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최종 후보 6명은 인터뷰 점수가 크게 작용을 하는데 내가 내놓은 질문이 채택됐다.
“우리나라에서도 장애인 미스코리아 탄생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느냐”고 묻는 내용이었다. 한 후보는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가능하며 장애인이 나와 다르다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고 해 박수를 받기도 했다.
미국은 1995년 청각장애인 미스 아메리카를 탄생시켰다. 화이트 스톤은 8등신의 완벽한 미인이다. 호명되는 소리를 듣지 못하다 옆에 있던 참가자가 축하의 입맞춤을 하자 그제서야 기뻐하던 모습이 생생히 떠오른다.
사회자가 “청각장애를 딛고 어떻게 뽑혔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묻자 “세상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보는 게 가장 큰 장애가 아닐까요?”라고 대답해 기립박수를 받았다. 전 세계 사람들은 외적인 아름다움 못지않게 내면의 아름다움을 지닌 가장 완벽한 미인의 탄생이라고 감탄했다.
바로 이것이 미의 정체성이다. 미스코리아에서도 스톤 같은 주인공이 나올 날을 기대하게 된다. 그러면 안티가 생겨날 수가 없을 것이다.
방귀희 솟대문학 발행인ㆍ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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