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자장면이 먹고 싶다며 우는 아내를 보면서 가족에게 몹쓸 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화가 오병욱(46)씨는 1990년 어느 날, 잘 나가던 화랑 큐레이터 생활을 접고 친할머니가 계신 경북 상주시 외곽 병성동의 양철 지붕 집으로 이사를 했다. 작가의 꿈을 잠시 접고 서울 청담동 갤러리 서미에서 3년간 큐레이터로 일하던 그는 그 해 5월 문득, 가슴이 활짝 열리는 곳에서 ‘진짜’ 작업을 하고 싶었단다. 70세를 넘긴 아버지가 5살 때부터 살던 그 시골집을 선택한 이유도 자유로움을 만끽하기 위해서였다.
”대문도 없는 이 곳에서는 앞과 좌,우도 훤히 트여있고 먼 거리까지도 볼 수 있었어요. 자유, 그 자체죠. 가끔 낙동강 줄기와 미루나무, 모래밭 등 주변을 둘러보면서 ‘아. 내가 참 예쁜 곳에 살고 있구나.’라고 느낄 때 행복하고 가슴이 벅차요”
‘저 신호등이 언제 파란불로 바뀌나’, ‘약속 시간에 늦으면 어쩌지’…. 서울서 살 때 그의 머릿속은 그런 생각들로 차 있었다. 그러나 상주로 옮겨온 그의 머릿속은 ‘오늘은 바람이 좀 더 불었으면’, ‘고기는 언제쯤 잡힐까’ 등의 생각들로 바뀌었다.
처음 상주로 내려오겠다고 했을 때 아내 백애숙(44)씨는 펄펄 뛰었다. “무엇이든 함께 하겠다던 아내 가 이사를 못 가겠다고 버티니 배신감마저 들었어요. 처음에는 그럼 각자 원하는 곳에서 살도록 하자며 마음에도 없는 큰소리까지 쳤죠.” 며칠 후, 아내는 오 작가의 손을 꼭 잡더니 눈물을 뚝뚝 흘리며 함께 가겠다고 뜻을 굽혔다.
15개월 된 아들을 데리고 시골로 내려오기까지 그의 아내도 나름대로 고민이 많았던 것이다. 고생을 해도 함께 하자는 오씨의 설득이 먹혔던 것일까.
오 작가는 아내의 부탁으로 작은 싱크대를 들여 놓은 것 외에는 아무것도 수리하지 않았다. 마당에는 아내가 좋아하는 장미를 심어줬다. 손수 만든 나무 책상과 식탁, 작은 소품들은 집안 곳곳에 놓여 있다.
작은 마루와 방 두 개, 재래식 부엌, 푸세식 화장실도 그대로 있다. “그냥 있는 그대로를 느끼고 싶어서”라고 부부는 대답했다. 오래돼서 삐걱 거리거나 고장난 부분들만 눈에 띄는 대로 고친다.
역시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아내는 샤워를 못 한다고 투정을 부렸어요. 아이도 어릴 때는 상주 시내에 사는 부모님 아파트에 가면 편하니까 안 오려고 했고요. 그 때는 참 섭섭하더라고요.“ 그런데 이제는 누구 하나도 불평 하지 않고 시내의 공중 목욕탕을 가기를 즐긴단다.
동네 사람들은 그들을 ‘딱풀’ 라고 부른다. 늘 셋이 붙어 다니는 그들에게 그보다 어울릴 이름이 있을까. “우리 식구는 어딜 가든 항상 ‘같이’하려 해요. 작업실에 갈 때도, 커피 마시러 갈 때도 적어도 아내랑은 늘 함께 하죠. 아들 영준(17ㆍ안동고2)은 안동에 기숙사가 딸린 고등학교에 있어서 주말에는 온 가족이 함께 보내고요.” 아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가장 소중하다고 말하는 그는 “서로 옆구리를 간지르며 끼득 끼득 웃고 영화도 같이 보고 그림도 같이 그리고…참, 이 놈도 미대를 간다네요”라며 은근히 아들 자랑이다.
집에서 15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폐교가 된 학교(동성분교)는 임대료를 내고 작업실로 쓰고 있다. 원래 1년에 270만원의 임대료를 교육청은 제시했으나, 넉넉지 못 한 사정을 알아 들은 관계자 덕에 90만원으로 낮춰졌다. 거의 거저다. 현재 진행중인 시리즈작 ‘바다’ 10여점이 완성되고 있는 현장이다.
“98년 수해를 입어 그 전에 쓰던 딴 곳의 작업실에 보관하던 수백 점의 그림들을 유실했어요. 수해 직후 눈물을 날리며 아내와 밤낮없이 논밭을 헤매 작품들을 찾아 다녔죠.
저의 전부나 다름 없었으니까요. 여기 저기서 물감과 붓, 작업복들을 하나 둘씩 발견하기도 했지만 문득 작품들을 전부 찾은들 또 뭐하겠냐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미 전부 망가져 버린 걸…. 그 때부터 새로 작업을 시작했죠. 다시 태어난 사람처럼요.”
세월만이 어루만져줄 상처였다. 새출발을 다짐한 그는 아침에 일어나 도시락을 싸 들고 작업실로 나서거나 동네 낚시터로 나간다. 무작정 책만 읽고 싶을 때는 하루 종일 책만 읽기도 한다. “외롭지 않냐고요? 저 여기에도 친구 많아요. 농부, 석수, 또 낚시터에 가면 가끔 마주치는 낚시꾼들…. 지나치며 몇 마디씩 주고 받은 말 친구들 말이죠. 그런 친구들이 편합니다.“
그는 작업실에 가면 하루 종일 아무 것도 그리지 않은 흰 캔버스를 뚫어지게 바라 보다 돌아 오기도 한다. 그런 호젓한 시간을 그는 무척 사랑한다. 그리고 즐긴다.
풍경화 작업을 주로 해 온 오 작가는 붓에 아크릴을 묻혀 캔버스에 뿌리는 ‘뿌리기’ 기법으로 ‘바다’ 시리즈를 작년에 이어 하고 있다. 몇 십겹의 아크릴들은 법칙없이 흩어져 빛에 따라 술렁이듯 보이기도 한다. 그는 “다음에는 색의 변화 폭이 넓은 하늘 작업을 하겠다”고 말했다.
다음은 すゴ? “나무란 놈도 참 매력적인데, 그 놈 매력은 일단 보기가 좋고 만져 보고도 싶고 냄새도 맡아 보고 싶고 뭐 그런 점이죠.” 오 작가는 나무 작업에 자신감이 생기면 그땐 전시회도 한번 가질 욕심이 있다고 전했다. “예술은 사람의 맘을 설레게 하는 것이에요. 나만을 위한 작업은 별루죠. 그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한 것과 똑같거든요”
그는 이번에 ‘빨간 양철 지붕아래서’라는 산문집(뜨인돌 발행)을 냈다. 그 안에는 상주에서의 15년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내년에는 전시회도 가질 참이다. “술도 좋고 일도 좋고 친구도 좋지만 자연과 함께 하는 이 생활, 여기에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까지 이 자유로움을 같이 만끽하고 있으니 난 행복한 놈이죠? ”
조윤정 기자 yj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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