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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北, 美의 가위눌림서 벗어나야

입력
2005.06.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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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수신된 북한 조선중앙방송 정론의 한 대목이다. “우리 공민들이 선군혁명의 주공전선인 농업전선에서 울리는 일심단결의 뇌성은 미제 침략자들의 아성을 들부시는 징벌의 소나기다.” 북한은 올해 농업을 주공전선으로 내세워 식량증산을 독려하고 있는데 농업증산 의욕을 고취하기 위해 대미 적대의식까지 동원한 것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대북압박을 버텨내기 위해 식량 확보가 중요하다는 점에서 농업증산과 대미투쟁을 연결시키는 것이 전혀 말이 안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식량증산 운동까지 대미 투쟁의식에 기대는 것은 지나친 ‘대미의존’이다.

-6ㆍ15 행사까지 미국 핑계

최근 몇 년 동안 북한의 농업생산이 조금씩 늘고 있다고는 하지만 북한은 매년 200만톤 가량의 식량이 부족하다고 한다. 그나마 남한의 비료지원 등에 힘입은 결과다.

북한의 식량난은 사회주의 집단영농방식의 모순 누적과 주체농법의 실패에서 기인한다. 그러니 “우리 공민들이 이 땅에 꽂아가는 한포기 또 한포기의 모는 원수의 가슴에 날아가는 멸적의 총알”이라며 아무리 대미 적개심을 농토에 쏟아 붓는다고 북한의 식량문제가 해결될 리 없다.

북한은 평양서 열리는 6ㆍ15 공동선언 5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하는 남측 방문단 규모를 대폭 줄여달라고 요청하면서도 미국의 위협을 이유로 들었다. 그러나 핵 대치 상황에서 대규모 방북단을 보내 성대한 기념행사를 치르는 것을 못마땅해 하던 미국이야말로 쾌재를 부를 판이다.

6ㆍ25의 경험과 그 이후 북미간의 적대관계를 감안하면 북한의 대미 피해의식과 두려움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 미국이라는 존재가 북한에 그렇게 치명적인지 따져볼 때가 됐다.

핵개발 등 대량살상무기 문제가 아니라면 미국이 북한 김정일 체제를 무너뜨리거나 북한을 점령해서 얻을 이익이 무엇인가. 이라크처럼 탐낼 석유도 없고 해외주둔 미군을 첨단장비를 갖춘 기동군으로 재편하는 상황에서 북한땅이 미국에 특별한 전략적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북한 정권이 적당한 위협세력으로 존속하는 것이 미국으로서는 미사일방어(MD)체제 추진이나 동북아 개입 명분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면 미국은 북한을 공격할 명분이나 이유가 없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그의 네오콘 참모들이 북한을 극도로 혐오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만으로 북한을 공격하기는 어렵다.

북한은 핵 억지력 강화만이 자신들의 체제를 지킬 수 있는 보루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금 북한 체제를 지켜주는 것은 핵무기나 미사일이 아니다. 현재 북한체제의 지탱에 큰 몫을 하고 있는 중국과 남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북한체제의 붕괴다.

갑작스러운 북한체제 붕괴는 대량난민 발생, 대규모 유혈충돌 등 엄청난 재앙을 부를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도 남한도 이런 사태를 감당할 능력이 없다. 그래서 북한체제를 지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지금 북한 체제를 지켜주는 것은 북한체제의 취약성 그 자체인 셈이다. 북한의 갑작스러운 붕괴는 중국과 남한은 물론 미국과 일본까지도 볼모로 잡는 북한의 ‘비장의 무기’다.

-核 포기만이 北사는 길

김정일 체제는 자신들의 최대무기인 바로 이 취약성을 활용해서 미국이라는 가위눌림에서 벗어나야 한다. 핵을 포기하지 않는 한 북한은 모든 자원을 군사동원체제에 투입해야 하며 외국자본과 기술도 활용할 수 없다.

그것은 빈곤과 기아의 길일 뿐이다. 핵을 포기하고 개혁개방으로 나아갈 때 미국에 의한 김정일 정권 전복 시도가 겁나겠지만 미국도 김정일 이후의 대안이 분명치 않는데 김정일 체제를 무턱대고 흔들지는 못한다.

중국과 남한도 1차적으로는 김정일 체제를 지원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은 모든 문제를 미국에 돌리는 미국 과잉과 미국을 지나치게 두려워하는 가위눌림을 떨쳐버릴 때가 됐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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