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상원에서 ‘핵무기 공격안’이라는 완곡한 표현의 핵 정책 논의는 잠잠해졌다. 이제는 문자 그대로 ‘세계 핵무기 공격안’ 이라는 공세적 정책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얼마 전 군사 문제 전문가 윌리엄 아킨이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드러났듯 미국 핵 공격 정책의 변화는 충격적이다.
미국 대통령이 간단한 ‘통보’만으로 공격 목표 대상국에 핵무기를 포함한 정교한 군사 공격을 즉각 실행할 수 있는 비상 타격 명령이 입안돼 있다는 것이다. 이 명령은 몇 시간 안에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과거 상원에서 논의되었던 ‘핵무기 공격안’은 광범하게 토론에 부쳐졌었다. 이번의 ‘세계 핵무기 공격안’은 대통령의 한 마디 명령에 의해 실행되는 것으로 공격의 질적 측면에서 엄청나게 심각한 파괴력을 내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진지한 논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킨에 의하면 새로운 형태의 군사공격 전략은 2003년 1월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명령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2004년 7월 리처드 마이어스 합참의장은 제임스 엘리스 당시 전략사령관에게 “대통령이 세계 어느 나라든 미국에 위협이 되는 국가에 대해 최후 통보 후 즉각적으로 공격을 단행할 수 있도록 항시 군의 비상 대기 상태를 유지하라고 임무를 부여했다”고 말했다는 게 알려졌다.
그리고 지난해 가을 브루스 칼슨 제8공군 사령관은 “우리는 전세계적인 대규모 공격 계획과 실행 능력을 갖추었다”고 선언했다.
새로운 핵 공격 전략은 미국 정책의 역사로 볼 때 혁명적인 것이다. 이런 조짐은 2002년 핵 정책 보고서에 이미 나타난 바 있지만 당시 큰 주목을 끌지 못했고 얼마나 심각한지에 대해서도 논의되지 않았다.
보고서에서는 미국 핵 공격의 주요 대상을 중국, 북한, 이라크, 이란, 시리아와 리비아로 지정하고 새로운 형태의 핵 무기 제조와 핵 무기 운반 장치의 연구 필요성을 제안했다. 2020년에는 대륙간 탄도 미사일, 2029년 잠수함 탑제 탄도 미사일, 2040년에는 중폭격기를 개발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것은 근본적인 문제점을 제기한다. 세계에서 가장 강한 재래식 군사력을 확보하고 있는 미국이 지구촌의 핵 위협을 배가하는 새로운 형태의 핵 공격 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다른 국가에 핵무기 보유의 필요성을 자극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이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이해하기 힘들다. 로마제국 이래 가장 강력한 제국이라는 미국이 핵 영역에서 자국의 우위를 지금보다 더욱 공고하게 해 나갈 필요가 있단 말인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원자폭탄에 대한 미국의 독점적 지위는 유럽 문제에 관한 소련과의 협상에서 적극적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재래식 무기의 상대적 열세도 핵무기 선제 공격으로 충분히 상쇄할 수 있다는 관념이 퍼졌다. 이런 생각은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1950년대처럼 대규모 지상군을 유지하는 것은 미국으로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재래식 무기에 의한 군사력으로는 이라크라는 나라 하나 감당하는 정도에서 고갈될 수 있음이 드러났다.
이것이 ‘미국의 세계 지배’라는 수사(修辭)와 미국의 공세적 정책이 실제로 초래하는 초라한 ‘현실’과의 갈등이다. 이런 상황에서 핵무기 공격의 문제를 놓고 미국 대통령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조너선 셸 국제문제 칼럼니스트ㆍ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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