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포항 앞바다 저녁 무렵 5월 말. 3중으로 그물을 쳐놓고 대기중이던 어부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묵직한 느낌은 그것이 고래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어부들은 그물을 당기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에야 고래의 몸부림이 멈췄다. 숨통이 끊어진 것을 확인하고 선상으로 그물을 끌어올렸다.
무거운 3중 그물로 밤새 눌러 놓으면 고래는 물 밖에 나와 숨을 쉴 수 없다. ‘익사’하는 셈이다. 몸통에 외상이 없어 다른 고기와 함께 우연히 그물에 걸린 것(혼획ㆍ混獲)으로 위장됐다. ‘바다의 로또’ 고래는 그렇게 포획됐다. 불법 포경의 신종수법이다.
환경운동연합은 7일 서울 종로구 환경연합 생태교육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불법 고래잡이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환경운동연합 고래보호특별위원회가 포항, 울산, 부산 일대를 대상으로 불법 혼획 및 포경도구 유통실태를 조사한 결과 혼획을 가장한 불법포경이 공공연하게 자행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수제 작살과 수입 작살 등 고래잡이 도구들이 낚시 및 어구상에서 버젓이 유통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혼획은 다른 고기를 잡기 위해 쳐놓은 그물에 우연히 걸려든 고래를 잡는 것으로 1986년 ‘멸종위기의 고래보호를 위한 상업적 포경금지조처’가 발효된 이후 유일하게 합법적으로 고래를 포획할 수 있는 방법.
그러나 혼획을 가장한 불법포경의 극성으로 82년 이후에도 한국은 고래가 멸종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점점 감소하고 있는 추세다.
2003년 국제포경위원회(IWC)에 보고된 세계 각국의 혼획이 1~5마리 수준인 데 반해 한국은 전체의 37%인 84마리에 이른 것으로 공식 보고돼 일본(112마리)에 이어 두번째였다.
환경운동연합의 조사에 따르면, 가장 빈번한 불법포경 수법은 고래에 작살을 쏘아 잡은 후 흔적을 감추기 위해 연결 철끈을 끊어 작살촉을 고래 몸 속에 박아넣어 겉으로 보이지 않도록 하는 방식. 해양경찰청이 특별한 조사도구 없이 육안으로만 조사를 한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또 작살로 잡은 고래를 며칠간 바다에 묶어두면 많은 피가 빠지면서 상처부위가 눈에 잘 띄지 않게 되는데, 이 때 끌어올려 그물에 걸린 것으로 위장하는 방식도 횡행하고 있었다.
혼획 보고를 하지 않고 불법 반입하는 경우도 많았다. 지난 3일 포항에서 적발된 돌고래 불법 포획의 경우처럼 바다에서 잡은 고래를 선상에서 부위별로 잘라 밀반입한 후 유통시키면 아예 혼획조사 자체를 피할 수 있게 된다.
환경운동연합은 “동해안 지역에서의 불법포경은 단순히 일부 어민들의 그릇된 인식 때문이 아니라 정부의 환경보호 의지가 약하고 보호정책이 취약하기 때문”이라며 “혼획 고래의 개인 소유를 금지하고, 죽은 고래도 판매를 금지하고 다른 멸종위기 동식물처럼 소각이나 매립처리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예용 고래보호위원회 실행위원장은 “최고 억대를 호가하는 고래 경매가격을 고려할 때 3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는 불법포경을 방지하기 어렵다”며 “처벌조항을 보다 강화해 불법행위를 원천적으로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예로부터 동해는 고래가 많기로 유명했고, 한국과 일본은 영토가 바다에 둘러싸여 있어 다양한 어구법이 발달했다”며 “다른 나라에 비해 혼획이 많다고 해서 불법포획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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