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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51주년 특집/ 김대중 前대통령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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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51주년 특집/ 김대중 前대통령 인터뷰

입력
2005.06.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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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는 7일 서울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 창간 51주년 기념 외교안보 특별인터뷰를 가졌다. 김 전 대통령은 6ㆍ15 남북 정상회담 5주년과 10일 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중요한 시점임을 감안, 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등에게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조언을 전하고 싶은 듯 했다.

김 전 대통령은 “북핵 문제 해결이 결코 어렵지 않다”고 단언하고 “북한과 미국이 핵 포기와 안전보장을 동시에 주고받는 거래를 하면 된다”고 말했다. 또 “상대방을 믿지 않더라도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윈윈(Win_Win)의 이익이 있으면 양측이 협상을 할 수 있고 합의도 지킬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 절대 인내심을 잃지 말고 대북 포용정책을 견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전 대통령은 북핵 문제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는 데 대해 짙은 아쉬움을 내비쳤다. “김정일 위원장이 6ㆍ15 선언대로 남측을 방문했어야 했다, 서울이 어렵다면 비무장지대의 도라산으로라도 내려와야 한다”는 언급에는 진한 섭섭함이 배어있었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자서전 출판기념회 참석차 올 2월 방한했을 때 김대중도서관에 들러 ‘(백악관에)1년만 더 있었더라면 북핵 문제는 완전히 풀렸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고 뒷얘기를 소개한 대목에서도 그런 정서가 읽혀졌다.

김 전 대통령은 그러나 자신의 역할에 분명한 선을 그었다. 그는 “정치는 냉혹한 것이어서 힘있는 자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며 “지금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노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만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은 전직 대통령으로서 노 대통령을 돕겠다고 했다.

그는 중국의 역할에 대한 질문에 “김 위원장은 어느 나라에 일변도로 매달리는 인물이 아니다”며 “김 위원장은 미국을 굉장히 미워하지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 어떤 나라보다 미국이 북한에 가장 중요하며 김 위원장도 이를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한미동맹, 한일관계 등 다양한 주제들을 섭렵했으며 특히 일본에 대해 깊은 우려를 토로했다.

인터뷰는 임철순 편집국장이 진행했으며 윤승용 정치부장과 이영성 정치부장대우, 자매지인 코리아타임스의 이창섭 편집국장이 배석했다.

6ㆍ15 5주년 소회 (김정일 답방 없어 아쉬워 )

_6ㆍ15 남북정상회담 5주년을 맞는 소감이 남다를 것 같습니다.

"6ㆍ15 공동선언 이후 상황은 보기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남북 정상회담 이후에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국민들이 훨씬 더 마음 놓고 살 수 있게 됐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당시 기대만큼 큰 진전이 없다는 생각들도 있습니다. 공동선언 당시 햇볕정책을 지지했던 클린턴 미 행정부가 물러났고, 북한과 강경 대치하는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남북관계가 어렵게 됐습니다. 무엇보다 유감스런 점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남측 답방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북한은 지금도 6ㆍ15 5주년 기념행사 방북단 규모를 일방적으로 축소하는 등 남북관계가 기대만큼 잘 되지 않는다는 측면도 있습니다. 그러나 50년간 대치했던 상황에 비하면, 여러 악재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것은 다행이라고 봅니다. 나로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북한 핵 문제 (북미, 주고 받는 거래를 해야, 6자회담 이루어질 것)

_지난달 한신대 강연에서 지금 한반도가 매우 불길한 위기국면이라고 말했습니다. 어떤 점이 불길하고 위험스럽다고 보십니까.

"북한이 핵무기를 만들었다고 선언하고 핵 실험설을 한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사태가 파국적으로 갈 수 있습니다. 미국측에서는 북한에 대해 핵 포기 대가에 대한 확실한 발표가 없었고, 일각에서는 선제 공격설까지 나왔습니다. 이런 것들이 위기 요인이라고 보았습니다."

_미 국무부가 북미 뉴욕접촉에서 북한이 6자회담 복귀의사를 전해왔다고 밝혔습니다. 복귀시점은 적시하지는 않았지만 분위기가 좋아지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6자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더 높아졌습니다. 부시 대통령의 최근 언행으로 보나, 북한의 호응으로 보나 그렇게 될 것으로 판단됩니다. 세계가 6자회담이 빨리 열리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북한도 더 지연해서는 안됩니다. 지연은 북한에 이로울 게 없습니다. 북한은 하루빨리 6자회담에 나와 미국에 요구할 것은 요구하는 정당한 협상태도를 보여줘야 합니다. 결국 6자회담을 통해 해결될 것으로 봅니다. 그렇게 하지않으면 북한은 설 자리가 없습니다. 미국도 다른 제재방안은 동의를 얻기가 어렵습니다. 북미 양쪽 다 여기서 해결해야 합니다."

_그 동안 북미 양측은 서로를 믿지 않으면서 상대방에게 양보만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양측이 상호불신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입니까.

"불신을 해소하자고 말만해서 해소되는 게 아닙니다. 거래를 통해, 즉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을 받기로 합의한 뒤 합의사항을 이행할 때 신뢰가 생깁니다. 신뢰가 없으면 협상이 안되냐, 그것도 아닙니다. 레이건 전대통령은 악마의 제국이라고 비난하던 소련과 협상을 했고, 닉슨 전대통령은 국교도 없는 중국을 방문했으며, 미국은 직접 전쟁한 베트남과도 국교를 정상화했습니다. 북한과 전쟁을 한 우리도 휴전협정을 맺어 50년간 큰 탈없이 지내왔습니다. 상대방을 믿어서 협상할 수 있지만, 상대방을 믿지 않더라도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윈윈(Win_Win)의 구도면 양쪽이 합의를 지킬 수 있습니다. 그런 여건 하에서는 신뢰가 없더라도 협상이 되고, 그런 가운데 신뢰가 차츰 조성되는 것입니다. 쿠바도 한 예입니다. 또 미국이 쿠바를 40년간 봉쇄했지만 변화시키지 못했습니다.

공산국가에 대해서 신뢰로 협상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얘기입니다. 공산국가도 이해를 따질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의 이해는 안전보장과 경제회복입니다. 핵을 몇 개 갖고 있으며 뭐합니까. 백성들 밥도 못 먹이면 그 나라 유지 못합니다. 두 가지에 대해 이해가 있으니, 이쪽서 보장해주면 북한은 핵을 포기하게 되어 있습니다. 소련은 핵이 없어 망했습니까.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도록 그만한 이익을 주어야 합니다. 안전을 보장해주고 경제 제재를 해제해주면 됩니다. 핵과 안전보장을 주고 받으면 해결됩니다. 어려운 것이 없는데, 그러한 의지들이 없어 해결이 안 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자세는 어떻다고 보십니까.

"미국 민주당쪽은 클린턴 정부의 협상 지점에서 북한과 직접 협상하자는 입장입니다. 공화당내에도 협상을 통해 핵을 포기토록 하자는 의견이 있습니다. 그러나 악을 행한 자에게 상을 줄 수 없으니 먼저 북한이 핵을 포기하라는 것입니다. 이것도 차츰 핵만 포기하면 바라는 바를 줄 수 있다는 쪽으로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또 다른 공화당 강경파는 북한이라는 악당이 필요한 듯합니다. 악당이 있어야만 미사일방어(MD) 등 군사력을 강화하고 일본과도 군사협력을 강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 사람들은 핵 문제가 빨리 해결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일로 위기를 고조시켜 군사력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그 목적은 북한보다 다른데 있는 것이죠."

_6자회담이 현재로서는 최선의 방책이라고 보십니까.

"6자회담이건 10자회담이건 핵심은 북미 양자협상입니다. 북미간 주고받는 협상을 하지 않으면 해결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6자회담은 좋은 틀이라고 봅니다. 핵무기를 없애고 평화를 가져오는 합리적인 제안이면 6자회담 참가국들이 지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북미 양측은 이런 측면에서 견제를 받습니다. 협상이 성공한 후 이행 때에도 6자는 지켜보고, 이행하지 않는 측을 추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작년 중국에 가서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을 만나 6자회담이 성공하면 해체할 것이 아니라 상설기구화해서 동북아 평화를 책임지는 기구가 되도록 하자고 말했습니다. 동의하더군요. 미국서도 이런 소리가 나옵니다. 71년 대통령 후보 당시 4대국 한반도 평화보장론을 내놓았는데, 여기에 남북한을 합친 것이 6자회담입니다. 앞으로도 6자회담 틀을 유지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_중국의 역할을 중요하게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중국은 한국전쟁 때 북한을 구출해준 나라고, 지금도 북한과 준 동맹관계에 있습니다. 또한 북한 체제 유지와 관련된 물자들이 대부분 중국에서 옵니다. 하지만 내가 만나본 김정일 위원장은 어느 나라에 일변도로 매달리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김 위원장은 미국을 굉장히 미워하면서도 굉장히 중요시했습니다. 5년 전 평양에서 나는 북한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안보와 경제재건이 필요한데 이를 해결해줄 나라는 미국밖에 없고, 그러니 미국과의 관계개선에 나서라, 그러면 내가 클린턴 대통령과 얘기해서 그런 방향으로 가도록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후 서울로 돌아와서 클린턴 대통령에게 전화했고, 그래서 조명록 당시 국방위 제1부위원장이 미국에 갔고,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미 국무장관이 북한에 갔습니다. 클린턴 대통령이 여기(김대중도서관)와서 내가 1년만 더 백악관에 있었더라면 북핵 문제는 다 해결됐을 것이라고 말하더군요."

한미정상회담 전망 (한미동맹 굳건, 북핵 불용, 북미 협상 등 3가지 강조)

_10?한국시간 11일 새벽)한미정상회담이 있습니다. 회담을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6월은 노 대통령에게 매우 중요한 외교의 달입니다. 한미 정상회담, 한일 정상회담, 남북 장관급 회담이 예정돼 있습니다. 어느 하나라도 잘못되면 후폭풍이 클 것입니다. 최근 부시 대통령의 발언 경향과 북한의 호응 등으로 볼 때 양측 모두가 6자 회담을 깰 생각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한미 정상은 완전합의 또는 봉합적인 합의를 통해 큰 문제 없이 회담을 마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노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에게 몇 가지를 분명히 말해야 합니다. 첫째는 미국이 가장 중요한 동맹국이라는 점입니다. 여기에는 흔들림이 없다는 점을 말해야 합니다. 둘째는 북핵을 용인하지 않는다는 데에는 미국과 입장이 같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남북비핵화선언의 당사자입니다. 우리는 북핵을 용인하지 않으며, 당사자인 만큼 우리 생각을 많이 반영해야 한다고 말해야 합니다. 셋째 핵 문제 해결을 주고받는 협상으로 북한은 핵을 완전히 포기한 뒤 철저한 검증을 받고, 미국은 안전을 보장하고 경제제재를 해제합니다. 상호불신이 있기 때문에 동시에 이행하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말해야 합니다. 6자회담 재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뭘 주고 받느냐가 중요합니다. 주고 받을 사람은 김 위원장과 부시 대통령 뿐입니다. 북한은 진실인지 거짓인지 모르겠지만 핵을 포기하겠다고 나오고 있습니다. 북한이 약속을 안 지키면 그 때 제재를 할 수 있으며, 줄 것을 내놓지 않은 채 대북 제재를 말하면 중국 러시아 등도 동의하지 않을 것입니다."

_이번 회담에서 북핵 문제의 안보리 회부나 재제가 거론될 가능성은 있을까요.

"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봅니다."

_한미 정상의 상호 신뢰가 공고해지면 여러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 같은데, 현재는 이런 신뢰가 만족할만한 수준이 아닌 듯 합니다.

"신뢰 관계가 위험한 상태에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두 정상 모두 상대방이 마음속으로 한미관계를 중시하고 있음을 이해한다고 생각합니다. 신뢰로 관계를 유지하지만 이해로도 관계를 유지합니다. 둘이 병행할 수도 있습니다. 양국은 동맹관계를 유지하면서 협력하는 것이 이익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과도하게 생각하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다만 한국으로서는 모든 협력을 하더라도 한반도에서 민족끼리 피를 흘리는 전쟁으로 나가는 일에 대해서는 절대로 동의할 수 없습니다. 미국은 태평양 건너에 있지만 우리는 여기 있습니다. 우리는 전쟁을 겪었습니다. 미국의 파괴력은 한국전쟁 때보다 강해졌습니다. 우리 국민은 도저히 전쟁을 수용할 수 없습니다. 공산국가에 대해서는 역사로부터 교훈을 배워야 합니다. 냉전 50년간 유지됐던 소련이 헬싱키 협약 이후 문화 경제분야에서 서방과 협력하고 개방되니까 하루 아침에 무너졌습니다. 공산국가는 독재국가와는 다릅니다. 독재국가는 폭력의 허점이 생기면 무너집니다. 하지만 공산국가는 폭력에 더해 세뇌가 함께 이뤄집니다. 그런 나라를 상대하는 것은 개방을 통해 공산당이 하는 얘기와 다른 말을 듣게 해야 합니다."

남북관계 (햇볕정책은 절대 죽지 않는다)

_지난 5년간의 남북관계는 어떻게 평가하는지요.

"북미관계가 안 좋은 가운데 5년간 좌절되지 않고 햇볕정책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6ㆍ15 이전에 고작 이산가족 200명만이 만났지만 6ㆍ15 이후에는 1만명 선을 넘었습니다. 금강산 관광객 규모는 100만명을 돌파했고, 남측 방북자는 8만명, 북쪽의 남한 방문자는 4,000~5,000명 선에 달합니다. 철도 및 도로 연결, 개성 공단 등 많은 것이 조금씩 진전됐습니다. 북미관계가 좋았으면 훨씬 많이 됐을 것입니다. 지금 남북관계가 어려운 것은 주로 북미관계 때문에 그렇습니다. 햇볕정책은 절대 죽지 않습니다. 우리 국민들은 북한과 평화적으로 교류하자는 생각을 갖게 됐습니다. 북한도 과거에는 남한을 증오의 대상으로, 미제 앞잡이라고 보았지만 우리와 접촉한 후 바뀌었습니다. 특히 비료ㆍ식량 지원 후에 더 그렇습니다. 북한 주민들은 잘살고 있는 남한 사람들이 어려운 자신들을 돕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한에서도 북한이라면 총제적으로 반대하던 사람들도 공산주의에는 반대하지만 같은 동족으로서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양측의 생각이 상당히 정리됐습니다. 당분간 평화적으로 공존하고 교류하다가, 북한에서 중산층이 생기고 변화가 생길 것입니다. 통일의 1단계인 남북연합은 내일이라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남북관계의 흐름을 주시해보면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 힘이 우리 국민들 특히 젊은 세대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_북한은 차관급 회담 합의사항 중 6ㆍ15 방북단 규모를 일방적으로 수정했습니다. 이에 대한 국민여론이 좋지 않습니다.

"성급해 하고 속단해서는 안됩니다. 5년 동안 우리가 참고 원칙을 지켰기 때문에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과거 판문점에서 총소리라도 나면 국민이 피난 갈 준비를 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북한에 대해 자신감을 갖게 됐고 주도권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주도권은 남북이 다같이 윈-윈의 협력을 하면서 때가 오면 평화적으로 통일하자는 것인데, 지금 틀이 잡혀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급하면 통일 가능성이 낮아지거나 파탄이 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침착하게 여유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정일 위원장과 만날 용의(힘있는 노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만나야)

_김 전 대통령이 다시 북한을 방문하는 것이 좋지 않느냐는 얘기가 많습니다.

"나는 이제 대통령이 아닙니다. 정치는 냉혹합니다. 힘 있는 자가 세상을 바꿉니다. 지미 카터 전 미 대통령이 북한에 가서 핵 문제를 해결했는데 그것은 클린턴 정부가 전폭 지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가려면 노 대통령 뿐만 아니라 미국의 지지도 필요한 상황입니다. 현직인 노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 빨리 만나야 합니다. 6ㆍ15 공동선언은 민족문제를 자주적으로 해결하자고 했습니다. 핵처럼 민족의 존폐가 걸린 문제에 대해서 남북 정상들이 얘기를 못하면 어떻게 합니까. 공동선언에 정상회담도 하고 김 위원장도 오게 돼있습니다. 김 위원장이 서울에 못 오면 도라산이라도 와서 허심탄회하게 논의해야 한반도 현안들이 빨리 해결될 것입니다. 남북 정상이 만나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또 장관급 회담을 통해 정례적으로 만나는 틀을 세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한미동맹 (3중 외교_한미동맹, 한미일 공조, 북핵 외교)

--한미간에 이견이 있습니다. 동북아 균형자론, 전략적 유연성 문제, 개념계획 5029 등에 대한 정부 입장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정부로부터 설명을 못 들어 잘 모르는데, 균형자론은 한반도의 가장 중요한 균형자는 미국이고, 한국이 중국과 일본의 균형자 역할을 하겠다는 것으로 정부가 설명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처음에 오해가 없도록 자세한 설명을 했어야 했는데 좀 부족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미국을 제치고 4대국 사이에 뭐를 한다는 식이 아니어서 다행입니다. 우리는 4개국에 있어서 한편으로는 균형 있게 대하는 동시에 또 한편으로는 한미동맹 공고화, 한미일 공조유지, 6자회담 지원 등의 3중 외교를 해야 합니다."

한일관계 (일본이 걱정된다)

_한일관계가 1998년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합의됐던 수준에 비해 많이 퇴보한 양상입니다. 이를 어떻게 풀어야 한다고 보십니까.

"일본 가서 강연하고 여야 지도자, 언론을 만나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98년 방일 당시 오부치 총리가 과거사에 대해서 통렬하게 반성하고 사죄한다고 말했다, 총리가 그렇게 사죄했으면 최소한 정부나 여당 사람은 딴소리 안 해야 하는데 딴 소리를 하고 있다, 독일은 전후 사죄ㆍ보상하고 나치 만행 유적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심지어 독일 총리가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 기념비 앞에 무릎 꿇어 인접 국가들의 마음을 바꾸었다, 그래서 독일을 나토의 중심세력으로 받아들였고 독일통일도 환영했다, 어떻게 보면 독일은 적게 주고 많이 받았다, 그런데 일본은 이것과 굉장히 차이가 난다, 그러니까 주변국들이 믿을 수가 없다고 한다, 일본은 한국에 대해 징용, 징병, 국어 및 역사 말살 , 창씨개명 등 말할 수 없는 피해를 주면서 민족 문화까지도 파괴했다고 얘기했습니다.

일본이 걱정됩니다. 문제는 일본 민주주의가 우리처럼 싸워서 쟁취한 민주주의가 아니고 맥아더 장군이 심어준 민주주의라는 점입니다. 그러기에 유리할 때는 민주주의를 했으나 세상이 바뀌고 중국이라는 세력이 일어나니까 언제 민주주의냐 식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일본 내 양심세력은 힘이 없습니다. 더욱이 미국이 지원하니까 두려움 없이 밀고 나갑니다. 일본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합니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사람을 위로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신사에 있는 A급 전범은 전몰자가 아니라 전쟁 범죄로 인해 재판 받아서 죽은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따로 분사를 하거나, 아니면 새로운 추모 시설을 만들어야 합니다. 일본 사람들한테 많은 얘기를 했지만 일본은 지금 우경화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아시아로 얼굴을 돌려야 합니다. 과거 메이지(明治) 시대에는 영국과 동맹을 맺고 유럽만을 보더니 2차 대전 후에는 미국만 봤습니다. 그러면 아시아와 진정한 유대를 맺을 수 없습니다. 일본의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도 사실은 아시아 사람들이 시키자고 해야 되는 일인데 그 반대입니다. 일본의 다음 정권도 우리 기대와는 다른 움직임을 할 것으로 봅니다.

독도 문제는 우리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우리가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데, 자꾸 독도가 우리 거라고 떠들면 독도가 분쟁지역이라고 스스로 인정해버리는 셈입니다. 본의 아니게 일본의 우파를 도와주는 것이 됩니다. 외교는 떠들어서 좋을 때가 있고 침묵을 지켜서 좋을 때가 있습니다. 침묵하는 그 시간에도 우리는 독도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젊은이들과 우리 국민이 독도 문제에 대해 하는 것을 보면 고맙고 기특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만 하면 우리 국민들의 열의가 얼마나 강하다는 것을 알았을 테니 상황을 좀 봅시다."

현 정부에 대한 고언(국민 역량을 믿는다)

_국정 혼선이 심각합니다. 현 정부에 대한 고언을 부탁드립니다.

"우리 국민역량을 신뢰합니다. 정치인들이 조금 잘못 나가더라도 국민에게는 그것을 바로잡는 힘이 있습니다. 정치인들 뿐만 아니라 노동운동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노동운동이 탄압 받을 때는 적극 지지하던 국민이 노동운동 자유화 이후에도 과격함이 여전하자 비판했습니다. 정치인들이 국민이 바라지 않는 탄핵을 했다가 얼마나 혹독하게 심판을 받았습니까. 이러한 국민의 역량은 우리가 피를 흘려 싸워서 쟁취한 결과입니다. 나는 전직대통령으로서 현직 대통령이 잘 해갈 수 있도록 조용히 의견을 보내지, 앞에 나서서 얘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_국정원 과거사위가 김형욱 실종사건의 중간발표를 하고 김 전 대통령 납치 사건도 조사 중입니다. 과거사 규명이 어떻게 진행돼야 하는지요.

"과거 60년은 친일파와 군부가 집권한 시기여서 진실이 숨겨진 채 인권과 민주주의가 유린돼왔습니다. 진실은 밝혀져야 합니다. 그래야 역사가 바로 서고, 후세에 교훈이 됩니다. 그러나 정치 보복으로 활용해서는 안됩니다. 나는 과거 독재자들한테 핍박 받았지만 대통령 취임 후 바로 전두환, 노태우 씨를 사면했습니다. 죄는 용서하더라도 진실은 밝혀야 합니다. 둘을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과거 친일 인사라 하더라도 친일로 전향하기 전 나름대로 노력한 사람들도 있잖아요. 그건 그대로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후손들이 승복할 것입니다. 물론 있는 사실을 덮어서도 안됩니다. 그것이 역사를 바로 세우는 것입니다."

정리=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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