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귀국이 카운트 다운에 들어갔다.
김 전 회장의 변호인으로 오랫동안 활동해왔던 석진강 변호사는 4일 “김 전회장이 조만간 공개적으로 귀국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베트남에서 귀국한 석 변호사는 “(김 전회장이) 오늘 내일 들어오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귀국이 임박했음을 부인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이르면 다음 주 늦어도 이 달 내 그의 귀국이 현실화할 것으로 보인다.
◆ 임박한 귀국
김 전회장의 또 다른 측근도 “국내 분위기가 우호적이라면 이 달 중 귀국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회장이 최근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에서 측근들을 만나 귀국 시 형사처벌 수위, 재산반납 정도를 조율했다는 말도 떠돌고 있다. 지난 달 베트남에서 김 전 회장을 만나고 돌아온 열린우리당 김종률 의원도 “김 전 회장이 기본적으로 처벌을 감수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그의 귀국을 기정사실화했다.
대우그룹 출신 인사들도 이 달 말 ‘김우중 토론회’를 열 움직임을 보이는 등 긍정적인 여론 조성에 힘을 쏟고 있다. 김 전회장의 측근인 백기승 유진 전무는 귀국 실무를 처리하기 위해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내는 열의를 보이고 있다. 대우그룹 임원 출신들은 서울 종로에 사무실을 내고 정ㆍ관ㆍ재계 인사들과 접촉하며 여론동향을 파악 중이다.
◆ 궁금증들
김 전 회장의 행적은 99년 출국한 이후 베일에 싸여있다. 어디에서 살았는지도 잘 알려지지 않았다. 언론에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시작으로 홍콩, 알제리, 프랑스, 미국, 베트남, 태국, 이탈리아, 수단, 모로코 등이 소재지로 거론됐지만 정작 확인된 적은 없다. 심지어 프랑스 일간지 ‘리베라시옹’은 3월 “김 전 회장이 2003~4년 서울에 있었다”는 오보를 내기도 했다. 여권은 이미 말소돼 그는 현재 프랑스 여권을 사용하고 있다.
왜 해외도피를 택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많다. 그는 2003년 포천지와의 인터뷰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잠시 (외국에) 나가 있으라고 해서 나갔는데 그 이후 감감 무소식”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재산관계도 궁금한 대목이다. 2001년 그의 측근은 김 전회장의 재산상태에 대해 “가진 것은 팬티 한 장 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한 방송은 “김 전 회장의 막내아들이 베트남 하노이에 골프장과 주택단지 건설을 추진하는 업체 회장을 맡고 있다”며 “김 전 회장 일가의 재산은 국내만 해도 1,000억원대”라고 보도했다 .
이번 귀국이 어떤 경로로 추진됐는지도 궁금한 대목이다. 일각에서는 그가 연세대 출신이라는 점을 주목한다. 연세대 총장 출신인 김우식 청와대비서실장 등 연세대 출신 정부 실세들이 그의 귀국과 사면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을 돌보고 있다는 설이다.
◆ 왜 지금인가
1999년 10월 중국 옌타이 대우자동차 부품공장 준공식 이후 모습을 감춘 이후 수 차례 귀국설이 나돌았던 김 전 회장은 이번만큼은 귀국 의지가 확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귀국의 직접적인 배경으로 언급되는 것은 고령과 심장 질환이다. 올해 69세인 그는 최근 앓던 심장 질환이 크게 악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우그룹 분식회계사건이 4월 말 대법원의 유죄 확정판결로 종결됐고, 일부 인사들이 5월 특별사면 됐다는 점도 귀국을 당기게 된 요인으로 보인다. 사법처리를 피할 수 없는 김 전 회장으로서는 귀국 후 신속하게 형을 확정지은 뒤 이 같은 전례를 근거로 특별사면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정권교체와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의 퇴진을 연결시키기도 한다. 그의 귀국설은 대우그룹 해체를 주도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헌재 당시 금융감독원장이 현직에서 물러난 2002년 말 처음 흘러 나왔기 때문이다. 이밖에 대우그룹 해체 이후 분리된 대우 계열사들이 건실한 회사로 자리 잡아 ‘김우중 책임론’이 다소 희석됐다는 측면도 고려됐다는 지적이다.
고주희 기자 orwell@hk.co.kr
■ 혐의 무거워 구속 불가피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귀국한다면 그에 대한 사법처리는 어떻게 진행될까.
검찰은 지난 주 초 김 전 회장측이 귀국의사를 타진한 직후부터 관련 자료를 대검 중수2과(오광수 과장)로 모아 검토하고 있다. 중수부 관계자는 3일 “그 동안 모두 4차례 귀국 의사 타진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돼 수사에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전 회장은 현재 해외도피로 인한 기소중지 상태다. 2001년 발부된 체포영장에 따르면 그는 1997년부터 3년간 5개 계열사에 41조원 규모의 분식회계를 지시해 이를 근거로 10조원의 불법 대출을 받았고, 대우 영국법인 BFC사를 통해 수출대금과 해외 차입금 등 25조원을 해외로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귀국하면 곧바로 공항에서 체포해 조사한 뒤 법대로 처리한다”는 원칙적인 입장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김 전 회장의 혐의가 워낙 무거워 구속수사가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김 전 회장의 분식회계와 사기대출, 재산해외도피 혐의는 이미 같은 혐의로 기소된 전 대우 임원 7명에 대해 대법원이 4월 유죄 확정판결을 내린 만큼 그대로 인정될 가능성이 크다. 당시 재판부는 “피고인이 김우중에게 지시를 받았고”, “김우중 등과 공모해” 등의 표현으로 김 전 회장의 법적 책임을 못박았다.
여기에 김 전 회장이 그룹 붕괴 과정에서 퇴출을 막기 위해 정ㆍ관계에 전방위 구명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도 규명 대상이다. 김 전 회장의 진술 수위에 따라 엄청난 파장이 있을 수 있다. 범죄 혐의자의 해외도피 기간 중 공소시효가 정지되기 때문에 혐의가 드러나면 뇌물이나 정치자금법 위반 모두 적용이 가능하다.
김 전 회장이 유일하게 기대할 수 있는 면죄 수단은 대통령의 사면이지만, 이 역시 법원 선고가 확정돼야 가능하기 때문에 최소한 6개월은 걸릴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김 전 회장이 벌써부터 ‘건강이 안 좋다’는 사정을 여러 경로로 밝히고 있는 점으로 미뤄 구속이 되더라도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구속집행정지나 보석 등으로 일찌감치 풀려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사면과 마찬가지로 이 또한 여론의 향배에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김용식 기자 jawohl@hk.co.kr
■ 김우중, 정·재계 재평가 논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귀국이 ‘초읽기’에 접어들면서 정ㆍ재계에서 ‘재평가 논란’이 일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천문학적 규모의 분식회계 등 경영책임을 엄정히 물어야 한다”는 주장과 “국가경제에 이바지한 점과 당시 경제상황을 감안해 공과(功過)를 가려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하다. 일각에서는 그가 귀국 후 검찰에서 진술할 대우그룹 해체를 둘러싼 ‘진상’이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다며 ‘김우중 후폭풍’을 우려하고 있다.
이상민(우리당) 의원은 3일 “국가부도에 책임이 있으면서도 보신을 위해 해외로 도피해 놓고 이제 와서 국민의 값싼 동정심을 유발하려는 건 비열한 작태”라며 “하루 빨리 귀국해 사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종구(한나라당) 의원은 “김 전 회장 때문에 쏟아 부은 공적자금이 28조원에 달하고 이 중 국민 혈세로 충당할 액수가 최소 15조원”이라며 “반드시 책임을 가려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이한구(한나라당) 의원은 “김 전 회장은 사리사욕을 위해 재산을 빼돌린 게 아니고, 당시 국제경제 상황과 청와대와의 관계에서 피해를 본 측면이 있다”며 “애국심과 검박함, 경제인으로서의 투지를 재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계는 “이젠 매듭을 풀고 가야 할 때”라는 반응이 주류다. 재계 관계자는 “장기 외유가 계속되면 본인은 물론 국민경제에도 도움이 될 게 없다”며 “김 전 회장은 한때 한국 경제를 대표했고 아직도 인적 네트워크가 살아 있다는 점에서 하루빨리 결론을 내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옛 대우 임원 모임인 대우인회가 대우 재평가 등을 위한 역량결집을 촉구하고 나서 귀추가 주목된다.
전 대우그룹 임직원들은 김 전회장에 대한 재평가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반응이다. 대우인회 정주호 회장은 3일 모임 홈페이지에 실은 ‘김우중 회장 귀국소식에 즈음하여’라는 제목의 공지사항을 통해 “혐의를 전부 수용하기엔 부당하고 사실과 다른 측면이 상당히 있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라며 “대우에 대한 공(功)과 과(過)가 바르게 평가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줄 것”을 당부했다.
대우그룹 운동권 출신 인사들로 결성된 세계경영포럼(회장 김 윤)은 최근 모임을 갖고 전 대우그룹 직원들을 중심으로 김 전회장에 대한 재평가를 위한 서명운동을 벌이고, 김 전회장의 사법처리가 확정될 경우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 를 제출하는 등 구명 운동을 편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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