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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의 나쁜 취향-문화, 낯설게 보기] (17) 인디밴드 '3호선 버터플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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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의 나쁜 취향-문화, 낯설게 보기] (17) 인디밴드 '3호선 버터플라이'

입력
2005.06.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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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호선 버터플라이’라는 밴드 이름을 처음 듣는 사람이라면 그 희한한 단어의 조합에 웃음부터 터트릴 지 모른다. 3호선은 말 그대로 지하철 3호선이라지만 버터플라이는 또 뭐야, 라는 반응이 나온다 해도 무리는 아니다. 내가 처음 이 밴드를 알게 되었을 때에도 그랬었다.

‘3호선의 나비’하면 될 걸 웬 계통불명의 콩글리시인가 하는 생뚱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 밴드의 음악적 정체성을 알고 보면 이 말 장난 같은 이름에 사뭇 진지한 문제의식이 담겨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3호선 버터플라이는 낯선 것과 친숙한 것, 진지한 것과 장난스러운 것, 씁쓸한 농담과 우울한 도취가 혼미한 분가루처럼 뒤섞여 공전하는 음악을 들려준다. 그 밴드의 리더는 시인 성기완이다.

성기완이란 이름은 문화관련 종사자들에게 낯선 이름이 아니다. 그는 온갖 매체에 음악 관련 글을 쓰고, 음악방송 디스크 쟈키(EBS FM ‘세계음악기행’)도 하고, 이 시대의 혼종적 문화에 대한 특별한 감식안이 담긴 비평 글을 쓰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시인으로 남고자 한다. 그에게 시와 음악은 자신의 삶을 관철하는 두 개의 수맥이다.

돈 안 되는 시가 그의 정신적 뿌리를 형성한다면 돈도 안 되면서 돈만 많이 드는 음악은 그의 실존을 외연적으로 드러내는 줄기이자 잎이라 할 수 있다.

그에게 문화란 고상하지도 우아하지도 않은 땀내 나는 노동에 진배 없다. 시는 백날 써봐야 아기 장난감 값(성기완은 애 보는 아저씨다)도 못 벌고 음악은 하면 할수록 향유는 커녕 험난한 골짜기일 뿐이지만, 그는 그 허망한 문화노동을 멈출 수 없다. 3호선 버터플라이의 노래는 그 막막한 노동의 결정체로 빚어진 씁쓸한 자기연민이자 끈끈하게 약동하는 내면의 소박한 에너지다.

3호선 버터플라이가 결성된 건 2000년이다. 각각 다른 밴드에서 활동하던 남상아(보컬, 기타, 전 허클베리핀) 박현준(베이스, 전 삐삐밴드 등) 김상우(드럼, 전 허클베리핀) 등이 성기완(기타, 보컬)과 의기투합하여 마니아 지향적인 록음악을 선보였는데, 그들은 당시 ‘마이너리그 올스타’라 불릴 정도로 그 바닥에선 날고 뛰는 선수들이었다.

하지만 삐삐밴드 등에서 메이저급 반향을 일으켰던 박현준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의 인지도는 ‘그들만의 리그’에서나 통할 수준이었다.

그들은 주로 홍대 앞 클럽 등지에서 꾸준히 활동해 오면서 5년 동안 석 장의 앨범을 발표했다. 몇 번의 멤버 교체 끝에 지금은 성기완, 남상아와 더불어 김남윤(키보드) 손경호(드럼) 최창우(베이스)의 5인조 체제로 활동 중이다.

열악한 시스템과 멤버 이동이 다반사인 그 바닥에서 소위 ‘한 실력’한다는 멤버로 5년 동안 팀을 유지할 수 있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3호선 버터플라이는 앨범을 발표 할 때마다 더욱 숙성된 음악을 들려 주고 있다.

2004년 벽두에 나온 3집 ‘Time Table’은 음악 꽤나 듣는 사람들 사이에선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전무후무한 걸작으로 평가 받았다. 그러나 그 앨범에 담긴 곡들 대부분은 웬만한 방송사 음악프로그램에서 좀체 듣기 힘들다.

이들이 아주 잠깐 떴던 적이 있었다. 3년 전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 OST에 참여하면서 1집 수록곡 ‘꿈꾸는 나비’가 뒤늦게 히트했던 것이다. 그들의 존재를 전혀 모르던 사람들조차 ‘꿈꾸는 나비’의 몽롱한 사운드에 이끌려 팬이 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고 메이저급 스타 대접을 받고 있는 건 여전히 아니지만, 어찌 됐건 지금 3호선 버터플라이는 특유한 고유명사로 자리 잡은 느낌이다.

3호선 버터플라이에겐 정체된 듯 끊임없이 흐르며 알 듯 霽?듯 심상이 변화하는 내성적 소년의 아우라가 있다. 그 소년은 미성년이라기보다 노인의 경험을 간직한 소심한 피터팬에 가깝다. 미숙하진 않으나 어딘가 결정적인 것이 결여된 듯, 한 없는 연민을 자극하는 요소가 있다. 그런데 그 정체 불분명한 결여가 기묘한 매혹을 낳는다.

그들의 음악에 중독성이 있다면 그런 점에서이다. 미국의 인디록과 70, 80년대 한국의 투박하고 멜랑콜리한 록사운드, 일렉트로닉 노이즈의 환각과 어쿠스틱한 정조가 뒤섞여 있지만, 흔히 쓰는 퓨전이란 말로 사운드 밑바닥에 침잠해 있는 끈끈한 정서적 밀도를 설명하기엔 턱 없이 못 미친다.

3호선 버터플라이의 고유한 음색은 이들이 단순한 기술적 재능 이상의 특출한 감성적 표현 양식을 체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그건 상당 부분, 그리고 가장 먼저 메인보컬 남상아의 보이시한 목소리로 다가오지만 강렬한 듯 늘어지고 의기소침한 듯 쾌활해 지는 이들의 연주를 듣다 보면 골방에서 외롭게 자란 소년 소녀들이 청년이 되면서 빠지게 되는 혼종적 문화에의 자기각성과 자아상실을 동시에 체험할 수 있다. 그건 거품처럼 범람하는 이 시대의 문화적 식민주의에서 근원을 찾을 수 있다.

‘아주 귀여운 내 마음은/ 니 넓은 땅덩이의 식민지/ (중략)/잘난 척하는 미국애들 아무것도 모르는 촌놈들/ 미국애들 싫어 별미 별미’ 3호선 버터플라이 노래 ‘식민지’ 중 (2집 앨범 ‘Oh! Silence’ 수록곡)

약간 위악적이긴 하지만, 이들이 이렇듯 거칠게 노래할 때(이 노래는 전형적인 ‘뉴욕 펑크’ 스타일이다) 그것이 마냥 어린 소년의 생떼로만 여겨지지 않는 건 사운드를 구성하는 여러 음악적 기제들이 상충하면서 만들어내는 기묘한 조화 탓이다. 3호선 버터플라이는 자신들이 어릴 적부터 듣고 따라 했던 음악들이 어떤 문화적 지층을 통해 자신의 삶이 되고 유희가 되고 고통마저 됐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탐문한다.

그때 그들의 태도엔 상당히 지적인 인문학자의 냄새를 풍기지만 그렇다고 놀이와 유흥으로서의 노래의 본질을 잃지 않는다. 위의 가사에서 보이듯 그들은 자신들의 문화적 아이덴티티를 형성한 사회 역사적 맥락에 대해 가장 음악적인 방식으로 대응한다.

때문에 해금 등의 전통 악기와 일렉트로닉 사운드의 접합을 시도했던 2집 앨범 ‘Oh! Silence’의 몇몇 수록곡을 설명하면서 국악과 양악의 결합이라는 식의 상투적인 비평을 시도하는 게 아주 틀리지는 않지만, 핵심에선 많이 벗어난다고 할 수 있다. 3호선 버터플라이가 궁극적으로 실험하는 건 일부 장인들처럼 기술적 능력의 극대화가 아니라 자신들이 듣고 보고 느끼고 깨달은 것들에 대한 오로지 자신들만의 감성적 조합이다.

그래서 그들의 음악은 실험적이되, 어렵지는 않다. 아울러 온갖 잡다한 문화적 소스들이 난전바닥의 생선머리처럼 진열된 이 시대 젊은이들의 문화 풍토에서 이들의 음악은 더 이상 낯설지도 않다. 다만, 상업적 대중문화 시스템이 고의적으로 조작한 ‘비대중성’의 싸구려 신화 속에서 듣기 불편한 족속들로 분류되어 주류에서 왕따 당할 뿐이다.

90년대 후반 크라잉 넛이나 자우림으로 대표되는 ‘인디 스타’들의 출현으로 인디 뮤지션들의 메이저 입성이 이루어졌지만, 그로 인해 초창기의 참신하고 열정적인 인디 스피릿은 오히려 쇠퇴해버렸다.

미국이나 영국의 풍성한 음악적 풍토를 우리와 비교하는 건 개미가 코끼리 등을 올려다 보는 일과 다를 바 없지만, 소위 자생적 문화운동으로서의 인디 음악의 헝그리 정신은 지금 찾아보기 힘들다. 상업적 대중문화가 창작 주체로서 뮤지션의 독창적 개성을 말살시키고 있다는 뻔한 비판을 새삼 주워섬기기도 민망할 만큼 현재 문화의 중심에 창조적 열정은 전무하다.

다양한 음악기제들이 만들어내는 소리의 홍수는 음악을 더 이상 향유의 대상이 아닌 강제적인 최음제로 만들어 버린다. 정작 내 마음을 대신 담아주거나 나의 고민에 화답해 주는 노래를 찾고자 한다면 오히려 침묵 속에 잠기는 게 더 유쾌할 정도이다.

그렇지만 번화가에서 벗어나 변두리의 낯선 골목을 들어서면 소탈하면서도 의외로 세련되고 참한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 3호선 버터플라이는 침침한 변두리 골목을 느릿느릿 비행하며 몸 안에 잠긴 정서적 체증을 가라앉혀 준다.

그들을 만나는 건 아직도 풋풋하게 꿈꾸고 있는 어린 시절의 친구, 이미 다 커버렸음에도 여전히 싱싱한 철없음으로 자신의 영토를 가꾸는 행복한 왕따와 해후하는 것과 유사한 경험이다. 그 왕따들은 섬약해 보이지만, 의외로 힘이 세다.

나비야 두터운 네 과거의 슬픔을 뚫고

가볍게 아주 가볍게 날아라

깊은 밤 길에 나앉은 여인의 눈물 자욱한

담배연기를 마시고 꿈을 꿔도

모든 걸 뒤엎을 순 없어

그래도 넌 꿈을 꿔

단 한번 아름답게 변화하는 꿈

천만번 죽어도 새롭게 피어나는 꿈

돌고 돌아와 다시 입 맞추는 사랑

눈물 닦아주며 멀리 멀리 가자는 날갯짓

꽃가루 반짝이며 밝고 환하게

3호선 버터플라이 ‘꿈꾸는 나비’ (1집 ‘Self-Titled Obsession’ 수록곡)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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