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취재원일 뿐 아니라, 인생의 스승이었다.”
워터게이트 사건을 특종 보도한 밥 우드워드 워싱턴 포스트 부국장은 2일자 포스트에 ‘마크 펠트는 어떻게 딥 스로트가 됐는가”라는 장문의 기사를 게재했다. 기사에는 그와 펠트 전 FBI 부국장의 35년에 걸친 관계가 낱낱이 적혀 있다.
펠트를 알 게 된 것은 기자가 되겠다는 결심 하기 전의 일이었다. 1970년 27세의 해군 중위였던 우드워드는 종종 백악관에 심부름을 갔는데, 하루는 백악관 상황실 앞 대기실에서 은발의 신사와 인사를 나누게 된다.
펠트였다. 두 사람은 곧 대학원 동문임을 알게 되고 친해진다. 예일대를 졸업한 우드워드는 군 복무를 하며, 조지워싱턴대 대학원에 다니고 있었다. 제대 후 로스쿨 진학을 놓고 고민하던 우드워드에게 펠트는 변호사가 얼마나 하찮은 일인가를 경험에 비춰 설명해주기도 한다.
71년 우드워드는 매릴랜드 지방지를 거쳐 워싱턴포스트 기자가 됐다. 펠트는 이 때 첫번째 메가톤 급 제보를 준다. 스피로 애그뉴 당시 부통령이 현금 2,500만달러를 뇌물로 받아 책상 서랍에 넣었다는 것이었다. 선배에게 무시당해 우드워드는 기사를 쓰지 못했다. 그러나 2년 후 수사 발표를 통해 정보는 틀림이 없는 것으로 판명됐다.
기자와 취재원으로서의 관계는 펠트가 은퇴해 더 이상 제공할 정보가 없을 때까지 계속된다. 펠트는 자신이 에드거 후버 FBI 국장의 정당한 후계자이고, 백악관은 “부패한 범죄집단”이라고 부르곤 했다.
우드워드는 펠트가 딥스로트가 된 동기가 백악관과의 갈등, 그리고 인사 불만임을 시인했다. 그는 “나와 칼 번스타인(동료기자)은 딥스로트가 FBI 조직을 보호하고, 모든 것을 잃어버리기 전에 (대통령과 백악관을)바꾸려 한다는 결론을 내렸었다”면서 “그가 때로는 나도 자기가 부리는 요원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홍석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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