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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버림받은 성적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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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버림받은 성적표

입력
2005.06.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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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8시 10분 한 고등학교의 방송수업. 지각생 매 타작하는 소리가 요란하다. <텔레비전 속의 선생님이나, 담임선생님이나, 우리나, 정말 사람 할 짓이 아닌 것 같다> (‘방송수업’)

고등학교 교실의 아이들은 목이 없다. <우리 교실 뒷자리에서 보면 수업하다 아이들을 등만 있고 목이 없다. 목 없는 아이들이 불쌍하다.> (‘목 없는 아이들’)

담배 피우다 들켜서 선생님한테 걷어 차이고 뺨 맞고 사람 대접 못 받은 데 격분한 학생은 이렇게 썼다. ‘ 열받아서 한 대 치고 싶은 생각까지 들었지만’ ‘진짜 주먹이 끝까지 올라왔지만’ 꾹 참았는데, <교무실에서 반성문 쓰고 있는데 샘이 내 머리를 발로 밟는다. 결국에는 금연학교까지 갔다 오니 아는 척하지 말고 수업에도 들어오지 말란다. 나도 별로 척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담배’)

고등학생들이 쓴 시를 모은 ‘버림받은 성적표’에서 안쓰럽고 화 나는 학교 현실을 본다. 이 책은 1998년부터 2004년까지 부산 강서고, 부산고, 부산상고 학생 81명이 쓴 시를 엮은 것이다.

주로 학교나 집에서 벌어지는 일을 썼다. 학교 현실 뿐 아니라 자식 잘 되라고 고달픈 짐을 짊어진 채 노심초사하는 부모에 대한 애틋한 생각, 거리에서 주변에서 보고 느낀 것들, 미군 장갑차에 희생된 여중생 사건, 외국인 노동자 같은 사회적 이슈에 대한 발언도 들어있다.

<교복을 입고 선생님들이 시켜서 공부하는 것이나 교도소에서 죄수들이 죄수복 교도관 지시에 따르는 것이 무엇이 다르나. …우리 나이에 생각해보면 학교란 무엇보다 심한 벌인 것 같다.> (학교)

밤 늦게 학원 수업을 마치고 돌아와서 쓴 시는 이렇게 끝난다. <옷 갈아입고 세수하고 나니 시계는 한 시 반 핸드폰을 보니 26일 수요일이라 되어 있다 좀 전만 해도 25일 화요일이었는데 하루를 마친 시각이 오늘이 아니고 내일이다> (‘학원 수업 마치고’)

입시에 쪼들리고 성적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괴로움은 표제작 ‘버림받은 성적표’가 말한다. 아버지가 형편없는 성적을 보고 성적표를 찢어버린다.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벽을 맘껏 후려치고 싶다 …니 정말 이럴래? 아버지는 니 하나만 믿고 사… 못난 아들이구나 성적표가 싫다 이깟 게 뭔데 나와 아버지 사이를 갈라놓아>

아주 매끈하지는 않아도 솔직하고 절실해서 마음에 와서 꽂히는 시들이다. 이 아이들을 가르쳤던 엮은이의 말마따나 ‘고등학생이 시 쓸 틈이 있나?’ 싶지만, ‘죽은 시인의 사회’ 같고 감옥 같은 학교에서 이 어린 시인들은 저마다 시로 마음을 표현하고 자신을 드러냈다.

읽다 보면 더러 한숨이 나온다. 누가 이 귀한 아이들을 지옥에 몰아넣나. 또래 학생들은 공감할 테고, 어른들은 마음이 무거워질 것 같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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