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화는 여름의 전령이다. 6월을 붉게 달구는 해당화를 보고 싶어 차를 달렸다. 충남 태안군 원북면 신두리 해안 사구가 기다리고 있었다.
길이 3.4㎞, 폭 0.5∼1.3㎞로 국내 최대 규모(35만여평)의 사구이다. 해류에 의해 운반된 모래가 쌓여 형성된 퇴적 지형으로서 일종의 작은 사막이다.
진짜 꽃을 보기 위해 사막에 든다는 것은 언뜻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 곳에서 사막을 연상하기란 더욱 어렵다. 천연색 향연이 기다리는 모래밭을 그려보라. 푸른 초지 사이에 영롱히 자리잡은 해당화의 자태가 눈부시다. 붉은 기운을 토해내며 여름 한가운데로 끌고 가는 모습이 장관이다. 세계 어디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사막을 볼 수 있을까.
이국적인 지형 덕택에 천연기념물(413호)로 지정됐지만 적잖은 몸살을 앓고 있다. 개발과 보존이라는 명제 사이의, 낯익은 갈등은 여기서도 낯설지 않다.
이 와중에 망가지는 것은 바로 주변 환경. 신두 사구로 가는 길에서부터 그런 분위기는 감지된다. 입구에 해당하는 신두리 해수욕장 일대는 태안의 다른 해변에 비해 유명세가 덜 해 지금도 비포장 도로로 남아 있긴 하다. 하지만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펜션, 또 펜션이다.
그나마 해안을 따라 도열하듯 들어 선 까닭에 여기에 투숙하지 않으면 바다 구경은 포기해야 할 판이다. 초장부터 영 말이 아닌 셈이다.
사구 내에서도 볼썽사나운 모습은 이어진다. ‘재산권을 보호해 달라’는 주민들의 플래카드와 ‘천연 보호 구역내에서의 개발 행위는 삼가 달라’는 정부의 표지판이 힘겨루기 하고 있다. 사구 인근에 골프장이 들어선다는 말까지 나오는 판이고 보면, 이 일대는 더 이상 어찌해 볼 도리 없는 계륵 같은 땅으로 전락할 위기에마저 노출돼 있는 셈이다.
그러나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자. 이 사구 도처에 희망의 싹은 아직도 인간들에게 손을 벋고 있다. 모래 지형에서 자라는 다양한 동식물이 구축한 독특한 생태계는 대자연의 힘을 새삼 느끼게 하기 족하다.
나팔꽃의 사촌뻘인 갯메꽃은 또 어떤가. 분홍과 흰색이 어우러지면서 모래위에서 웃고 있다. 완두콩과 비슷하게 생긴 갯완두도 이에 질세라 분홍꽃을 틔웠고, 갯그렁, 갯방풍 등은 숨죽인 채 제철을 기다리고 있다.
겨우내 움츠려 있다 봄부터 왕성한 생명력을 과시하며 키재기 시합이 한창인 통보리사초와 좀보리사초는 또 어떤가. 그 둘은 모래밭에 군락을 지워 벋어가고 있던 이 동네 터줏대감이다.
이따금 존재하는 습지는 신두사구를 더욱 신비롭게 한다. 모래 생물과 더불어 습지 생물이 공존하는 곳이다. 모래밭 곳곳에서 갈때기 모양의 구멍을 본다 해도 이 곳에서는 놀라지 말자.
개미귀신이 벌레를 잡으려 만들어 놓은 함정이다. 바로 곁에서는 맹꽁이, 누룩뱀, 물떼새, 금개구리 등 쉽게 접할 수 없는 생명체의 향연도 펼쳐진다.
신두사구로의 여행은 그래서 소중할 수 밖에 없다. 왜 자연을, 환경을 보호해야 하는 지에 대한 명쾌한 해답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태안=글ㆍ사진 한창만기자 cmhan@hk.co.kr
■ 태안/ 해수욕장의 도시
태안은 물의 나라이다. 꾸불꾸불한 리아스식 해안을 쭉 펴면 530㎞에 달한다. 해안선을 따라 이름이 붙은 해수욕장만 30개를 넘는다. 꽃지, 만리포, 천리포, 몽산포 등 서해안의 대표급 해수욕장은 주말이면 발 디딜 틈이 없다.
굳이 이름날 해수욕장을 찾을 필요는 없을까. 조금은 한적한 해수욕장을 찾는다. 이름만큼이나 예쁜 해수욕장이 기다리고 있다.
태안의 북쪽끝은 만대포구이다. 태안읍에서 603번 지방도를 따라 30㎞이상 가야 한다. 만 채의 집이 들어설 수 있는 공간이라는 뜻이지만, 거리가 너무도 멀어 가다가 만대(가다가 포기한 곳)라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는 우스개까지 전한다. 만대 인근의 꾸지나무골은 태안 북단에 자리 잡은 해수욕장이다.
해변을 둘러싼 송림과 해변옆 바위를 뒤덮은 조개껍질이 운치를 더 한다. 꾸지나무골 아래 사목 해수욕장은 모래가 넘쳐 난다. 모래가 많이 밀려오는 지역이라는 이름답게 모래 찜질이 유명한 곳이다.
603번 지방도를 따라 나오다가 이원 방조제를 지나면 학암포해수욕장과 만난다. 학(鶴)이 노닐던 바위(岩)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아름다운 바위가 난초와 어우러져 절묘한 조화를 이뤄낸다. 학암포 아래 구례포 해변은 KBS 드라마 ‘먼동’의 촬영지로 유명해진 곳. 파도가 잔잔하고 알맞게 형성된 백사장이 포근한 안식을 제공한다.
다시 634번 지방도를 따라 내려간 뒤 32번 국도를 따라 우회전하면, 만리포, 천리포, 백리포해수욕장을 차례로 만난다. 백리포 위에 위치한 안뫼해변은 꽃지해변의 낙조 못지않은 아름다운 해넘이를 감상할 수있다.
갈음리해수욕장은 32번 국도를 나와 태안읍으로 가다가 다시 603번 지방도를 타고 우회전, 안흥내항과 안흥외항(신진도) 방향으로 달리는 길에 만난다. 울창한 소나무와 고운 모래가 인상적인 해변이다.
이정표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터라 한적하기까지 하다. 영화 ‘번지 점프를 하다’에서 주인공 이병헌과 이은주가 송림이 드리운 해수욕장 앞에서 어설픈 왈츠를 추는 장면을 이 곳에서 촬영했다. TV 사극 ‘찬란한 여명’과 ‘용의 눈물’을 찍기도 했다.
24만여평 넓이의 작은 해수욕장이지만 뒤로는 솔숲, 앞으로는 기암괴석이 펼쳐지는 빼어난 경관을 갖추고 있는 덕에 인기가 상승중이다. 여기까지면 태안의 절반 정도를 본 셈이다.
603번 지방도를 도로 나와 이제 77번 국도와 만나면 안면도 방향으로 내려간다. 몽산포, 달산포, 청포대 등 무려 13㎞나 이어지는 해변을 지나면 안면도 입구에 도착한다.
안면도는 원래 섬이 아니라 육지에서 뾰족하게 튀어나온 곶이었다. 조선 시대에 곡물 운반선의 왕래를 쉽게 하기 위해 땅을 잘라 섬으로 만들었다. 다시 육지가 된 것은 1970년 안면대교가 세워지면서부터 였다.
꽃게와 대하의 집산지로 유명한 백사장해수욕장과 삼봉해수욕장을 지나면 두여해수욕장이 나온다. 나무가 우거져 도인들이 도를 닦던 마을이라는 의미에서 도여라고 불리다가 두여로 정착했다.
경사가 완만하고 수온이 높아 늦여름까지 물놀이가 가능하다. 인근 밧개해수욕장은 해변 곳곳에 모래 언덕이 있고, 어패류와 해초가 많아 살아있는 바다 학습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꽃지해수욕장을 지나 안면도 가장 남단에 자리잡은 바람아래해수욕장은 이름에서부터 정겨움이 묻어나오는 곳이다. 용이 승천하면서 큰 바람과 조수 변화를 일으켜 형성됐다고 전해진다. 태안의 해안 비경 순례는 이 곳에서 마침표를 찍는다.
태안=글 사진 한창만기자 cmhan@hk.co.kr
■ 태안/ 꽃·나무의 도시
태안은 꽃과 나무의 나라이다. 천삼백리 해안길이 꽃 천지다.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 없는 수목원과 휴양림까지 있다. 바다 향기에 흠뻑 빠졌다면 이제 상큼한 꽃 향기에 취해 보자.
♥ 청산수목원
여름과 함께 찾아 오는 꽃이 있다. 연꽃이다. 지금 이맘때 청산수목원은 연꽃 세상이다. 7~8월 만개 시기를 향해 조금씩 화려한 봉오리를 벌리고 있다. 백련, 홍련은 물론 노랑어리연, 가시연 등 200여종의 수련이 물속에서 서서히 몸통을 드러내고 있다. 수목원 중심에 자리잡은 예연원에서는 부레옥잠, 부처꽃, 물양귀비 등 100여종의 수서 식물도 자란다.
만(卍) 자 모양을 한 꽃길은 이 곳을 다녀간 모든 이에게 길상만복이 깃드시라는 수목원측의 배려다. 화가 고흐가 좋아했다는 랑그루아 다리를 본뜬 ‘고흐의 다리’도 인상적이다. 태안읍에서 77번 국도 따라 안면도 방향으로 10㎞가량 가다 보면 왼쪽에 청산수목원 입구표시가 나온다. 입장료 3,000원. (041)675-0656.
♥ 안면도자연휴양림, 안면도수목원(http://www.anmyonhuyang.go.kr)
안면도는 원래 소나무의 보고이다. 안면도에서만 볼 수 있는 희귀종이어서 안면송으로 불린다. 고려 시대부터 나라에서 직접 소나무를 관리했다. 조선 시대에는 궁궐의 신축, 보수에 사용할 정도로 질 좋은 소나무가 즐비했다.
지금도 국내 대표적인 솔숲으로 이름 나 있다. 꽃지해수욕장 뒷편에 자리잡은 안면도자연휴양림은 100년 된 소나무들이 자생하고 있다. 규모만 430㏊이다. 시원스레 쭉쭉 뻗은 소나무에서 발산되는 피톤치트향이 머리를 맑게 한다. 소나무 숲 사이로 산책로가 나 있고, 18개 동의 콘도가 마련돼 있다.
휴양림 맞은 편에 자리잡은 안면도수목원은 2002년 안면도꽃박람회 때 조성됐다. 11㏊의 부지에 한국 전통 정원, 생태 습지원, 식용수원 등 13개의 자생 식물원이 들어서 있다.
조선 시대 별장인 별서정원을 본떠 먼둔 아산정원도 볼거리. 백제 시대 연못에 자생 초화와 화목이 어우러져 한국의 미가 물씬 풍겨난다. 휴양림 입장료(성인 1,000원, 어린이 400원)로 수목원입장까지 가능하다. (041)674-5019
♥ 천리포수목원 www.chollipo.org
국내 최초의 민간 수목원인 천리포수목원도 태안에 자리 잡고 있다. 1979년 한국으로 귀화한 민병갈(미국명 칼 페리스 밀러ㆍ2002년 사망)씨가 천리포해수욕장 내 60㏊(18만여평)의 부지에 조성했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60여개 나라에서 수집한 7,000여종의 식물을 보유하고 있다. 삼색병꽃, 흰해당화, 장미, 양귀비 등이 한창이다.
이 곳에서 자라는 모든 식물은 과명, 식재 장소, 도입 일련 번호, 특기 사항 등 기초 자료가 전산화돼 있는 데다 수목 관리 대장에 기록돼 있는 등 체계적 관리가 인상적이다.
매년 일정액을 후원하는 회원에게만 입장을 허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회원에게는 소식지 발송, 종자 분양 등의 혜택을 제공한다. 672-9310
글 사진 한창만기자 cmhan@hk.co.kr
■ 여행수첩
♡가는 길
수도권에서 출발한다면 서해안 고속도로 서산IC나 해미IC에서 나와 서산 시내를 지나 태안으로 들면 된다. 안면도가 목적지라면 홍성IC에서 나와 천수만 방조제를 지나 77번국도를 따라 안면도로 가는 것이 빠르다.
경부 고속 도로를 이용한다면 평택 IC에서 나와 삽교천, 당진, 서산을 지나 태안으로 가도 된다. 서울 남부 터미널(02-521-8550)에서 20분 간격으로 태안행 버스가 출발한다. 2시간 10분 소요.
♡먹을 것
드넓은 백사장을 끼고 있어 먹거리 또한 풍부하다. 특히 6월의 태안은 갑오징어, 세발낙지, 우럭 등이 제철이어서 일년 중 가장 풍성한 음식을 맛볼 수 있다. 갑오징어는 등에 갑옷처럼 외투막이 붙어있는 것이 특징. 두께가 두터워 회로 썰어 먹으면 일반 오징어보다 쫄깃쫄깃하고 감칠맛이 난다.
가격도 비싼 편. 1㎏에 2만5,000원선에 판매된다. 우럭은 갓 산란을 마친 초여름이 가장 맛있는 시기이다. 바다의 인삼으로 통하는 해삼을 잘게 썰어, 야채, 과일, 양념 등에 버무려 내는 해삼물회도 인기있다.
몽산포 해변이나 신진항 일대에 이들 해산물을 취급하는 횟집이 많다. 등대횟집(041-675-7575), 몽대횟집(672-2144).
6월부터 잡히는 세발낙지를 재료로 내놓는 박속낙지와 밀국낙지도 빼놓지 말아야 할 먹거리. 박속낙지는 겨우내 얼려 놓은 냉동 호박과 막 잡아 올린 싱싱한 낙지를 용기에 넣어 살짝 데친 뒤 꺼내 양념에 찍어먹는다.
다 먹고 난 국물에 칼국수를 넣고 국물을 졸여낸 뒤 건져 먹으면 밀국에 시원한 국물이 배어 쫄깃쫄깃한 맛을 낸다. 이를 밀국낙지라고 한다. 이원식당(672-8024)이 유명하다.
태안은 육쪽마늘의 원산지이기도 하다. 안흥항 앞의 가의도는 국내 대표적인 육쪽마늘 재배지. 마늘이 최근 암을 비롯한 각종 질병 예방에 특효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태안군은 18~19일 이틀 동안 마늘 축제를 열고, 마늘의 뛰어난 효능을 홍보할 예정이다.
원북면 일대에서는 마늘캐기 체험 행사가, 군청앞 동남 지구에서는 마늘 요리 축제가 열린다. 10일까지 군 홈페이지(http://taean-gun.chungnam.kr)에서 마늘 캐기 행사 신청을 받는다. 행사 참가자는 만원에 육쪽마늘을 캐어갈 수 있다. 태안군청 농림과 670-2162.
♡잠잘 곳
안면도의 오션캐슬이 유명하지만 회원이 아닌 경우 1박에 20만원(18평 기준)에 육박해 부담스럽다 (041)671-7000. 만리포청소년수련원(673-7907), 우리펜션(672-8117) 등 콘도 시설도 있다.
호텔은 안면호텔프라자(673-0744)가 유일하지만 각 지역마다 펜션이 많다. 하지만 주말이면 방잡기가 쉽지 않아 미리 예약을 해야 숙박이 가능하다.
화이트캐슬(672-0092), 하늘과 바다 사이(674-6666), 바다를 찾는 사람들(674-7009), 쉼이 있는 자유(672-5287), 하늘 그리고 바다(672-2272). 장급여관도 시설이 깨끗한 편이다.
금비모텔(675-7784), 뉴월드파크(675-0777), 안면비치하우스(672-1800), 백화파크(675-6196). 태안군청 관광홈페이지 http://tour.taean.go.kr/ 태안군청 문화관광과 670-2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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