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중풍으로 아들과 함께 살게 된 서울 토박이 김모(79)씨. 처음에는 아들 부부가 잘 모시더니 갈수록 구박이 심해졌다. 김씨는 “너도 살기 빠듯한데 내가 늙어 짐이 되는 것 같다. 빨리 죽어야 하는데…”라고 말했더니 아들은 “아버님 잘못했습니다”라며 술상을 차려주었다. 함께 술을 마시고 다음날 일어나보니 경북 포항시의 이름 모를 거리에 버려져 있었다. 이 지역 교회 목사가 김씨를 공동체로 모셨지만 그 노인은 3년 뒤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이처럼 노인 상당수가 자녀에게 학대 받거나 버려지는 ‘신 고려장’을 당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치매 부모에 대한 패륜범죄가 늘고 있으며 부모 부양 문제로 부부간 형제간의 다툼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갈등 끝에 부부는 이혼하고 형제들은 아예 등을 돌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2002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노인 1,34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37.8%(510명)가 학대를 경험했다. 학대 유형은 정서적 학대 43.8%, 방임 27.8%, 신체적 학대 16.6%, 재정적 학대 6.9% 순이었다.
노인학대상담센터가 밝힌 노인학대 가해자 현황(2004년)을 보면 1,477명의 노인학대 가해자 중 아들(701명)ㆍ며느리(403명)가 무려 74%를 차지하고 있다. 딸(146명)과 배우자(103명)가 뒤를 잇고 있다.
이화여대 김미혜 교수는 “노인인구의 급속한 증가와 평균 수명 연장으로 노인학대와 방임은 심각한 사회문제로 될 수 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특히 75세 이상의 후기 고령노인의 증가에 이어 치매 중풍 등의 노인 질병자 증가는 저소득층 자녀를 중심으로 유기나 살해라는 충동적인 패륜 범죄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노인학대를 예방하는 첩경으로 부양문제를 가족에게만 맡기지 말고 국가와 사회가 맡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단기적으로 노인들의 보호쉼터나 그룹 홈 등 대안적 주거시설을 확충해야 한다. 또 중장기적으로는 노인 스스로 독립성을 유지하는 것이 학대를 방지하는 지름길이다. 노인들이 육체ㆍ정신적 독립성을 지닐 때야만 노인학대에서 스스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노인을 위한 사회적 일자리 창출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한국노인문제연구소 박재간 소장은 “사회적 책임이란 컨셉으로 파트타임 등 노인들의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며 “월 30만원이면 노인의 삶의 질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노인학대를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상담센터 확충도 시급한 과제다. 현재 정부에서 지원하는 노인학대예방센터(1389)는 서울과 부산 등 16개 광역자치단체에 1곳씩만 설치돼 있다. 민간단체가 있긴 하지만 폭주하는 노인학대 문제를 상담하고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권대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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