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강의가 시작되면, 그저 가만히 듣고 있는 겁니다.”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직후의 일이다. 한 참모는 대통령을 모시는 요령 가운데 하나로 이런 걸 꼽았다. 그만이 터득한 비법인지, 말을 끊고 끼어 든 참모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는 못한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역사얘기를 시작하면, 종종 20분 이상 계속된다는 사실을 다른 관계자들로부터도 듣게 됐다. 내용도 독특한 것이어서 들은 사람이 나중에 몇 번씩 곱씹어보게 된다는 것이었다.
얘기를 끄집어 낸 것은 그 후 2년 여 동안 국내외에서 일어났던 많은 갈등이 결국은 노 대통령의 역사관에 귀결되는 게 아닌가는 생각이 들어서다. 역사관 자체가, 또는 그것이 전달되는 방식이 논란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말들을 종합해보면 노 대통령의 논점은 우리의 역사가 주변부를 탈피하고 중심부로 진입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 한ㆍ중ㆍ일이 연대해야 한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이를 3국지의 위(魏)ㆍ오(吳)ㆍ촉(蜀) 천하 3분론에 비유한 사람도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에 더해 동북아가 3번째 축을 만들자는 큰 그림이다.
이 구상은 대통령직인수위시절 주변국을 의식해 ‘동북아경제중심론’으로 이름이 바뀌고 경제적 네트워크로 축소됐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기본적인 생각은 국제정치적, 지정학적인 것이다. 때문에 노 대통령은 앞서서 다루지 못한 부분을 동북아균형자론을 내세워 다시 표출하게 된다.
노 대통령이 외교안보 참모들을 기용한 것도 이 구상을 구현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졌다. 일본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정권의 외교목표 가운데 하나가 동북아공동체 실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목표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문제는 너무 적나라한 형태로 표출된다는 데 있다. 특히 용어 자체를 잘못 선택해 말썽을 빚는 경우가 너무 많다.
이는 참모들이 역사관을 가공하는 과정이 없는 탓이다. 대통령 주변엔 그 임무를 맡을 인물이 잘 보이지 않는다. 인수위시절 참모인 윤영관 서동만 이종석 서주석 4인방 가운데 윤 전 장관은 대통령의 역사관을 다루기에는 너무 상식적인 인물이었다. 서 전 국정원 기조실장은 그 반대의 이유로 이탈했다.
뜻을 받들어온 이 NSC 사무차장도 이제는 ‘코드의 불일치’가 눈에 띤다. NSCㆍ외교ㆍ국방보좌관으로 합류한 나종일 주일대사, 반기문 외교장관, 김희상 비상기획위원장도 조언자 역할을 제대로 하기엔 너무 순응적이었다.
도리어 “우리에게 방향을 모를 때 알려주신다”는 자세를 취해버린 사람도 있다. 문정인 동북아시대위원장이 “동북아중심에는 미국도 포함된다”는 식으로 부작용을 희석했으나 그 역시 사실상 탈락했다.
대통령의 독창적인 말을 다른 사람이 수습하기는 매우 어렵다. 동북아 균형자에 대한 비판을 반박하기 위해 ‘소프트파워’(연성국력)를 동원한 것은 정말 궁색해 보였다. 그 뒤에도 “일본을 겨냥한 것이었다” “궁극적인 균형자는 미국” 이라는 해명이 잇따랐다. 이런 ‘밸런서(balancer)’시리즈는 노 대통령의 방미기간 동안에도 분명히 새 버전이 나올 것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발언이 점점 무게를 잃는 현상마저 보인다. 노 대통령이 발표한 ‘국민에게 드리는 글’은 일본 정부에 의해 NSC 상임위원장의 담화보다 더 가볍게 취급됐다. 당시 일본 언론에는 “우리는 모르는 일”이라고 발을 빼는 우리 외교관들의 코멘트들이 낱낱이 보도됐다.
역사강의에 끼어 들어 “그런 때 쓰는 말이 아닙니다”라고 말할 중량급 참모가 나올 때가 됐다. 한미 정상회담 이후가 그런 인물로 참모진을 개편하기에 좋은 시기가 될 것으로 본다.
유승우 국제부장 swy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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