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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끝없는 폭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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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끝없는 폭탄주

입력
2005.06.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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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폭탄주가 성행한 것은 5공화국 시절 1980년대부터이지만 그 유례에 대한 정확한 설은 없다. 군사정권에서 군인사회가 미국에서 배워 와 퍼졌다는 얘기와 검사 사회가 만들어 마신 것이 시초라는 말들이 엇갈려나돈다.

정치권의 폭탄주 애호가인 박희태 국회부의장이 춘천지검장 시절 고안해 그 지역이 발원지라는 다소 구체적인 ‘목격담’을 들은 적도 있으나 다 그렇고 그런 얘기다.

■위스키와 맥주를 섞어 마시는 주법은 미국이나 러시아의 노동계급에서 예전부터 있었다고 한다. 탄광이나 부두 노동자들이 허기와 취기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두 가지 술을 섞어 마시거나 번갈아 마셨다는 것인데, 보일러메이커(boilermaker)라고 불린다.

또 우리 일제시대 현진건의 소설 ‘적도’에는 “명월관 본점에서 맥주에다가 위스키를 타 먹은 탓인지, 눈을 뜨자마자 타는 듯한 갈증을 느끼는’ 주인공이 묘사돼 있다고도 한다.

■이 방식들은 맥주 잔에 위스키 잔을 통째로 빠트려 ‘제조’하는 우리 식 폭탄주와는 다르다. 다만 로버트 레드포드의 1992년 미국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에서는 1920년대 몬타나 주 산골의 도박장에서 우리처럼 만들어 마시는 장면이 나온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도 크게 다른 점은 우리의 폭탄주는 술잔 돌리기를 통해 강제적으로 참석자들을 ‘마셔 취하기’에 동참시킨다는 것이다. 한국의 술자리 문화에 관한 연세대 이상길 교수의 한 연구는 폭탄주가 참석자들의 친교를 도모하는 독특한 유형의 사회적 의례(ritual)라고 분석한다.

■이 교수에 따르면 그 친교는 불참한 타인들을 배제하는 배타성과 은밀성을 지닌다. 그로 인해 비밀에 대한 강력한 소유감을 공유토록 하고, 소속감을 북돋우며, 인정의 가치를 갖는다.

따르고 받기, 건배하기, 잔 돌리기, 노래하기 등으로 이루어지는 한국식 술자리는 모든 참여자들을 최대한 취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구조화돼 있다는 게 그의 관찰인데, 그 중 폭탄주는 압권인 셈이다.

며칠 전 국무총리, 법무ㆍ행자부 장관, 검찰총장 경찰청장 등 요인들이 모여 폭탄주 ‘실컷’ 마신 뒤 골프 약속으로 자리를 끝내 구설수에 올랐다. 숱한 화제들에 하나가 추가된 것이지만, 폭탄주 화제는 끝이 없다.

조재용 논설위원 jae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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