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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51주년 특집-한국일보와 문학/ 한국일보와 나 - 소설가 윤흥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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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51주년 특집-한국일보와 문학/ 한국일보와 나 - 소설가 윤흥길

입력
2005.06.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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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신춘문예 응모 마감에 맞춰 가까스로 두 번째 단편소설을 완성해 모 신문사로 우송하고 나서 심신이 지칠 대로 지친 상태에서, 금년 농사는 이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했다. 이젠 밀린 잠이나 벌충하면서 그냥 푹 쉬고 싶을 따름이었다.

그때 우연히 한국일보 일면에 실린 사고(社告)가 눈에 들어왔다. 역량 있는 신인들에게 좀더 문호를 넓혀 주기 위해 신춘문예 응모 기간을 일 주일 더 연장한다는 내용이었다. 더구나 상금도 자그마치 10만 원으로 인상한다는 것이었다. 다른 신문들의 상금이 대개 5만 원 수준이던 당시 실정에 비추어 그것은 정말 파격적인 액수였다. 요즘 같은 보리흉년에 이게 웬 떡이냐, 싶었다.

부쩍 욕심이 동한 나머지 나는 그날부터 또다시 밤을 낮 삼아 새 작품 집필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애면글면 탈고해서 간신히 마감 시한에 댈 수 있었고, 우여곡절 끝에 결국 그 작품 <회색 면류관의 계절> 이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하게 되었다. 1968년의 일이다.

한국일보가 문학 분야, 또는 문화면에 쏟아온 지극한 관심과 과감한 투자, 그리고 크나큰 자부심을 말해 주는 단적인 예일 것이다. 등단 후 나는 창업 사주 장기영(張基榮) 선생에 얽힌 갖가지 일화에 자주 접하게 되었다. 그분의 통 크게 타고난 성품과 문학 애호의 남다른 독지(篤志)가 선배 문인들과 기자들의 입길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창간 이래 한국일보의 주요 정체성 가운데 하나를 이뤄 나온 문화면의 권위와 충실한 내용은 아마도 선생이 표방해 온 문화제일주의와 뚝심에 힘입은 바 크리라. 문화 쪽에 관심이 많은 독자들과 문화 분야 종사자들은 그래서 한국일보를 찾게 마련이었다.

그리고 독자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유능한 문화부 진용이 갖추어지게 마련이었다. 특히 한국일보의 역대 문학 담당 기자들은 당대 언론의 문화면을 대표할 만한 출중한 인물들이었다. 나는 한국일보 신춘문예 출신이란 인연 덕분에 지금도 아무개라고 하면 누구나 금세 알아들을 만한 이름의 명물 기자들을 가까이 접할 수 있었던 행운에 감사하고 있다.

데뷔한 지 불과 얼마 안 되어 한국일보의 낡은 목조 사옥이 화재로 전소되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당시 시골에서 교사로 근무 중이던 나는 방송으로 그 소식을 듣고 너무 놀라 안면이 있는 문학 담당 기자에게 장문의 편지까지 보낸 적이 있다. 편지 내용은 위로의 형식을 띠고 있었지만 실인즉슨 내 문학의 유일한 기반인 한국일보가 아예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질까봐 지레 걱정하는 저의가 깔려 있었다.

해마다 신춘문예를 통해 신인 작가들을 연년생으로 배출하는 신문사들이 이를테면 아이를 낳을 줄만 알았지 돌볼 줄 모르고 버리기만 하는 무책임한 미혼모와도 같은 존재라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던 무렵이었다. 시골뜨기로 무명 신인 작가이던 내가 그래도 믿고 의지할 지면이라고는 달랑 한국일보 한 군데뿐이었다.

모국이나 모교처럼 자기 태생의 뿌리를 의미하는 말로서 모지(母紙)라는 말도 사용이 가능할 것이다. 작가로서의 나를 세상에 낳아준 어머니 같은 존재라는 점에서 한국일보는 분명 나의 모지이다. 남들은 혹 미혼모 같다고 자기를 낳아준 신문에 대해 섭섭해 할지 몰라도 내 경우는 전혀 그렇지 않다. 그 동안 나는 모지가 자식 작가에게 베풀 수 있는 갖가지 기회와 혜택을 두루 누릴 수 있었던 행복한 경우에 속한다.

연재소설도 썼고, 기획 취재 기사도 연재한 적이 있고, 신춘문예나 한국일보문학상 심사도 자주 맡았고, 다른 무엇보다도 내 저서가 출간될 때마다 주요 기사로 다루어지곤 했다. 이렇듯 자식으로서 받을 수 있는 모정을 듬뿍 받으며 모유가 제공하는 자양분으로 이만큼 성장했는데 어찌 고맙지 않겠는가.

30여 년에 걸친 한국일보와 나와의 질기면서도 절묘한 인연에 다시 한 번 진정으로 감사한다. 아울러 한국일보의 영속과 무궁한 발전을 빌어 마지않는다. 특히 한국일보가 지닌 두드러진 장점이자 미덕인 문화면의 특색과 권위가 앞으로 더욱더 그 지평을 넓히고 더욱더 높아지고 깊어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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