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이런 게 뉴스 거리가 되지는 않겠지만, 여름이 다가오면서 우리집은 올해 처음 산 에어컨이 제대로 작동할 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사실 에어컨을 구입하자는 얘기는 예전부터 나왔다. “아들이 장학금 타오면 그 날로 에어컨 산다”고 아버지가 약속한 게 5년 전이다.
당시 우리집은 늦어도 2002년에는 아들 두 녀석 중 장학금 타는 아들 하나는 있지 않겠냐는 낙관론이 우세했다. 그렇지만 몇 년 동안 에어컨은커녕 용돈 이야기도 꺼낼 수 없는 성적이 이어졌다. 나를 한심하게 생각하던 동생도 입학하더니 “대학 공부가 쉽지만 않다”며 말끝을 흐렸다.
그런데 군대 갖다 와서도 정신 못 차리던 내가 지난해 처음으로 장학금을 타는 일이 일어났다. 어머니는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는 말씀을 하시며 에어컨 구매를 강력히 주장하셨고, “좀 있으면 이사할 건데”로 말을 바꿨던 아버지도 결국 두 손 드셨다.
그렇게 해서 올 봄 에어컨이 들어오게 됐다. 새로 온 덩치 큰 에어컨 친구는 지금까지 거실 구석에 서 있기만 했다. 언제 처음 에어컨을 켜느냐가 우리 가족의 관건이었다. 동생은 군대에 있고 부모님과 나 세 식구가 나름대로 바쁘게 살고 있어, 한참 더워지는 여름 한낮에도 세 식구가 한자리에 모이게 될 일이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 말씀하신다. “경배야 주말에 나가서 늦게 들어오냐?” “잘 모르겠는데요… 왜요?” “에어컨 켜려고 하니까 일찍 들어오라고.” 에어컨 켜려고 일찍 귀가하라니, 재미있는 가족이다. 올 여름 무더위 잘 버텨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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