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이 순지 감독의 팬들은 그의 영화를 검은색과 흰색으로 분류한다고 한다. ‘러브레터’ ‘4월 이야기’ ‘하나와 앨리스’ 같은 순정만화 풍의 영화는 흰색이다.
이에 반하는 그의 검은 영화(!)들도 있는데, 이에 속한 영화들이 23일 한꺼번에 개봉한다. ‘언두’(1994) ‘피크닉’(1996) ‘릴리 슈슈의 모든 것’(2001)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1996) 등 네 작품이다.
하나 같이 사랑에 상처 받고 사회에서 버림 받은 젊은이가 주인공이다. 심각하고 어둡고 잔혹하다. ‘언두’의 여주인공은 어느날부터 주변의 사물을, 심지어 자신마저 끈으로 칭칭 묶기 시작한다. 병원에서 내린 진단은 ‘사랑으로 인한 병’이다.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는 가상의 미래를 배경으로, 돈을 벌기 위해 일본으로 흘러 든 청춘들의 암울한 사랑을 그리고 있으며, ‘피크닉’에서는 정신병원의 세 남녀가 지구의 종말을 보기 위해 처음이자 마지막 소풍을 떠난다. ‘릴리 슈슈…’의 아이들은 너무도 어둡다. 원조교제를 하거나 않거나, 왕따를 당하거나 시키거나. 선택의 폭은 좁다.
‘러브레터’의 이와이 순지만 알던 이들에게는 충격일 것이다. ‘피크닉’에서 주인공의 악몽에 등장하는 교사의 엽기적인 성기 묘사나, 눈 앞에서 자위 행위를 강요하는 등 잔인한 행동을 일삼는 ‘릴리 슈슈…’의 아이들 앞에서 눈을 질끈 감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와이 순지 감독은 “두 부류의 영화는 기본적으로 같은 생각에서 출발했다”고 말한다.
실제로 ‘스왈로…’는 ‘러브레터’와 같은 시기에 만들었고 ‘릴리 슈슈…’를 만들던 중 ‘4월 이야기’의 영감을 얻었다. “‘릴리 슈슈…’는 ‘러브레터’와 닮은 꼴의 영화”라고 표현할 정도다.
밝은 빛이 어김없이 그림자를 만들어 내듯, 그의 흰 영화와 검은 영화는 삶의 양면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느낌이 다른 그의 영화들을 비교해 감상하다 보면, 아름다움 뒤에는 추악함이 있고, 맑은 속에는 탁함이 도사리고 있는 삶의 아이러니를 꿰뚫게 된다.
인기 일본 배우들의 앳된 시절을 엿보는 즐거움도 있다. ‘릴리 슈슈…’에서는 ‘하나와 앨리스’로 익숙한 아오이 유우를 볼 수 있고, ‘피크닉’은 ‘자토이치’ 등으로 국내에서도 인기가 많은 아사노 타다노부와 그의 아내이기도 한 차라가 주연을 맡았다. ‘스왈로우 테일…’은 시네코아 등 전국 주요 6개 극장에서 개봉하고 나머지 영화는 시네코아에서만 볼 수 있다.
최지향 기자 mis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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