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이 성장과 분배를 둘러싼 본격적인 정체성 논쟁에 돌입했다. 추상적인 실용ㆍ개혁 논쟁을 넘어 구체적인 정책을 둘러싼 노선투쟁의 성격이 강하다. 근저에는 ‘신자유주의 경쟁체제 vs 복지국가 모델’이라는 이념과 정체성의 차이도 자리잡고 있다.
성장과 분배의 대립구도는 7일 대정부질문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장영달 상임중앙위원은 “성장만능주의에 집착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지속하면 양극화는 더욱 심화할 것”이라며 세제개편 등을 통한 강력한 재분배정책을 주장했다. 사회안전망 확보를 소홀히 하는 정책기조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이 같은 대립은 이미 진행중이다. 지난 3일 당정청 워크숍의 재경ㆍ건교분과에서는 “1분기 성장률이 2.7%에 불과한데 복지를 얘기할 때냐”, “효과가 분명한 단기정책을 활용하자”는 등 ‘경기 부양론’이 대세였다.
반면 사회ㆍ노동분과는 “일자리 창출 없는 성장이 무슨 의미가 있나”, “양극화를 국민 개인의 능력 차이로 보는 경제중심주의가 문제”라는 지적을 쏟아냈다. 복지예산 9% 증액 결정에 대해 “비생산적인 소비성 지출”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부동산투기 억제정책을 재검토해 시장경쟁에 맡기자는 주장도 성장과 분배에 대한 인식차ㅡㄹ 잘 보여준다.
이 같은 논쟁구도는 지난달 말 무주 워크숍에서 당의 정체성을 ‘중산층ㆍ서민을 위한 정당’으로 규정하면서 본격화했다. 그 동안 기간당원제를 ‘절대선’으로 과대 포장해 실체도 불분명한 개혁ㆍ실용논쟁을 벌인 데 대해 비판이 쏟아진 것이 구체적 정책논쟁의 계기가 됐다.
논쟁 주도세력도 달라졌다. 김근태 복지부 장관을 정점으로 한 재야파는 복지를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자는 ‘성장ㆍ복지의 선(善)순환론’을 기반으로 성장중심주의를 비판하고 나섰다.
반면 관료그룹 등은 “정부가 성장잠재력 확충보다 소모성 복지지출에 기울어 있다”는 반대 논리로 논쟁에 가세했다. 반면 기간당원제 논란을 주도했던 개혁당그룹은 침묵 속에 “민노당보다 한나라당과의 정책연합이 낫다”(유시민 상중위원)며 보수화 경향마저 보이고 있다.
최근의 당정갈등에도 성장ㆍ분배논쟁이 일부 투영돼 있다. 재래시장ㆍ자영업자 대책이 그것이다. 정부는 경쟁력과 생산성을 기준으로 진입장벽과 퇴출을 대안으로 제시한 반면 당은 사회안전망 미비에 따른 양극화 심화에 대한 우려를 내놓았다.
한 386 의원은 “성장ㆍ분배 논쟁은 구체적인 정책을 통해 이뤄진다는 점에서 보다 생산적일 수 있고 정체성 확립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