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의 유달산에서 급작스럽게 멈춰 선 백두대간. 삼천리를 내달려 온 긴 여정, 거친 박동의 주체할 수 없는 호흡이 바다 위로 뿜어졌는가. 목포의 앞바다는 수백의 섬들로 수 놓아져 있다.
홍도로 가는 길, 반드시 들러야 하는 곳이 있으니 바로 흑산도다. 홍도에게 흑산도는 형뻘의 섬. ‘형만한 아우 없다’고 했던가. 흑산도에도 홍도의 아름다움에 견줄만한 빼어남이 있다. 관광에 올인해야 하는 홍도와 달리 이 곳은 다도해의 어업 중심 기지로서 삶의 끈적거림이 생생하다.
홍도에서 30분 걸려 도착한 흑산도의 예리항. 앞섶에는 영산도가 길게 누워 있는 큰 항구다. 파도가 거셀 때면 동지나해의 일본, 중국 어선들까지 찾아드는 피난처가 이기도 하다.
홍탁의 맛을 잊지 못 해서일까, 첫 발을 내딘 부두는 도무지 낯선 곳 같지 않다. 깊은 바다 만큼이나 산자락도 푸르름이 짙어 검은 빛을 띤다고 해서 이름 붙여졌다는 흑산도. 그 짙푸름은 풍랑에 목숨을 걸고 살아 온 섬사람의 한과 고독의 깊이일까.
흑산도 관광은 크게 두 가지다. 해안 일주 도로를 따라 섬을 한 바퀴 돌아 보거나 유람선을 타고 비경을 간직한 주위 섬들로 바닷 나들이를 다녀오는 것. 목포에서의 뱃길과 홍도 유람선 관광으로 더 이상 배 타기가 싫어질 즈음 도착하는 곳이라 일주도로 관광이 선호된다.
일주 도로는 예리에서 곤촌리까지 절반만 포장된 상태. 버스 관광은 곤촌리까지만 가능하다. 1인당 8,000원. 택시를 이용하면 보다 호젓하게 구경할 수 있다. 흑산도의 택시는 모두 10대다.
산길을 오르내려야 하는 탓에 모두 갤로퍼, 스포티지 등 4륜 구동형 차량 일색이다. 이 택시를 대절해 곤촌리까지만 갔다 오는 코스는 대당 3만원. 비포장까지 한 바퀴 완주하면 6만원이다. 흑산도까지 먼 길 왔는데 반절만 돌기는 아깝다. 다산의 친형 정약전이 유배당한 곳 등 해안을 따라 늘어선 흑산도의 13개 마을 모두를 거치는 완주 코스(2시간 30분)가 좋다.
예리항을 출발해 처음 만나는 마을은 진리. 예리가 커지기 전까지 흑산도의 중심 마을 역할을 했던 곳이다.
진리에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이 있다. 바다가 잘 보이는 언덕배기에는 제물로 바쳐졌던 처녀의 혼을 모신 당집이 있고, 그 바로 앞은 ‘피리 소년 무덤’이라는 작은 봉분이다. 옹기 장수와 함께 섬을 찾은 소년이 소나무에 걸터 앉아 피리를 한 곡조 구슬프게 불었더니 그 소리에 반한 처녀신이 옹깃배가 떠나지 못하도록 파도를 일으켰다고 한다.
결국 소년만 놔 두고 가야 떠날 수 있다는 말에 배는 몰래 떠났고 소년은 마냥 옹깃배만 기다리다 굶어 죽었다는 전설이 함께 한다.
그래서일까, 소나무 그늘진 봉분에는 잔디가 돋아 나지 않았다. 대신 지나는 이들이 소원을 빌며 얹어 준 솔잎이 소년의 몸을 따뜻하게 덮고 있다. 여름을 부르는 지금, 노랗게 갓 피어오른 나도밤나무꽃의 야릇한 냄새가 그 주위를 감싸고 있다.
상라산으로 오르는 길은 ‘용고개’라 불리는 12굽이 고갯길. 흡사 속리산 가는 길의 말티재인 양 굽이 굽이 물결쳐 오른다. 흑산도의 제일경은 바로 이 곳 정상에서 굽어 보는 모습이다.
굽이친 도로와 함께 진리, 예리항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뒤편으로는 기다란 장도 너머로 홍도가 눈앞에 서 있다. 날이 좋아 저녁 노을이 예쁜 날, 홍도로 지는 석양을 보기 위해 관광객과 주민들은 카메라를 들고 몰려든다. ‘흑산도 아가씨’ 노래비에서 가락이 울려퍼지기라도 하면 감흥은 두 배, 세 배가 된다.
파도가 뚫어낸 바위 구멍이 한반도 지도를 닮았다는 지도바위와 비리를 지나면 절개지 옹벽 480m를 따라 만들어진 벽화길을 지난다. 흑산도 주변의 섬과 흑산도의 명소 등을 형상화한 것이다. 명물 홍어의 그림이 빠질 수 없다.
곤촌과 심리를 지나 가파른 비포장 언덕을 넘어서면 제법 큰 마을인 사리(모래미)가 기다린다. 다산 정약용의 형 약전이 유배돼 15년을 머물렀던 곳이다.
그는 이 곳에서 물고기 해산물 등 총 227종을 채집해 유명한 ‘자산어보(玆山魚譜)’를 저술했고 복성재(復性齋)라는 서당을 지어 섬 마을 아이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예리에 도착하기 전의 천촌리에는 구한말 꼬장꼬장한 선비 정신으로 유명한 면암 최익현 선생의 흔적도 남아 있다.
강화도 조약에 반대해 ‘왜놈을 물리치지 않으려거든 신의 목을 베라’는 상소를 올려 흑산도로 유배된 면암은 이 마을 지장암에 기봉강산 홍무일월(箕封江山 洪武日月)이라는 배일 사상을 천명한 글을 새겨놓았다.
▲ 여행수첩
목포에서 홍도까지는 115㎞, 흑산도까지는 92㎞의 뱃길을 달려야 한다. 배는 목포 여객 터미널에서 출발한다. 오전 7시 50분, 오후 1시 20분, 2시 등 하루 3편이다. 짝수날에는 오전 8시 배가 추가돼 4편이 된다.
목포에서 흑산도까지는 1시간 50분, 홍도까지 2시간 반이 걸린다. 요금은 목포 - 홍도 3만2,600원. 목포 - 흑산도 2만5,200원이다.
홍도는 섬 자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선착장에서 마을로 들어갈 때도 국립공원 입장료(2,600원)를 내야 한다. 홍도 한바퀴를 도는 유람선은 2시간 30분 코스로 1만5,000원.
흑산도는 산이 깊고 수원지가 있어 물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홍도는 물이 많이 부족하다. 욕실의 물은 여관 등 건물 옥상의 물탱크에서 저장됐다 나오는 탓에 수압이 낮아 졸졸거린다.
변기 물은 아예 바닷물을 쓴다. 외딴 섬이니 만큼 뭍에서의 편안함을 기대하지 말라는 홍도 사람들의 당부가 괜한 말 아니다.
승우여행사는 용산역에서 출발하는 열차 무궁화호를 이용해 홍도 흑산도를 돌아 보는 2박 3일 짜리 상품을 내 놓았다. 왕복 열차비와 선박비, 숙박비와 음식값 등을 포함해 1인 21만5,000원이다. (02)720-8301
흑산도=글ㆍ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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