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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정치논평] 비리를 넘어 무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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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정치논평] 비리를 넘어 무능으로

입력
2005.06.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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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사람들을 만나면 심심치 않게 듣게 되는 것이 “노무현 정부가 이러다가 임기를 제대로 채우겠느냐”는 충격적인 말이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한쪽은 걱정에서, 다른 한쪽은 신이 나서 하고 있다는 차이는 있지만 이 같은 이야기를 노 대통령의 지지자들과 반대세력이 모두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1년 전 국민들 덕에 탄핵의 위기에서 기사회생하고 총선에서 압승해 개혁을 향한 사자후를 터뜨릴 때가 엊그제 같은데 안타까운 일이다.

노무현 정부가 위기에 처한 근본적인 이유는 말로는 분배를 강조하지만 김대중 정부에 이어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 양극화를 심화시켜 다수의 삶이 피폐해진데다가 개혁을 한다고 온 세상을 시끄럽게 하면서도 성과는 거두지 못하는 무능에 지지ㆍ반대세력 모두가 분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시 직접적인 기폭제는 유전 게이트와 행담도 개발 사업이라는 의혹이다. 이 의혹을 보고 있노라면 왜 열린우리당이 최근의 워크숍에서 자신들의 이미지가 무능, 태만, 혼란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뼈아픈 자기비판을 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이해하게 된다.

사실 두 사건을 보고 있노라면 노무현 정부는 봉이 김선달 같은 사기꾼들에게 놀아나 국민의 세금으로 이들이 땅 집고 헤엄치는 장사를 하도록 도와 주고 있는 ‘봉이 김선달 정권’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노무현 정부가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하더니 정말 현대판 봉이 김선달들에게 기업하기 좋으라고 상식 이하의 별별 편의를 제공해 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화가 나는 것은 노무현 정부가 입만 열면 시스템을 이야기하면서 사실은 시스템을 완전히 무시한 인치(人治)로 국정을 이끌어 왔다는 점이다. 정말, “말이나 못하면 밉지나 않지”하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러나 어두운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유전 게이트, 행담도 사업과 관련해 정권의 실세들이 거액을 수수했다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한마디로 노무현 정부가 최소한 아직 비리는 저지르고 있는 것 같지는 않은 바, 이는 높이 평가해야 한다.

물론 유전 게이트의 경우 핵심 관계자가 감사원의 넋 빠진 일 처리로 해외로 도주해 완전한 진상을 알 수 없고 검찰 수사 과정에서 이광재 의원의 참모가 관계자로부터 돈을 받은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행담도 개발도 핵심 관계자가 자신의 아들을 문제의 기업에 취직시킨 것으로 밝혀져 비난을 받고 있다. 그리고 단지 밝혀지지 않고 있을 뿐 지금도 대형 비리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최소한 지금까지 가시적으로 나타난 커다란 비리는 없다. 그 동안 역대 정권이 줄줄이 비리로 물들어 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엄청난 역사의 발전이다. 사실 군사독재 정권들은 말할 것도 없고 소위 민주투사 출신 정부들도 비리로 물들어 온 것이 불행하지만 우리의 역사이다.

김영삼 정권은 대통령의 아들인 김현철까지 감옥을 가야 했고 김대중 정부는 한술 더 떠 청와대 비서실장들과 아들들이 줄줄이 비리에 연루되어 옥살이를 해야 했다. 이를 생각하면 그래도 우리는 노무현 정부에서, 그리고 한국 정치에서 작은 희망을 본다.

다만 문제는 노무현 정부가 비리를 넘어 좋은 방향이 아니라 엉뚱하게도 무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성적표를 보건대 노무현 정부를 광고문구로 압축해 표현하라면 “비리를 넘어 무능으로”라는 카피가 가장 어울린다.

당혹스러운 것은 비리를 넘어 무능으로 나아가는 것이 그래도 비리는 넘어서고 있다는 점에서 역사의 발전으로 보아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다소 부패했지만 능력이 있는 정부보다 오히려 후퇴하고 있는 것인지 쉽게 판단이 서지 않는다는 점이다.

레닌의 유명한 글 제목처럼 ‘일보 전진, 일보 후퇴’가 가장 적절한 평가가 아닐는지….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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