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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중고 '학교폭력예방 형사모의재판'/ "장난삼아 일삼는 폭행,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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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중고 '학교폭력예방 형사모의재판'/ "장난삼아 일삼는 폭행,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입력
2005.06.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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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렇게 친구들을 괴롭히고 때렸는지 저 자신이 미워 죽겠습니다.”

3일 오전 11시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야외무대에서는 가정사정이나 학교 부적응 등의 이유로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한 학생들이 새로운 인생을 만들어 가고 있는 서울 성지중ㆍ고(대안학교) 주최로 학교폭력 모의재판이 열렸다.

판사 검사 변호사 피고인 피해자 증인 서기 법정경위 등 등장인물 16명 모두가 한때 학교폭력의 가해자나 피해자여서 이날 모의재판은 실제 재판을 보는 것처럼 현실적이었다.

이 학교 학생과 학부모, 교사 500여명과 대학로에 나온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모의재판이 시작되자 재판부가 근엄한 표정으로 입장했다. 이어 푸른 죄수복의 피고인들이 포승줄에 묶인 채 등장했다. 다소 코믹한 광경에 객석에서는 까르르 웃음이 터져 나왔지만 금새 잠잠해졌다.

일진짱인 피고인 나칠레군과 조패리군 역할은 정상기(22ㆍ고3) 박성환(20ㆍ중2)씨가 각각 맡았다. 이들은 친구 허약한군을 때리고 집단 따돌림해 자살에 이르게 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검사역을 맡은 날카로운 눈빛의 차동환(20ㆍ고3)씨가 이들에게 뚜벅뚜벅 걸어가 질문을 시작했다. “나칠레군은 놀이를 핑계 삼아 친구들에게 허약한군을 때리라고 시키고 체육시간에는 침도 뱉었지요? 피고인은 이런 일이 죄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나요?” 검사는 나칠레군이 강요해서 때렸다고 변명하는 조패리군도 엄중하게 신문했다. “가슴 몇 대 때린 것도 분명 폭행치상죄입니다. ‘남이 시키니까, 남들도 때리니까 나도 해도 되겠지’라는 생각을 정당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때리지도, 때리라고 시키지도 않았습니다.”(나칠레군) “나칠레의 말을 듣지 않아서 팔이 부러진 친구도 있어요.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어요.”(조패리군) 피고인들의 궁색한 변명이 이어지자 객석에서 ‘우’하는 야유가 터져 나왔다. 변호인인 이종환(19ㆍ고3)군과 김이래(20ㆍ여ㆍ고3)씨는 “피고인들의 행동과 피해자의 자살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는 변론을 했다.

이날 모의재판의 하이라이트는 허약한군 어머니역으로 나온 박무임(54ㆍ여)씨의 눈물 연기. 현재 이 학교의 늦깎이 고3 학생인 박씨가 아들이 남긴 유서를 울먹이는 목소리로 읽어가자 지켜보던 학부모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마지막으로 재판부는 나칠레군과 조패리군에게 각각 징역 5년과 징역 3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모의재판을 준비한 박진철(42) 교사는 “교실에서 장난 삼아 벌이는 폭력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지 가르쳐주고 싶어 이번 행사를 개최했다”며 “모의재판 연습을 하는 과정에서부터 아이들이 많이 착해졌다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쌈짱으로 친구들을 무던히도 괴롭혔다는 나칠레군 역할의 정상기씨는 이날 누구보다 감회가 깊었다. “옛날에 제가 때린 친구들 얼굴이 하나씩 떠올랐어요. 얼마나 미안하던지…. 남은 학창생활 동안은 물론이고 사회에 나가서도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겁니다.”

김명수기자 lece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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