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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몰상식한 정치와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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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몰상식한 정치와 언론

입력
2005.06.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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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국민의 이목을 끈 뉴스에서 우리사회가 원칙과 상식을 쉽게 내버린다는 것을 새삼 절감했다. 더 정확하게는 흔히 사회를 이끈다는 정치와 언론이 원칙과 상식을 돌보지 않는 탓에 온 나라가 그렇게 흘러가는 현실을 확인했다. 지난 사례를 다 살필 것 없이, 동해 경비선 대치 사태만 되돌아봐도 이런 현상이 뚜렷하다.

경비선 대치는 놀랍기는 하나 애초 마냥 흥분할 일이 아니었다. 사태의 발단은 일본 수역에서 불법 조업한 의심을 받은 우리 어선이 검문 경찰관 2명을 감금하다시피 한 채 우리 수역까지 도망쳐 해양경찰의 비호를 받은 것이다. 우리 어선은 경찰관이 위험한 밤 바다에 빠졌는데도 그냥 달아났다.

일본측이 범법 어선과 선원 인도를 요구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따라서 아무리 한일 관계가 험한 때라도 정부와 언론이 돌봐야 할 본질적 과제는 법 원칙과 국제관례에 따라 사태를 원만하게 해결하는 것이었다.

-정치ㆍ언론 포퓰리즘이 혼돈 부추겨

그러나 그 동안 반일 감정을 한껏 부추긴 정부와 언론은 사태 본질은 올바로 설명하지 않은 채 국민 정서만 신경 썼다. 정부는 일본 순시선부터 철수하라고 요구했고, 언론은 일본 경찰이 어선 도주를 막는 과정에서 우리 선원을 때린 사실을 부각시켜 반일 감정을 덧들였다.

평소 정부의 포퓰리즘을 비난하던 야당까지 일본의 만행을 규탄하고 나섰으니 온 나라가 앞뒤 가리지 않는 반일 정서로 들뜰 것은 당연하다.

결국 사태가 우리 어선의 잘못을 인정하고 마무리 된 것에 여론이 어리둥절해 한 것은 그만큼 맹목적 애국 정서에 휩싸였던 과오를 일깨운다. 어선과 선원을 지킨 것에 일부 네티즌이 ‘울산대첩’ 을 떠든 것은 그러려니 할 수 있다.

그러나 불법조업 중국어선을 단속하느라 온갖 위험을 무릅쓰는 해양경찰이 선원들과 함께 개선을 자축하듯 한 것은 지각 없다. 어민들의 사정은 동정해야겠지만 여러 불법을 저지른 어선을 지킨 것을 떠들썩하게 자랑하는 것은 나쁜 선례와 본보기를 널리 알리는 것과 같다.

이런 경위는 우리사회가 서로 친일이니 반일이니 욕하며 싸우는 데 이골이 난 나머지, 모든 일에서 원칙과 상식을 돌보기보다 심정적 호오(好惡)에치우치는 현실을 그대로 드러냈다.

정치는 물론이고 언론도 보수와 진보를 가림 없이 국민 정서를 자극하고 영합하는 포퓰리즘에 젖은 것을 잘 보여주었다. 언론은 뜻밖의 결말에 한일관계를 걱정하는 어정쩡한 논평을 내놓았지만 당초 포퓰리즘에 기운 잘못을 가리진 못한다.

반일 정서가 걸린 사안은 예외적이라고 변명할 게 아니다. 언론이 편향된 포퓰리즘으로 국민의 이목을 어지럽히는 잘못은 창경궁 세계신문협회 만찬 논란에서도 뚜렷하다.

언뜻 사소한 일을 연일 시비하는 공영방송들은 문화재 보호명분을 앞세우지만 평소 이념성향과 정부 지지여부 등을 경계로 무식하게 다투는 것의 연장이다. 그런데 거듭되는 보도를 잘 들으면 만찬 행사의 문제는 참석자들이 담배를 함부로 피우고 술을 많이 마신 것 뿐이다.

-헛된 논란 대신 원칙과 상식 좇아야

팔이 안으로 굽어 괜한 우스개를 하는 게 아니다. 정부가 예산을 지원하고 장소사용까지 허가했다면 정부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이 원칙이고 상식이다.

그런데도 행사를 주도했다는 보수신문들의 평소 보도행태까지 욕하는 빌미로 삼는 것은 엉뚱하다. 이 와중에 정부가 다른 국제행사 때도 고궁 사용을 허가할 것이라고 해명하는 모습은 모두가 빗나간 논란에 매달려 악다구니 치느라 뭐가 옳고 그른지 뒤죽박죽인 현실을 상징하는 듯 하다.

정치와 언론이 한 구덩이에 어울려 이념과 친일과 과거사와 사림ㆍ훈구 따위의 거창하나 공허한 시비를 되풀이하는 짓은 이제 그만둬야 한다. 당장 나라와 국민의 이익이 걸린 크고 작은 일에서 원칙과 상식을 좇는 것이 무엇보다 절박한 과제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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