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지난 2일 아침 중국 상하이에 내려준 뒤 선전과 대만 카오슝항을 거쳐 미국 뉴욕으로 간다고 했으니 지금쯤 파나마 운하를 향해 북태평양 망망대해를 건너가고 있겠군요. 항공모함에 비교되는 4700TEU(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개)급 글로리호를 지휘하는 이 선장과 배 안에서 보낸 40시간은 참으로 즐겁고 유익했습니다.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의 위상을 보여주는 컨테이너선의 위용과 역동성, 21세기의 화두는 바다경영이라는 자각, 그리고 귀찮은 손님에 대한 선원들의 다양한 배려 등이 잘 짜여진 여정이었죠.
-상전벽해된 中 상하이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요, 솔직히 말해 상하이의 첫 인상은 별로였습니다. 북한 김정일 주석의 눈에는 천지개벽처럼 보였을지 몰라도 그런 정도의 첨단 고층빌딩 군(群)이나 차량 물결은 그다지 경이롭지 않았다는 것이죠.
동방명주(東方明珠)로 대표되는 푸동 밤거리의 오색찬란한 조명은 화려하고 활기찬 느낌을 줬지만 왠지 인위적인 냄새가 강해 자연스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 가벼운 감상이었습니다. 사회주의적 시장경제의 효율성을 십분 활용한 대륙 근대화의 엄청난 에너지가 곳곳에서 분출하고 있었으니까요. 거기에 비하면 동북아 물류ㆍ금융 허브를 지향한다는 참여정부의 숱한 로드맵은 내용에서나 실천력에서나 참으로 초라한 것이었습니다.
지난 4월 햄프싱크 주한EU상공회의소 회장이 “한국의 동북아 허브계획은 중국의 성장을 의식한 임시변통에 불과하며 기껏해야 지리적 위치를 활용한 물류틈새에 머물 것”이라며 “한국의 공항과 항만은 경쟁국에 비해 효율성이 떨어지는데다 원스톱 서비스는 말뿐이고 당국자가 자주 교체돼 매번 같은 설명을 되풀이해야 한다”고 혹평했을 때만 해도 늘 듣는 얘기라고만 여겼죠.
그러나 상하이항의 급속한 성장과 공격적 미래 청사진을 눈과 귀로 확인하는 순간 그의 말이 두렵게 다가왔습니다. 컨테이너 화물 처리량에서 2003년 부산항을 제치고 홍콩, 싱가포르에 이은 세계 3위항으로 부상한 상하이항은 2020년까지 모두 60억달러를 투입하는 ‘대소양산(大小洋山) 프로젝트’를 진행중입니다.
상하이항에서 32㎞ 떨어진 소양산섬과 대양산섬에 50선석의 컨항을 만들고 이를 세계 최장 해상대교로 연결하는 대역사입니다. 2년여만에 다리 건설은 마무리단계에 접어들었고 1차 4개 선석 공사도 거의 완료돼 10월이면 개통된다고 현지언론들도 야단입니다.
그리고 상해쪽 임해 배후단지엔 300㎢ 규모로 주거 물류 금융 IT 무역 기능을 두루 갖춘 신도시가 건설되고 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현장은 상전벽해라는 말로도 부족하며 세계 주요 부동산 해운 물류 금융회사들은 경쟁적으로 부지확보에 나섰다는 게 현지 관계자들의 얘기입니다.
이렇게 되면 장강 하류의 토사문제로 인한 수심 때문에 근본적 한계를 안고있던 상하이 주변은 명실공히 세계 최대의 물류항이 됩니다. 세계의 공장인 중국이 물류의 블랙홀이 된다는 얘기죠.
-우리 동북아 허브는…
한국은 이미 영향권에 접어들었습니다. 상하이항과 선전항에 밀려 세계 5위로 떨어진 부산항이 지난해 처리한 컨테이너 물동량은 1144만TEU로 성장률이 9% 남짓이었습니다.
매년 30~40%씩 증가하는 중국 항만들과 비교도 안됩니다. 올해의 경우 정부는 전국 9개 항만의 컨 물동량을 1900만TEU로 예측했으나 1600만TEU를 넘기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대체적 전망입니다. 정부는 2011년까지 부산과 광양항에 각각 30선석과 33선석을 추가 건설해 물동량 처리능력을 대폭 확대하고 네덜란드 로테르담항처럼 고부가가치항을 지향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는 격화되는 세계 항만전쟁을 도외시한 아전인수식 계산법입니다. 지자체의 이해대립에 매몰돼 부산 신항의 이름조차 짓지못하는 로드맵으로 어떻게 동북아 물류중심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까.
동북아시대위원회가 관여한 행담도 게이트 얘기나 할 걸, 너무 머리아픈 소리만 늘어놨나요? 내달 말 부산으로 귀항할 때면 좀 더 밝고 건설적인 주제로 만나야죠.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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