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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재의 미디어 비평] 왜곡보도 낳는 언론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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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재의 미디어 비평] 왜곡보도 낳는 언론관행

입력
2005.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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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30일 개막한 세계신문협회(WAN) 서울총회 관련 보도를 보면서 우리나라 신문들이 마치 규격화한 상품을 찍어내는 자동화기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이런 행사는 내용과 관계없이 모든 신문이 약속이나 한 듯 크게 다루게 돼 있다.

신문의 문제를 다루는 국제적인 행사이고, 다른 신문도 비중 있게 편집할 것이라는 경쟁심리 때문이다. 독자의 관심과는 거의 무관하게 이런 종류의 기사는 매년 이맘때쯤 큰 비중으로 실린다.

기사의 방향도 신문마다 정해져 있다. 올해도 예외는 없었다. 총회 개막 연설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개빈 오렐리 WAN 회장대행은 한국 언론 문제를 바라보는 다른 시각을 드러냈다. 노 대통령은 일부 언론사의 시장독점과 권력화를 문제 삼았고, 오렐리 회장대행은 반대로 한국 신문법의 언론자유 침해 소지를 지적했다.

이제 독자들은 이 사안을 어느 신문이 어떻게 보도했을지 직접 비교하는 수고를 들이지 않아도 다 안다.

늘 그랬듯이 시장지배적 신문들은 정치권력이 부당한 간섭과 언론자유 침해를 일삼고 있다는 주장을 크게 부각했을 것이고, 이에 반해 다른 신문과 인터넷 대안 언론들은 일부 언론사의 경품ㆍ무가지 살포를 통한 시장 독과점과 정치권력화 문제에 초점을 맞췄을 터이다.

뉴스를 다루는 방식이 이처럼 도식화한 것은 언론의 관행 때문이다. 언론사들이 그날그날 발생한 뉴스를 취사선택하고 기사의 방향을 정하는 데 매일매일 새로운 가치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의 관행을 따르면 실수나 문제의 소지를 최소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뉴스 제작에 있어서 관행은 기자들이 불규칙적으로 발생하는 많은 정보를 주어진 시간 안에 신속하고 정확하게 효율적으로 처리하는데 필수적이다.

갑자기 터진 지하철공사 현장 폭발 사고는 누구도 예측 못한 사건이지만 일단 사건이 발생하면 신문이든 방송이든 노련한 기자는 당황하지 않고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사고의 발생 상황을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때 관행은 기자들이 취재보도 업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

기사의 방향도 마찬가지다. 보수신문이든 진보신문이든 세계신문협회에서 신문법이 논란이 됐다는 기사를 쓰는데 많은 고민을 하지 않는다. 관행에 따르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뉴스 제작 관행은 시간이 갈수록 뉴스 형식과 내용을 도식적으로 만들고 기사의 방향도 고착화하는 부작용을 낳는다. 세상이 변하고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고 있는데, 신문기사 문장이 여전히 딱딱하고 어려운 것은 신문문장 쓰기의 고착된 관행의 결과이다. 방송사의 저녁뉴스 리포트 양식이 1분20초로 굳어져 있는 것도 고치기 힘든 방송보도 관행 가운데 하나다.

뉴스보도 관행은 현실왜곡을 낳기도 한다. 감사원이나 검찰이 일부 공무원의 비리를 적발 조사하면 “대대적인 사정에 착수했다”로 보도되기 십상이고, 세무 조사가 시작되면 “일제히” “대대적”으로 실시되는 것으로 보도되는 경향이 있다.

취재 기자가 개인적인 판단에 따라 어떤 사회문제를 보도할 때 “사회적인 논란이 일고 있다”고 하거나 “파문이 일고 있다”고 보도하는 관행도 있다. 모두 관행화 한 왜곡 과장 보도의 사례이다.

한국 언론 관행 가운데 무엇보다 큰 문제는 언론사들이 자사이기주의에서 비롯된 정파적 가치판단 관행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언론은 규범적 가치 판단을 할 자유가 있다.

그러나 문제는 언론의 가치판단의 방향이 한쪽으로 편파적으로 굳어져 있다는 데 있다. 갈등적인 사안이 발생했을 때 한쪽만을 부각시켜 왜곡 보도하고도 전혀 잘못됐다는 판단이나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한다. 언론사 조직이 인정해주는 왜곡 보도 관행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보도 관행은 대체로 언론사 조직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뉴스 이용자인 시민의 요구와는 동떨어져 작동한다. 더욱이 관행은 언론사 조직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어 좀처럼 개혁되지 않는다. 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정파성에서 비롯된 편파 왜곡보도가 반복 생산되는 것은 바로 뿌리깊은 관행 탓이다. 언론 개혁의 열쇠는 관행의 개혁에 있는 셈이다.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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