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이전까지만 해도 국내 은행의 대명사처럼 인식됐던 ‘조상제한서’(조흥, 상업, 제일, 한일, 서울은행)가 역사속으로 속속 사라지고 있다.
이미 상업, 한일, 서울은행이 사라진데 이어 제일은행도 조만간 은행명칭 변경을 공식 결정할 예정이다. 조흥은행 역시 신한은행과의 통합이라는 변수를 앞두고 있어 내년 이후에는 이들 은행의 이름을 더 이상 듣기 어려워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7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4월 영국계 스탠다드차타드(SCB) 은행에 인수된 제일은행은 직원과 주요 고객 등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끝에 은행명을 ‘SC제일은행’으로 바꾸기로 잠정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탠다드차타드의 ‘SC’와 ‘제일은행’을 함께 표기하는 절충안이지만 47년간 지켜온 ‘제일은행’이라는 단독 상호의 사용은 더 이상 불가능해지는 셈이다. 특히, 영문 표기는 ‘Standard Chartered Bank’로 통합 사용될 것으로 알려져 ‘Korea First Bank’라는 이름은 완전히 사라지게 될 전망이다.
1929년7월 조선저축은행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된 제일은행은 1958년12월부터 ‘제일은행’ 상호를 사용해왔다. 제일은행은 이번 주말까지 최종 조율 작업을 진행한 뒤 13일에 새 은행명 발표회를 겸한 기자간담회를 가질 예정이다.
제일은행의 명칭 변경이 확정될 경우 ‘조상제한서’로 불렸던 5대 시중은행 중 기존 행명을 유지하는 곳은 조흥은행 밖에 남지 않게 된다.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은 외환위기 시기이던 99년 은행권 구조조정 과정에서 대등 통합해 한빛은행으로 행명이 변경됐으며 2002년 우리은행으로 이름이 바뀌어 유지되고 있다. 서울은행은 2002년 하나은행에 흡수ㆍ합병됐으며 현재 하나은행 내의 서울은행 노동조합만이 과거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조흥은행 역시 은행명 유지 여부가 불투명한 상태다. 신한은행과의 통합 시한이 내년으로 임박하면서 통합 은행의 이름을 결정해야 할 시기가 목전에 다가왔기 때문이다.
물론, 통합은행이 ‘조흥은행’ 이름을 사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실제 2003년 조흥은행의 신한금융지주 편입 당시 작성된 노사정 합의서상에는 ‘통합 은행의 이름은 조흥은행으로 하되 노사정 합의를 통해 최종 결정한다’라고 돼 있다.
그러나, 금융권에서는 그럴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금융권 관계자는 “‘노사정 합의를 통한 결정’이라는 유보조항이 있기 때문에 문구 자체를 곧이 곧대로 해석하기는 어렵다”며 “신한지주가 ‘신한’ 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조흥’을 선택할 가능성은 매우 낮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진석 기자 jse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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