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실 인테리어 전문업체 아메리칸스탠다드 코리아 강웅식(65) 회장의 서울 강남구 논현동집무실에는 ‘모젤 강가에서’라는 제목의 유화 1점이 걸려있다. 액자 밑 한켠에는 ‘1998년 姜雄植’이라는 레이블(이름표)이 붙어있다. 언젠가 독일 출장을 갔을 때 모젤 강변의 아름다운 풍경에 취해 스케치를 한 뒤 한국으로 돌아와 틈틈이 색을 입힌 작품이다. 강 회장은 매년 지인들과 함께 여는 자선 전시회에 4~5편의 작품을 출품하지만 이 그림 만큼은 한번도 내놓지 않을 정도로 아낀다.
집무실과 함께 있는 논현동 전시장에는 그가 애지중지하는 작품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전시장이다. 강 회장은 욕조, 세면대, 변기 등을 품목별로 따로 전시하던 기존 매장의 틀을 깨고 욕실 30여 세트를 통째로 전시하고 있다. 최근 화가 몇몇이 모자이크 형식으로 작품을 완성하는 합동작품이 나오기도 하지만, 진정한 예술 작품은 그림 전체에 화가의 혼이 온전히 담겨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래서 “욕실 전체를 한 디자인, 한 컨셉(토털 디자인)으로 꾸미는 것이 이것저것 짜깁기해 만든 욕실보다 훨씬 아름답다”는게 그의 설명이다.
강 회장은 한국미술협회 정회원인 ‘공식 화가’다. 97년에는 첫번째 개인전을 열어 수익금 전체를 부산의 미카엘라 김 수녀가 불우 심장병 어린이를 돌보고 있는 심장환자상담소요양원에 기증했다. 또 96년부터는 매년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 주명건 세종대 이사장, 정상은 중앙그룹 회장 등과 함께 ‘명사 미술전’이라는 그룹전을 열어 수익금 전액을 불우이웃 돕기에 쓰고 있다.
강 회장이 본격적으로 그림 그리기에 나선 것은 지천명(知天命)의 나이에 접어든 후의 일이다. 미대 진학을 고민했을 정도로 그림에 대한 열정은 있었지만 “환쟁이는 가난하다”는 부모님을 끝내 설득하지 못했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썬파워’ 건전지를 생산하던 서통㈜에 입사, 미국 로스앤젤레스ㆍ뉴욕 지사장 등 주로 해외사업을 담당했다. 직장생활은 그에게 그림을 그릴 수 있을 만큼의 여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급기야 85년에는 위궤양이 심해져 회사를 그만둬야 했다. 이듬해 강 회장은 아메리칸스탠다드 코아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새 회사 생활에 적응이 된 89년에야 비로소 붓을 들 수 있는 짬이 생겼다. 강 회장은 백화점 문화센터 등을 돌며 이후 3년 동안 본격적으로 서양화 수업을 받았고, 97년 첫 개인전을 연 뒤 한국미술협회의 심사를 거쳐 정식 화가가 됐다.
강 회장은 풍경화를 좋아하고 또 즐겨 그린다. 초기에는 정물이나 누드도 그렸지만, 그는 자연 만큼 조화롭고 완성된 구도를 만드는 것도 없다고 말한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집 근처 배밭, 고향인 충남 아산의 논과 밭, 그리고 해외 출장 때마다 보고 깊은 인상을 받은 풍경들이 그림의 주된 소재다. 그는 휴일이면 지인들과 함께 스케치 여행을 하고, 주로 새벽 시간을 이용해 집에서 스케치 위에 색을 입힌다. 그렇게 그린 그림들을 모아 그룹전을 열고, 회사 달력을 만들어 직원들에게 나눠주는 것이 그에게는 더 없는 기쁨이다.
그는 “경영도 예술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최근 각광 받고 있는 이른바 ‘디자인 경영’이다. 강 회장은 “특히 외국계 기업을 경영한다는 것은 서로 다른 두 나라의 문화와 경영 방식을 끊임없이 조정하는 과정의 연속”이라며 “마치 잘 짜여진 구도의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처럼 아메리칸스탠다드 코리아는 연간 600억원대의 매출을 기록하며 외국의 선진 욕실문화를 국내에 전파하는 동시에, 한국에서 디자인해 생산한 수도꼭지를 미국 본사와 세계 60여개국에 수출하는 조화로운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신재연기자 poet333@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