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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탄 화가 허윤희 '날들의 피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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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탄 화가 허윤희 '날들의 피부'전

입력
2005.06.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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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탄은 가장 원초적인 미술재료다. 일체의 화학첨가물 없이, 자연에서 나는 단단한 나무를 태워 만들거니와 오로지 검은색 한가지로 장식이 없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무엇보다 붓 같은 도구를 쓰지않고 손으로 직접 사용한다. 목탄과 손이 한 덩어리로 움직이면 감성은 더 예민하게 화폭에 담긴다. 때문에 소박한 재료이지만 분출하는 감성의 진폭은 깊고 크다.

목탄으로 벽화를 그리는 작가 허윤희씨는 목탄의 매력을 “수없이 그리고 지우고 손으로 문지르는 행위를 통해 마치 기억이 켜켜이 쌓이듯 존재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라고 말한다.

7년여 낯선 땅 독일에서 작업한 허윤희씨가 귀국후 첫 개인전을 갖는다. 3일 인사미술공간에서 시작된 전시 명은 ‘날들의 피부’. 문예진흥원이 유망한 젊은 작가들을 지원하기위해 주관하는 기획초대전의 하나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우선 벽면을 가득채운 거대한 벽화가 시선을 압도한다. 하얀 벽을 통째 화폭 삼은 목탄드로잉 ‘배’다. 흔히 드로잉은 작품을 그리기 위한 밑그림 정도로 이해돼지만 허씨의 작품세계에서는 그 자체가 완성된 존재다. 단순한 삼각형의 거대한 배 안에는 밧줄로도 탯줄로도 보이는 것들이 가득 채워져있다. 그 뒤로는 분명 그리다 지웠을, 그러나 의도적으로 흔적을 남긴 여자의 얼굴이 숨어있다. 여자는 눈을 감았다.

그림은 작가가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라는 질문에 집요하게 매달리고 있음을 암시한다.

허씨는 스스로를 “(무언가 끊임없이) 찾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독일체류시절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이방인의 자유로움 만큼이나 필연적인 외로움 등을 겪으면서도 자신에게 가장 간절한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기록하는 작업에 몰두했다. 헌 책방에서 구한 폴 고갱의 평전 위에 다시 그림을 입힌 작품은 한 예술가의 삶 그대로를 맨 살을 만지듯 보게 한다.

독일생활을 결산하는 개인화집에 허씨의 스승이자 미술평론가, 화가인 독일 브레멘대학 롤프 틸레 교수가 “허윤희의 작업을 보면 그녀가 예술을 삶에 겨냥해서 하고 삶을 예술에 겨냥해 살려고 애쓰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예술작업을 통해 이처럼 삶을 진하게 표현하고 집중적으로 살아가는 일에 매달린다는 것은 분명 대단한 일”이라고 평한 것에 수긍하게 된다.

전시장 양쪽 벽면과 옥상으로 이어지는 계단벽을 가득 채운 목탄 벽화, 헌책과 노트를 이용한 그림들, 직접 쓴 시들이 함께 걸렸다. 헌책을 이용한 작품집은 곧 아트북으로도 출판된다.

현대회화가 지나치게 개념적이고 난해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전시가 들려주는 낮고 솔직한 고해성사에 매료 당할 법하다. 미술평론가 이진숙씨는 이번 전시를 “‘그리다’라는 동사가 가진 본래의 소박하고 진정한 아름다움을 일깨워주면서 동시에 그 절실함과 진정성으로 보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다”고 평했다.

허씨는 이화여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했고 독일 브레멘조형예술대에서 수업했다. 브레멘과 베를린, 함부르크 등에서 개인전과 그룹전을 가졌다.

이번 초대전에 앞서 지난해에는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가진 작가들을 집중 지원하는 국립현대미술관의 레지던스프로그램, 창동스튜디오의 입주작가로도 발탁됐다. 귀국한지 1년 남짓을 감안하면 빠른 행보다. 전시는 19일까지. (02)760-4722.

이성희기자 summ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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