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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나는 왜 너를 미워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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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나는 왜 너를 미워하는가?

입력
2005.06.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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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팬지를 통해 ‘분노’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이 무차별적으로 정상인을 공격하고, 병균은 걷잡을 수 없이 퍼진다. 좀비처럼 도시를 떠돌며 사냥감을 찾던 수 많은 감염자들은 곧 죽음을 맞이하며, 인류는 절멸의 위기에 처한다.

2003년 개봉한 영국 대니 보일 감독의 영화 ‘28일 후’의 내용이다. 분노가 잔혹한 행동을 유발하고 공멸을 초래할 수 있다는 메타포를 지닌 이 영화는 인류에 가장 치명적인 위협은 결국 마음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통제할 수 없는 분노는 증오의 외적 표현이다. 증오는 사람들 마음속에 도사린 채 뇌관의 폭발을 기다리고 있는, 언제 터질지 모를 폭탄 같은 것이다. 나치 독일이 600만 명의 유대인을 참살한 것이나 캄보디아의 크메르 루주 정권이 200만 명의 국민을 처형한 것은 단지 국제정세의 흐름이나 이데올로기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인간 본성의 하나인 증오와 공포가 역사를 통해 켜켜이 쌓인 보복과 반목의 악순환을 만나면서 반인륜적인 학살과 테러를 만들어 낸다.

미국 연방경제발전기관 운영위원회 의장을 역임한 러시 도지어 주니어가 펴낸 ‘나는 왜 너를 미워하는가?’(Why We Hate)는 이런 증오에 대한 종합 보고서다.

저자는 “증오는 동정과 연민이라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포용력을 차단하며, 희생양들의 인간성을 말살시켜 버리는 거의 무한한 힘을 가진 것”이라고 정의 내리고 “대량살상무기가 넘쳐 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의 안녕을 위협하는 핵심 문제”라는 위기의식에서 증오에 대한 다각적인 분석을 시도한다.

책은 뇌의 편도체, 시상하부, 해마 등을 포함한 변연계와 그것을 덮고 있는 신피질의 연결고리 속에서 증오가 극단적인 행동을 이끌어내는 생물학적 과정을 찾아낸다. 인간의 희로애락을 관장하는 변연계가 논리적 사고의 근간인 신피질과 만나면서 단순하고 본능적인 감정에 문화적ㆍ사회적 의미가 덮씌워진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왜곡된 기존 가치체계를 진실로 믿으며, 비이성적인 상황을 이성적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타인에 대한 증오는 종교적 열정이나 이데올로기적 상징으로 둔갑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9ㆍ11 테러, 보스니아의 ‘인종 청소’ 등 혐오스러운 인류의 집단 범죄행위는 모두 이런 과정을 통해서 발생했다고 보는 것이다.

책은 생물학적 측면뿐만 아니라 역사학과 사회학의 관점에서도 증오를 고찰한다. 미국 사회를 충격으로 몰고 간 콜럼바인 고등학교의 총기 난사 사건이나 인종차별 범죄, 자살에 이르기 까지 증오의 다양한 사회적 표현 형태를 분석한다.

언론인과 변호사로 활동하며 과학 심리학 사회학을 아우르는 논픽션 저서들을 선보여온 저자는 해박한 과학적 지식을 토대로 증오의 발생과정을 명쾌하게 해부할 뿐만 아니라 증오를 어떻게 예방하고 제거할 수 있는 지에 대한 방안도 제시한다.

그러나 ‘자신과 타인을 계도 한다’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건설적이고 구체적인 협상을 시도한다’ 등 10가지로 요약 정리된 방안은 그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이상적인 ‘마음 다스림’과 ‘긍정적인 사고’ 만을 강조해 설득력이 떨어지는 아쉬움이 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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