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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골목길 '선착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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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골목길 '선착장에서'

입력
2005.06.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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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섬에는 호박엿하고 오징어만 있는 기 아이라요. 화산섬이라 뱀과 독초가 없어 나물들이 수두룩하다 아입니꺼.” 안내원이 관광선에서 손님들에게 억센 경상도 사투리로 너스레를 떤다. 극단 골목길(대표 박근형)의 ‘선착장에서’는 사투리 특유의 진솔함을 빌어 별 볼일 없는 삶에 숨겨진 진실을 천연덕스레 펼쳐놓는다.

1999년 연극 ‘청춘예찬’으로 각종 상을 휩쓴 이후 한 해 한 편 꼴로 신작을 발표해 온 박근형(42)씨가 새 작품을 내놓았다. 닫힌 공간 속 인간들의 행태에 대한 연극적 보고서다.

악천후로 배가 일주일째 끊긴 울릉도. 하릴없이 일상을 보내면서 주민들은 조금씩 신경질적이 돼 간다. 마담과 히히덕대는 엄 사장, 가끔씩 다방에 들르는 경찰 등 주변 인물들은 그 일상 속으로 관객을 끌어 들인다. 그 와중에도 관광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사람들은 섬에 남아있는 관광객들을 상대로 유람선 운행을 계속한다. 관광 안내원의 입심이 한몫 하는 곳이 바로 이 대목이다.

억센 사투리로 치고 받는 입심이 가득한 무대 초반은 차라리 개그 콘서트다. 그러나 연극은 거기서부터 다시 출발한다. 고립된 섬에서의 일반 군상이 만들어내는 폭소의 말미에 돌발 상황이 벌어진다.

섬을 드나드는 뭇 남자들에게 희롱 당하던 유흥업소 종업원 명숙이 아이를 밴 채 음독 자살한 것. 한 바탕 소동이 벌어지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일상은 버젓이 돌아온다. ‘울릉도 트위스트’, ‘이별의 부산항’ 등 극중 곳곳에서 튀어 나오는 철 지난 유행가 선율에는 시간이 정지된 지방 소읍의 문화가 반영돼 있다.

배우들의 연기가 객석에 자연스럽게 삼투되는 것은 5월 한달 간 매주 두세 차례씩 현지인에게서 ‘사투리 과외’를 받은 덕이 크다. 늘 그렇듯 그는 이번에도 극히 간단한 소품만을 사용하지만 훌륭한 역할을 한다. ‘박근형표 사실주의’다.

가족 해체라는 테마를 붙들고 온 작가의 ‘쥐’, ‘청춘예찬’ 등을 쭉 봐 왔다는 김혜진(30ㆍ회사원)씨는 “일상적 사건을 극적으로 풀어가며 주제에 접근하는 재능은 또래 연극인에게서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매년 한편 꼴로 신작을 발표하는 다작(多作) 에다 파격적 주제, 저예산 연극 등으로 확실히 ‘튀는’ 그에게 중견 연출가 심재찬(극단 전망 대표)씨는 ‘연극계의 김기덕’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심씨는 “쓸 데 없이 돈 안 들이고 자기 이야기를 거침 없이 한다는 뜻”이라며 “아무런 포장 없이 가난을 사실 그대로 이야기해, 관객들이 자각 증세를 느끼게 하는 연극인”이라고 말했다.

이번의 자각 증세는 다람쥐 쳇바퀴 같은 일상이 어느 날 주는 섬뜩함에 대한 발견에서 비롯된다. 입심 좋게 느물대는 사장역의 엄효섭, 반미치광이 청년역의 이규회 등의 연기가 특히 시선을 붙들어 맨다. 12일까지 삼일로 창고극장 (02)319-8020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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