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청(현 철도공사)의 사할린 유전인수 사업이 졸속 추진된 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 일정에 맞춰 성과를 내려고 했던 철도청 수뇌부의 과욕에서 빚어졌다는 것이 검찰의 결론이다. 정치권 실세의 개입 여부까지 명쾌하게 규명되진 않았지만 베일 속에 가렸던 사건의 윤곽은 희미하게나마 드러났다.
■ 철도청의 무리한 사업추진 배경
김세호 전 건설교통부 차관은 지난해 7월 왕영용 전 철도청 사업개발본부장으로부터 “유전사업은 열린우리당 이광재 의원이 지원하는 사업”이라는 보고를 받았다. 이 의원과 평소 친분이 있던 김 전 차관은 철도청의 경영개선이라는 명분으로 사업 초기부터 적극성을 보였다는 것이 검찰의 설명이다.
이후 왕씨는 “실제 이 의원이 유전사업을 지원하는지 여부를 확인해달라”고 김 전 차관에게 건의한 뒤 별다른 얘기가 없자 이 의원의 지원을 사실로 믿었다고 검찰은 밝혔다. 이런 이유로 당시 철도청 내부에서는 이 의원의 지원이 공공연한 사실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이다.
검찰은 특히 김 전 차관이 지난해 9월20~23일로 예정된 노무현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 의제에 유전사업을 포함시켜 자신의 위상을 높이려 한 것으로 보았다. 철도청이 사업성 검토도 제대로 하지 않고 지난해 9월3일 러시아 측과 서둘러 유전 인수계약을 맺은 것은 이런 배경에서 가능했다는 것이다. 특히 검찰은 김 전 차관이 왕 본부장 등에게 청와대 보고를 지시하고 산업자원부 장관에게 협조 부탁을 한 것 외에 건교부로 옮긴 뒤에는 계약해지 후의 사후대책을 논의하는 등 주도적으로 사업에 관여한 것으로 결론지었다.
■ 이광재 의원 및 이기명씨 개입 여부
검찰은 이 의원을 ‘내사중지’했지만, 완전히 면죄부를 주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이 의원이 사건이 불거진 직후 해명한 것과 검찰 수사 내용이 차이가 많이 난다. 그 만큼 이 의원이 자신의 역할과 관련해 숨기는 것이 있다고 검찰은 보고 있다.
우선 이 의원은 지난해 11월8일 신광순 전 철도청장으로부터 처음 철도청의 유전사업 얘기를 들었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검찰은 그가 이미 지난해 8~9월 자신의 에너지정책 자문위원인 허문석씨로부터 유전사업 얘기를 들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당시 허씨는 이 의원에게 철도청의 유전사업을 거론하면서 민ㆍ관 합동 석유개발회사의 설립을 제안한 문건을 건넸으며, 검찰은 이 문건을 이 의원 사무실에서 확보했다.
검찰은 또 이 의원이 지난해 10월8일 의원회관을 방문한 전대월 전 코리아크루드오일(KCO) 대표에게 “사할린 유전사업은 어떻게 됐나”고 물은 뒤 지분을 철도청에 넘겼다는 대답을 듣자 “돈 벌었으면 잘 됐네”라고 말했다는 전씨 진술을 확보한 상태다.
이와 함께 전씨가 이 의원의 선거참모 지광선씨에게 지난해 총선자금 8,000만원을 건네고, 자신이 추진하던 건설시행사업에 도움을 부탁하는 등 이 의원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사실도 드러났다. 이미 알려진 대로 이 의원은 전씨에게 유전전문가인 허씨를 소개해준 장본인이다. 이 같은 정황들만으로 이 의원이 유전사업에 직접 개입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이 의원이 유전사업의 진행 상황을 알고 있었을 것이란 추론이 가능하다.
또 다른 외압 당사자로 지목된 이기명씨의 경우 당초 해명과 달리 자신의 문화네트워크 사무실에서 전씨를 허씨에게 소개해준 것으로 검찰은 파악했다. 허씨의 국외도피나 유전사업에 개입한 흔적이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허씨와 6개월간 70여 차례나 통화한 점으로 미뤄 유전사업을 함께 논의했을 가능성은 있다.
■ 범정부 차원의 추진 여부
청와대 산자부 건교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우리은행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에도 불구하고 정부 차원에서 사업을 추진했다는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다. 철도청이 대통령 방문의제에 유전사업을 포함시키기 위해 관계 부처에 관련 사안을 보고하거나 협조를 부탁한 사실은 드러났지만 별 소득이 없었다는 것이 검찰의 설명이다.
이희범 산자부 장관은 대통령 방러 이틀 전 유전사업 현황을 신속히 파악할 것을 직원들에게 지시했지만 구체적으로 도움을 준 흔적이 드러나지 않았다. 철도청 문건 등에 거론된 ‘외교안보위’가 실제로 지칭하는 것으로 보이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관련 여부도 확인되지 않았다.
철도청측이 재경부에 자금지원을 요청하고 우리은행에 대출 청탁을 했다는 의혹도 직접 관계자들을 만난 허씨의 조사가 이뤄지지 않아 규명되지 않았다.
김영화 기자 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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